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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단편소설 / 잉아의 싼룬츠(三輪車)

2003년 뜨거웠던 베이징의 여름날들, 그리고 그 겨울 마지막 밤

쓴지 20년 가까이 된 단편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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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一)     


언제나처럼 녀석은 아파트 담장의 철장을 붙잡고 그 사이로 고개를 들이민 채 아파트 동(洞) 현관을 고양이 눈초리로 노려본다. 그러다가 내가 현관을 나서는 모습이 드디어 보일라치면 길가에 세워둔 자신의 싼룬츠(三輪車)를 잽싸게 몰아 아파트 단지 서문(西門) 입구 앞으로 달려와 멈추어 나를 기다린다. 입구 근처에서 순서대로 줄을 댄 채 초조하게 출근 승객을 기다리는 싼룬츠 몰이꾼들과의 의리를 내팽개치는 녀석의 돌출행동도 이제는 일상으로 굳어졌는지 다른 몰이꾼들은 그저 허망한 눈길로 바라볼 뿐이다. 물론 약간은 시샘의 눈길이 녀석의 뒤통수를 찌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헤벌쭉 웃음을 머금은 채 내가 올라타기만 하면 곧바로 출발할 준비 자세를 갖추고 있다. 부지런하게도 이른 아침에 벌써 손님을 태우고 몇 군데 돌았는지 녀석은 진즉부터 반 팔 셔츠의 앞 단추들을 다 풀어 제친 모습으로, 그래서 피하지방이라고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붙어있지 않은 초박(超薄)의 뱃가죽이 그대로 드러나는 딱한 모습으로 기다리다가 마침내 내가 싼룬츠에 거의 도착하는 것에 맞춰 경쾌하게 외친다.

“니쟈오! (좋은 아침입니다요!)”

그러면 나도 정겨운 얼굴로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받아 준다.

“응, 니쟈오!”

녀석의 이름은 리잉(李盈)이고 나는 그를 ‘잉아’라 부른다. 잉아는 나의 ‘출퇴근 전속 싼룬츠 기사’이다. 물론 월급을 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매일 출퇴근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잉아의 싼룬츠를 정해 놓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싼룬츠를 한 번 타는 데 보통 쓰콰이(四塊 사원)를 주지만 나의 전속기사 잉아에게는 매번 우콰이(오원)를 준다.

아침저녁으로 잉아가 모는 싼룬츠에 올라타고 베이징의 싱그러운 바람을 가르며 출퇴근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느긋한 기분을 한껏 누리게 해 준다. 택시보다는 서민적인 풍취를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 기분까지 들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게 되면 쉬콰이(십원)를 주어야 하건만 그 절반 값으로 인간적인 느낌을 넉넉하게 즐기면서 이용할 수 있는 이 싼룬츠야 말로 더없이 훌륭한 교통수단이다. 게다가 택시로 출퇴근하는 것이 외국 생활하는 내게는 신경 쓰일 만한 낭비 행위이기에, 상대적인 만족감이 한층 더해진다. 싼룬츠를 처음 겪었을 때 나는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흔해 빠진 자전거를 가지고 훌륭한 운송 수단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것에 말이다. 즉, 자전거 뒷부분을 개조해서 좌우로 각각 바퀴를 달고(전체적으로 삼륜 형태를 갖춘다), 승객이 두 명까지 앉을 수 있도록 좌석을 만든 후 그 위에 사람이 들어앉을 만한 높이로 덮개를 씌운다. 그리고 이 덮개는 기왕 씌워지는 김에 눈비를 그으며 영업할 수 있도록 몰이꾼의 머리를 지나 앞바퀴 부분까지 길게 뻗어나간다. 물론 이것 때문에 외형이 상당히 촌스럽고 엉성하게 보이지만, 실용성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삼륜 자전거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잉아의 싼룬츠를 전용으로 타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베이징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 한 달 정도는 택시를 이용해서 출퇴근했다. 그러다가 만만치 않은 택시비도 마음에 걸렸고 또 멀지도 않은 거리,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다. 그런데 새것이라 눈에 띄었는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불행한 일을 맞게 되었다. 출근 후 회사 건물 앞에 세워 놓은 것을 보기 좋게 도둑맞고 만 것이다. 보안대원(*중국의 웬만한 건물, 아파트 단지에는 보안대원들이 경비를 선다.)이 지키고 있었고, 잠금장치까지 해 놓았는데도 말이다. 누군가에게 적선한 셈치고는 이번에는 눈에 띄지 말자고 중고 자전거를 사서 몰고 다녔다. 그러나 이 역시 사흘도 넘기지 못하고 숙소가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증발하고 말았다. 이제는 부아가 치밀었다. 도둑놈들이 나만 쫓아다니나 싶어서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결국 자전거 출퇴근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시 택시를 타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보기가 영 우아하지 않은 싼룬츠에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택시비가 만만찮다는 고민을 하던 중에 직원들의 훈수를 듣고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싼룬츠를 타보기로 했던 것이고, 어찌어찌 적응되면서부터는 싼룬츠 애용자가 되고 말았다. 이 싼룬츠를 타는 것에도 한 가지 불편한 것이 있었다.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는 “왕징신청 씨먼 조바! (망경신성 望京新城 - 아파트 단지 이름 - 서문으로 갑시다!)”라고만 외치면 그 아파트가 어디에 있는지 다들 알고 있기에 누구든 더는 묻지도 않고 휭하니 바람같이 달려 줘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회사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대부분 시골 출신인 싼룬츠 몰이꾼들은 그 건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도통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자니 아침 출근 때는 이르는 거리거리마다 ‘조과에 (좌회전)’, ‘스즐루 코우 쯔조 (사거리에서 직진)’, ‘꾸오마루(길 건너서)’, ‘요과에 (우회전)’ 등등을 내 짧은 중국어로 일일이 외쳐야 했다. 사람이 몸이 편하다 싶으면 마음이 간사해지는 법이라, 이런 정도의 잔 수고도 피곤하다 싶어졌다. 이런 것이 마음에 걸리던 차에 결정적으로 울적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잉아의 싼룬츠를 처음 타던 날에 일어났다. 어느 날인가 출근길을 나서는데 서문 앞에 순서대로 죽 늘어서 있는 싼룬츠 행렬 중간쯤에 웬 어리고 빈약하게 보이는 사내 녀석이 싼룬츠 안장에 처량히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녀석이 바로 잉아였고, 그날 그냥 평소대로 택시를 타거나 싼룬츠를 타더라도 순서대로 앞에 있던 것을 잡아탔으면 녀석과의 그 질긴 인연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는 동정심이 일어나더니 결국 그 싸구려 동정심은 내 발걸음을 녀석 쪽으로 향하게 했다. 녀석은 자기 차례가 아직 한참이나 멀었건만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하는 반가운 표정으로 호들갑을 떨며 나를 반겼다.

“리징밍먼 따샤(利景名門大厦), 화쟈디 똥루 팡비엔더, 니 지다오 쩐머 조? (화가지 거리의 동로 근처에 있는 이경명문 건물, 가는 길 아느냐?)”

녀석은 잠시 길을 생각해 내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환한 표정으로 큰소리로 외쳤다.

“똥루, 쩐머 조 워 지다오, 지다오! (동로, 어찌 가는지 내 압니다, 알고 말곱쇼!)”

그리고는 부랴부랴 안장에 올라타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잘 달리던 싼룬츠는 어느 위치에 이르러서는 평소에 내가 다니던 길이 아닌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제대로 가는 길이 맞는지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녀석이 큰소리를 친 이상 믿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결국 어느 큰길 사거리에 이르러서 내가 탄 싼룬츠는 심각한 상황을 만나고 말았다. 아침 러시아워! 그러니까 도로가 차들로 엉켜 있었는데, 교차로 공간뿐만이 아니라 사거리와 연결된 좌우 길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차들로 막혀 있었기에 싼룬츠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차들 틈새를 빠져나가자는 뜻으로 손짓을 어지러이 해대며, “조! 조바! (가잔 말이야!)”를 연신 외쳤다. 그러자 그는 차(茶) 물에 누렇게 착색된 보기 흉한 이빨들을 다 드러내 보이는 헤벌쭉 웃는 얼굴로 앞을 가리키면서 뭐라 떠들어 대었다. 대충 헤아려 보니, 분명 앞으로 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지각 출근을 하게 되었음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 나는 ‘왜 쓸데없이 내가 모르는 이 길로 들어서서 사람 고생시키느냐? 차량 사이로 빠져나가자 하는데 왜 또 안 가려고 하는 것이냐?’라는 항변의 뜻이 함축적으로 담긴 말을 생각해 내어 녀석에게 이렇게 퍼부어 댔다.

“웨이 쓴머, 웨이 쓴머! (왜, 무엇 때문에!)”


사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으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관스러운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씩씩대며 녀석에게 호통을 치던 중에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주변을 돌아보았더니, 도로 위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길을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나의 소란을 재미있게 지켜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아침 러시아워의 교통 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구경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사람도 거리도 가로수도, 게다가 점포 간판들까지도 나를 비웃고 있는 듯한 기분에 쫓기어 어서 이 황망한 자리를 피하려고 서둘러 돈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녀석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녀석의 아름다운 사양지심에 나는 또 이렇게 반응하고 말았다.

‘최소한의 체면을 살려 보려는 내 의도를 뭉개려고 하다니, 끝까지 내 성질을 돋우어? 사람들도 보고 있는데?’

있는 혈압 없는 혈압 몽땅 끌어 올려 씩씩대면서 싼룬츠의 승객 좌석에 팽개치듯 돈을 집어 던지고는 뒤도 안 보고 자리를 떴다. 당황한 녀석은 “웨이, 웨이! (이봐요!)”를 열심히 외쳐댔지만 나는 “왕빠단, 왕빠단!(*자라새끼라는 뜻으로 중국에서는 대단히 심한 욕이다.)”을 중얼거리면서 꽁지 빠지게 도망치듯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날 점심때 직원들과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아침에 지각한 것에의 변명도 할 겸 어처구니없었던 그 상황을 설명해 주었더니, 회사 내에서 직원들을 이끄는 김 차장으로 불리는 조선족 직원이 “아, 그거는 아마 이런 거 같습니다.”라며 다음과 같은 해석을 들려주었다. 결론적으로 그날 싼룬츠 몰이꾼에게는 잘못이 전혀 없다는 것인데, 싼룬츠가 들어선 그 막힌 길이 바로 내가 미처 몰랐던 ‘똥루’의 일부였고, 그로서는 길이 막혔으니 다른 길로 다시 돌아간들 거기서부터 걸어가는 것보다 늦어지게 되니까 차라리 내려서 걸어가라고 친절히 일러 주려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차들 틈새로 빠져나가지 못했던 것도 어쩌다 잘못해서 도로에 버티고 서 있던 고급 승용차를 스치다가 손톱만큼이라도 흠집이 나기라도 했다가는 그따위 싼룬츠 열 대 스무 대를 팔아도 변상을 할 수 없는 판에, 어찌 시골에서 갓 올라와 어렵게 싼룬츠 몰이꾼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 가여운 친구가 감히 뚫고 지나가기를 시도할 수 있었겠느냐는 설명까지 듣고는 그저 할 말 잃은 채 얼굴만 벌게져야 했다. 직원들 보기에도 너무나 창피했고, 더군다나 녀석에게는 정말 못 할 짓을 한 처지가 되었으니 당연히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러웠다.     


다음 날 아침. 아파트 단지를 나서자마자 녀석의 싼룬츠를 찾았다.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훑어봐도 녀석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녀석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나 때문에 기분이 잡쳐서 이곳 왕징신청에서의 영업을 걷어치운 것 같아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이후로 나는 출퇴근 시간만 되면 기분이 불편해지곤 했다.

그렇게 열흘 정도가 지나서였다. 전날 밤의 회식 자리에서 술을 과하게 마셨던 까닭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숙취로 더부룩한 속을 냉장고 속의 시원한 콩물 한 그릇으로 달래고 나서 허이허이 서둘러 출근길에 나섰다. 현관을 나서면서 시계를 들여다보니 아무래도 지각하게 될 듯해서 이날 아침은 싼룬츠보다는 택시를 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빈 택시들이 서 있는 곳을 바라고 서문을 나서는 중에 보안대원 한 명이 큰소리를 내면서 웬 싼룬츠 몰이꾼을 한쪽으로 내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택시 쪽으로 가다가 무심결에 돌아보던 나는 그만 흠칫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싼룬츠 몰이꾼이 잉아였다. 녀석은 차가 들락날락하는 서문 앞길에 공연히 싼룬츠를 대었다가 흠씬 혼나는 중이었다. 나는 급히 다가가 보안대원을 말리고는 그의 싼룬츠에 올라탔다. 그러자 잉아는 나를 알아보고는 “에! 에!”하면서 활짝 웃어 보였다. 나도 누렇게 빛나는 녀석의 이빨을 바라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싼룬츠가 그 문제의 똥루에 들어설 때 즈음해서 비로소 용기를 내어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왕찌, 뚜에이부치, 응? (저번 일, 미안하다, 응?)”

녀석은 내 짧은 중국어를 알아는 들었는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메이사, 메이사. (별일 아닌뎁쇼, 뭐.)”라고 하더니 뭐라고 열심히 떠들기 시작했다. 그의 말 중에 ‘워더 자이지아 썅더 빠바 (고향에 있는 아버지)’, ‘더삥라 (병이 들었다)’, ‘후일라 썅지아 (고향에 갔다)’, ‘부능 후일라이 (돌아올 수 없었다)’ 등의 단어가 귀에 걸리는 것이, 고향에 있는 아버지가 병이 들어 집에 갔다 오느라고 한동안 싼룬츠를 몰지 못했는데 이제 돌아와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뭐 이런 내용인 듯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가 돌아왔다는 생각에 기분은 유쾌해졌다. 그렇게 마음속 찌꺼기를 해결했다는 느긋한 심정으로 털털거리는 싼룬츠 승차감을 즐기며 회사에 도착하니 녀석은 뜬금없이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돈을 주려는데 전처럼 또 돈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뭔가 사연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지켜보니까 녀석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떠들어 댔다. 이번에는 녀석의 장황한 설명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난감해하는 중에 마침 사무실을 향해 오고 있던 출근길의 김 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김 차장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걸음을 재게 해서 다가왔다.

“왜, 또 싼룬츠하고 문제 생겼습니까?”

“그게 아니라······”

나의 중언부언 설명을 들은 후 녀석과 잠시 대화를 나눈 김 차장은 씩 웃음을 머금으며 녀석의 말을 정리해 주었다.

“저번에 그 일이 있던 날 제대로 끝까지 태워다 드리지 못했는데도 자기는 돈을 받았다 이겁니다. 그게 미안해서 오늘 공짜로 태워드리려고 아파트에서 기다렸고 말이죠. 아무튼 오늘은 공짜로 태워준다고 하니 그냥 두시죠. 중국 사람들은 자존심과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말입니다.”

흑룡강성 억양이 들락날락하는 김 차장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그저 녀석이 신기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바라보자니 헤벌쭉 웃음을 지어 보이는 녀석의 눈마저 너무 맑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빚지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

‘네 녀석만 자존심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런즉 나도 뭔가 반대급부를 보여주어야 했다. 녀석이 가슴에 맺힌 체증을 내렸기라도 한 듯 시원한 표정으로 싼룬츠를 몰고 돌아서려는 순간 나는 녀석을 불러 세웠다.


“떵 이떵! (잠깐만!)”

딴에는 호기롭게 들리라고 크게 외친 내 소리에 녀석은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았다. 곧 김 차장더러 매일 출퇴근 때 녀석의 싼룬츠를 정해 놓고 타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김 차장의 얘기를 듣고 난 녀석은 멍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곧 부스스한 머리통을 신나게 흔들어대며 큰 소리로 답했다.

“하이 씨엉, 하이 씨엉! (아, 되고말고요!)”

잉아와 나와의 인연은 이렇게 이어지게 된 것이다.       


   

얼(二)     


내가 이곳 베이징에까지 와서 일하고 있는 회사는 광고 대행업체로서, 오랜 친구 사이인 우 아무개 사장이 반년 전 이곳 베이징에다 세운 지사(支社)로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우 사장이 술이나 한잔하자는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그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다.

“너, 중국에서 일하고 싶지 않냐? 여기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보다는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서울 본사는 자기가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 나보고 베이징 지사를 맡아달라는 얘기였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거리낄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승낙한 나는 비자가 나오는 즉시로 베이징행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을 한 까닭은 늘 불안정하기만 한 현재 상태에 지쳤다는 생각과 무엇보다도 새로운 세계에서 겪어 볼 싱싱한 경험에의 유혹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의 주된 일은 베이징에 있는 한국법인체인 B전자의 프로모션 대행 일이다. 신제품 발표회, 각종 전시회 참가, 로드 런칭 쇼 등 B전자 제품의 중국 내 이미지 런칭 일인데 한국에 있을 때도 내가 하던 일이 바로 행사 기획과 구성, 연출 등과 관련되어 있었으므로 특별히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없는 편이다. 아니, 그저 설레고 들뜬 마음이 더 앞선다는 표현이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개인적인 감회까지 곁들여 있어서 편안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다. 즉, 나의 성씨인 경주 최씨가 원래 동이족(東夷族) 중 진한족(辰韓族)으로서 연(燕)나라 사람 출신이라고, 경주 최씨의 시조로 모셔지는 최치원 할아버지께서 일찍이 말씀을 남기신 바가 있는 만큼 최씨 족의 본향은 바로 그 옛날의 연나라, 즉 베이징 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 씨족 조상들의 고향에 왔다는 감상적인 생각도 있었기에 일상에 와 닿는 모든 풍경이 그저 살갑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색다른 경험 중 하나가 바로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베이징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이제는 현지어를 알아들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나는 회사 여직원에게 부탁해서 나를 가르쳐 줄만한 학생을 찾아 달라고 했다. 곧 ‘른민따쑤에(人民大學)’에서 경영학을 전공한다는, 공부 좀 한다하는 학생 한 명을 소개받아서는 그 학생과 함께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시간을 이용해 공부하게 되었다. 시기적으로는 끄트머리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어엿한 이른바 ‘한자 세대’이기 때문에 한자와는 그리 소원한 편은 아니다. 물론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아 쓰는 쪽은 약하지만 읽는 쪽은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간혹 시감(詩感)을 받을 때면 객기 부려가며 고시(古詩)로 즐겨 표현해 보곤 했었던 만큼 오언절구나 칠언율시 등의 시구 구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나마 이해를 하고 있던 차였고, 이것이 중국어를 익히는 데 제법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중국어를 익힌다는 것이 그렇게 녹녹할 리는 만무다. 중국은 문화혁명 직전 공표된 간소화된 글자인 ‘간체자(間體字)’가 쓰이고 있기에 내가 어렸을 때 보고 배웠던 ‘번체자(繁體字)’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글자체들이 제법 있어서 우선 읽어 내는 데에 약간의 적응 과정이 요구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 가지 억양으로 구분되는 모든 글자의 고유 발음을 외워야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어떤 글자는 쓰이는 내용이 여러 가지이고, 그에 따라 억양도 다르다). 결국 짧은 말은 가능해도 긴 문장은 아무래도 벅찬 처지이다 보니 나름대로 잔꾀를 낸 것이, ‘작문소통(作文疏通)’이라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즉, 대화 중에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서로 문장으로 소통하자는 것이다. 내게는 옥편기능이 훌륭한 전자수첩이 있기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몇 번 시도해 본 결과 때로 유용하게 먹히곤 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현지인으로부터 중국어를 배운다는 사실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배워 나가는 중에 나는 내 중국어 솜씨를 공짜로 연마하는 방법을 가까운 곳에서 찾아내었다. 잉아를 ‘써먹은’ 것이다. 지난주에 익힌 것들을 슬금슬금 잉아에게 물어서 답변을 듣고 하는 식으로 복습을 하곤 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진티엔 티엔치 흔 이창. (오늘 날씨 참 요상하다). 스부스? (그렇지 않냐)?’라든가, 지나가다가 뭔가 예쁜 것을 보게 되면 ‘나거 부스 흔 퍄오량느? (저거 참 예쁘지 않냐)?’, 이런 식이었다. 이런 대화는 그나마 건전하고 양호한 편이었다. 때로는 주책없는 질문도 던지곤 했는데 그의 옷차림이 분명 너덜거릴 정도로 형편없는데도 불구하고, ‘구아이, 니 추안 이푸 하오! (와, 네가 입은 옷 멋진데)!’, 혹은, ‘니 따샨 자이 즈 조우모 나어 와어취? (너 이번 주말에 어디 놀러 갈 생각이냐?)’와 같은, 잉아에게는 전혀 부합될 리 없을 질문까지 던져서 공연히 머쓱하게 만들거나 대답하기 민망하게 만들곤 한 것이었다. 이런 철없는 질문을 해대도 그는 성의껏 대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나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 만족해하고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런데······, 원래 뛰는 것은 물론이요 걷거나 자전거를 탈 때 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숨이 차고 입이 마르며 이내 고통스러워진다. 그런 것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깟 놈이 좋다고 하는데 뭐 어떠랴.’하는 사악한 마음으로, 나는 내 중국어 연마를 위해 잉아를 늘 헉헉거리게 만들곤 했다.     

회사는 점점 수주받는 일이 많아졌고 그만큼 나의 베이징 생활은 토요일 일요일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돌아갔다. 그런 와중에도 잉아와 나의 아침저녁 만남은 꾸준히 이어졌다. 어느 날인가 아침 출근 시간에 잉아는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물어 왔다.

“네이거······, 루꾸오······, 니 씨환 팅 잉위에마? (저기······, 혹시······, 음악 듣는 거, 좋아하십니까요?)”


뜬금없이 왜 그러나 싶었다.

“뚜에이, 워 씨환. 크지우스, 니 운 쯔거 간 쓴머? (응. 좋아한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건데?)”

그러자 잉아는 “쯘더? 아, 하오더, 하오더! (그래요? 아, 됐어요, 됐어!)”라며 만족한 듯 헤벌쭉 웃어 보이고는 다시 열심히 페달을 밟아 대기만 했다.

‘뭐가 됐다는 게야?’

녀석이 더 말을 하지 않음에 내심 궁금증이 일었지만 짧은 중국어로 나머지까지 물어보기가 벅차다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녀석이 할 일 없이 건넨 말이겠지.

‘싱거운 녀석 같으니.’

그날 저녁, 녀석의 만족해하던 그 웃음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를 나는 알게 된다.      

퇴근 시간. 잉아는 여느 때처럼 회사 건물 입구 맞은편에 세워 둔 싼룬츠에 올라탄 채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고 있다가 건물을 나서는 나를 보자마자 신문을 위 덮개 안쪽에 끼워 넣고는 내 앞으로 달려왔다. 싼룬츠가 내 앞에 서는가 싶더니 후다닥 내려선 잉아는 느닷없이 “끄어거! (형님!)”를 외쳤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고, 처음 듣는 형님 소리였다.

‘갑자기 끄어거라니? 이 녀석 보게?’

하기야 이만큼 알고 지냈으니 형 소리는 들을 만하지만, 어째 낚시 바늘에 쓸데없는 수초나 걸리는 것처럼 썩 유쾌하지 않은 찌기가 마음에 얹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녀석의 적극성에 꿀리지 않겠다는 소견머리로 “응, 그래. 띠디야. (동생아.)”라고 응수해 줬다. 녀석은 이제 나와 정식으로 형 동생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 못내 행복한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더 크게 벌리면서 싱글벙글거린다.


“취 날리, 끄어거? (어디로 갈 깝쇼, 형님?)”

“진티엔 완샹 워 부 후이 지야. 조 리두 판디엔 뚜에이미엔바. (오늘 저녁은 집에 안 간다. 리두 호텔 건너편으로 가자꾸나.)”

잉아는 나를 태우고 몇 번 가봤던 그곳을 떠올린다.

“한지양쉬탕, 뚜에이마? (한강식당, 그렇습죠?)”

한강식당은 조선족 여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말이나 쉽게 통하자고 종종 들르던 식당이다. 녀석은 이제 “에, 에” 하면서 귀여운 표정으로 눈을 흘기며 무슨 비밀 얘기라도 하듯 은근하게 묻는다.

“니 요우 야오 흐어 지우마, 에? 부꾸오, 니 씨환 쓴머 지우? (또 술 한잔 하실라곱쇼? 그런데, 술은 어떤 걸 좋아합니까요?)”

이제는 아예 터놓고 지내자는 투로 질문을 퍼부어 댄다.

‘자식이 좀 친해졌다고 이젠 별걸 다 캐묻네? 건방지게시리.’

귀찮은 기분을 느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깐 니 조바. (그냥 가기나 해.)”

그러거나 말거나 잉아는 “하오다, 하오다. (예, 예.)”하면서도 얼른 안장에 올라타지 않았다. 왜 이러나 싶어서 빤히 바라보니 녀석은 씨익 웃으면서 안장 위쪽, 그러니까 위 덮개 한쪽에 매달려 있는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웬 낡고 작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켰다. 그러자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녀석이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렸고, 이어서 한국어 가사로 불리는 힙합 노래가 선연히 들려왔다. 내가 의아스러운 눈길을 주자 녀석은 이제 어깨를 떡하니 펴고 허리까지 곧추세우고는, 스스로 대견하다는 듯이 “잉위에, 한구어 잉위에! (음악, 한국 음악!)”한다. 아침에 내게 음악 얘기를 꺼내더니, 웬 뜬금없는 한국 노래란 말인가? 그것도 신기하게 중국 라디오 방송에서라니? 혹시, 저것이 한국의 위성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단파 라디오인가? 이런 궁금증들을 떠올리면서 못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으려니까 녀석은 드디어 장황한 설명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두어 문장까지는 얼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곧 녀석이 발음을 심하게 굴려대는 통에 그 이후로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게 되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천상 작문소통을 해야 했다.

“씨에, 씨에씨야바. (써, 써보라구.)”

그러자 잉아는 자기의 표현력이 나빠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연신 꾸벅이며 “뚜에이부치 뚜에이부치, 끄어거. (미안해요, 형님.)”하면서 내게 펜을 달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나는 펜과 작문소통용 노트를 꺼내려고 가방을 뒤졌다. 펜은 있지만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에 놓고 나온 것이다. 어떡해야 하나 머쓱하고 있자니 펜을 받아 든 녀석은 지체하지 않고 싼룬츠 위 덮개 안쪽에 찔러 넣었던 타블로이드 신문지를 빼 들었다. 그리고는 신문지 위에다 부지런히 글을 써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 내용인즉 다음과 같다. 요즘 들어 드넓은 중국 땅에 한류(韓流) 문화가 큰 유행이다 보니 베이징에는 한국 음악을 전문으로 다루는 라디오 방송이 생겼고, 내가 한국인인 고로 출퇴근길에 나를 위해 내 모국 음악을 들려주면 좋을 듯해서 라디오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충분히 감동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에 의문점부터 띄워 올렸다. 이런 잉아의 행동을 과연 순수한 감정의 발로로 볼 수 있을까? 글쎄다, 분명히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나와 싼룬츠나 끌면서 어렵게 살아가는 녀석이, 아무리 중고라지만 큰마음 먹고 라디오까지 사서 내게 이런 친절을 베푼다? 그저 자기에게 아침저녁으로 확실한 수입을 보장해 주는 외국인에 대한 비굴한 아첨은 아닐까? 혹은, 꼴사나운 천박한 오버?······

‘웨이 쓴머, 웨이 쓴머? (왜, 무엇 때문에?)’


물에 기름 탄 듯한 어색한 기분으로 어정쩡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거려 주자 잉아는 비로소 냉큼 싼룬츠에 올라타고는 식당을 바라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한국 가요를 흘리며 달려 나가는 싼룬츠에 앉아 상체를 앞뒤로 흔들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고 있는 그의 후줄근한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나는 말 그대로 일필휘지로 글을 써 내려가던 조금 전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쥐고 있던 신문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가 쓴 글이 아까와는 다른 느낌으로 보였다. 상당한 달필의 글씨들이었다. 아무렴 저네 나라 글자를 잘 쓰면 잘 썼지 못 쓸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분명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신문 지면에 인쇄된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 보니 연재소설이었다. 신문이 접혀 있는 형태를 보면 잉아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 이 부분을 읽고 있었던 듯했다. 소설이라······.

‘설마 이 녀석이 문학을 알려고? 단지 기다리는 시간이나 때우자고 이것저것 읽고 있던 것 중 하나였겠지.’

         


싼(三)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행사 일과 관련해서 현지의 어느 영상 제작 프로덕션과 ‘합작(合作)’을 끝내고 났을 때, 프로덕션 라오빤(사장)이 지역 방송국 사장이라는 자기 친구와 함께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다.

“좋은 겁니다. 그런 사람들과 자꾸 교유를 맺어야 앞으로 일하기 편해집니다.”

평소 업체 사람들로부터 공연히 접대받기를 꺼림칙하게 여겨 가능하면 피하곤 했지만, 중국이라는 특수한 사정을 생각해서 김 차장의 권유를 따라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날 저녁, 통역을 위해 조선족 여직원 한 명을 앞장세우고 나간 곳은 자오쯔(만두) 요리가 전문인 식당이었다. 여러 종류의 자오쯔 요리가 종류별로 나오는데 입에 대는 것마다 독특한 맛이 있었고, 그 맛들도 더없이 훌륭했다. 게다가 프로덕션 라오빤이 준비한 술도 무척 향이 좋았다. 좋은 자리에 좋은 음식, 그리고 향긋한 술에 취해가던 나는 모처럼 즐거워진 마음에 오늘의 접대를 감사히 여기는 뜻에서 즉흥적으로 고시(古詩)를 지어 표현해 보이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돌연한 나의 제안에 떨떠름한 표정들을 지었다. 옆에 동석한 여직원도 역시 어색해하는 표정이었다. 대개 고시는 중국에서조차 별난 분야로 취급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그런 그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호승심을 앞세웠다. 즉, ‘너희들도 어려워하는 고시를 한국인인 내가 한 번 솜씨 발휘해서 만들어 볼 테니 구경이나 해 봐라’, 다시 말해, ‘한국 사람 우습게 봤다가는 큰코다치니 까불지 마라’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런 속셈을 품은 채 취흥 중에 떠올랐던 문장부터 정리했다. 그런 후 압운(押韻)을 얼추 정하고, 가지고 다니던 전자수첩의 옥편기능을 이용해서 사성(四聲)에 맞는 글자들을 찾아내어 마침내 평기식(平起式)으로 시작되는 오언율시(五言律詩) 한 수를 지어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隨燕客問寧 수연객문영 (정처 없는 나그네 찾아와 인사함에)

  歡俉以衣整 환오이의정 (옷깃 여미어 맞아주누나)

  滿笑出於杯 만소출어배 (주고받는 술잔으로 웃음 흐르고)

  滿德盈以誠 만덕영이성 (지극한 성의로 덕이 넘쳐나네)     

  傾耳聽談中 경이청담중 (훈훈한 이야기 귀 세워 들을 때는)

  不知肴菜㓏 부지효채경 (안주 먹을 새 어디 있으랴)

  忘凄異域夜 망처이역야 (나그네 객고 잊는 이국의 밤)

  情加助皞酩 정가조호명 (나누는 정으로 마음 편히 취하네)     


내가 시를 짓는 동안 저네들끼리 두런거리며 술을 마시던 그들은 시를 적은 내 노트를 돌려 보고 나서는 웃음을 지으며 그저 ‘깐배이(건배)’를 청하기만 했다. 여전히 그들의 웃음은 분명 어색했고 말이다.

‘예상이야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감탄은 해 줘야 할 것 아니냔 말이다.’

그들의 무성의한 반응에 실망을 느꼈지만 그래도 멋들어지게 한 방 먹였다는 기분으로 내심 쾌재를 올렸다. 얘기가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갔을 즈음해서 여직원은 내 걱정이 되었는지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귀띔해 주었다.

“고시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좀 낯이 설다 말입니다. 그래서 저분들 표정이 좀 그런 거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분 나빠 하지 마시오. 예?”

‘다 알고 한 짓이니라. 어찌 보면 이것도 업체 관리 차원에서 한 일인 즉.’

속으로 이렇게 뇌까리면서도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인 양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공연한 짓을 했다, 이거네?”

여직원은 대답하는 것이 못내 어려운지 우물쭈물하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예, 좀······ 그렇다 말입니다.”

순진한 그녀의 이맛살에 매달려 있는 걱정거리를 덜어주려고 짐짓 부드러운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느긋하게 싼룬츠 뒷좌석에 앉아 잉아와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낄낄거리던 중에 문득 어젯밤의 그 시가 보고 싶어졌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봐도 되겠지만, 싼룬츠를 타고 가면서 읽어보는 것도 별미일 것 같았다.

‘기껏 어렵게 지어서 보여주었더니, 인간들하고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면서 노트를 꺼내 시가 적혀진 면을 펼쳤다. 천천히 음미하듯 들여다보니 대구(對句)가 약하고 내용도 유치한 듯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나름대로 괜찮아 보였다.

‘이 정도면 뭐.’

시도 잘 나왔겠다, 저네들의 본 문화인 고시를 지어 들이대며 으쓱할 수 있었던 어젯밤의 일도 그렇겠다, 지금 이 기분은 유쾌함 그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랴? 게다가 잉아가 모는 싼룬츠를 타고 베이징의 아침 바람을 뚫고 달리는 것도 오늘따라 너무 싱그럽기까지 하단 말이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잉아에게 돈을 건네주려다가 문득 잉아의 수려한 필체와 녀석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떠 올리며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즉, 화룡점정이랄까, 오늘 아침의 이 흐뭇한 기분에 마지막 양념을 치고 싶은 것이었다. 노트를 다시 펼쳐 잉아의 코앞에 불쑥 들이밀었다.

“니 칸바. (너 읽어봐라.)”

잉아는 뜬금없는 내 행동에 뭔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노트를 받아 들었다. 녀석은 노트에 적혀진 것이 시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곧 눈에 힘을 주어 시구를 읽어 내려갔다. 나는 웃음을 머금은 채 ‘설마 네 녀석이······’하는 여유 있는 눈길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시 읽기를 마친 잉아는 무엇을 알아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기가 막히게도 한술 더 떠서, 진지한 표정으로 “부추올라. (좋은뎁쇼.)”라고 평까지 내린다.


‘어라? 이 녀석 보게?’

웃음기를 거둔 나는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곧 ‘네 녀석이 나 듣기 좋아라고 아부를 떠는 것이겠지.’ 그렇게 여기면서 노트를 돌려받으려 했다.

“게이 워. (이리 줘.)”  

분명히 내 말을 들었음에도 녀석은 노트를 건네주려 하지 않고 시구 한 부분을 가리켜 보였다. 그의 손가락은 미련구(尾聯句)가 되는 마지막 구를 짚고 있었다. 즉, ‘情加助皞酩 정가조호명’이었는데, 그중에서 녀석의 때 낀 손톱이 짚어 보이는 글자는 ‘加 가’였다.

“쯔 쩐멀라? (이게 어때서?)”

녀석이 왜 이러나 싶어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잉아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 보였다. ‘益 익’. 그러더니 녀석은 ‘가’보다 ‘익’을 써넣어야 전체적으로 시가 좋아진다고 능청스럽게 말하기까지 한다. 황당해졌다. 곧이어 내 두 눈에 후끈 불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곧 마음을 다스리고 나서 ‘익’을 넣고 문장의 뜻을 새겨보았다.

‘ 정익조호명’

······특별히 차이 날 것이 도대체 뭐란 말이냐? 분명 ‘익’은 ‘가’와 함께 ‘더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동의어가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도 녀석은 ‘익’을 쓰는 것이 옳다고 확고부동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 좋았던 아침 기분은 일거에 무너지고 말았다.      


잉아를 돌려보내고 나서 허둥대며 사무실에 들어선 나는 내 자리에 앉자마자 덮어놓고 옥편부터 찾아 뒤적였다. 일단 ‘가’가 사성법에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즉, 측기식(仄記式)으로 맞춘 두 번째 시구에서는 ‘가’가 쓰인 자리에 높은 소리인 삼성(三聲)이나 사성(四聲)에 해당하는 글자가 들어가야 했는데, ‘가’는 분명 일성(一聲)에 해당하는 글자였다. 그리고 ‘익’은 사성 글자이니 잉아의 말이 옳은 것이다. 입에서 쓴 내가 났다.

‘허 참!······ 아무래도 어제 마신 술이 독했던 모양이군.’

억지로 위안하며 그다음으로 넘어가서 ‘가’와 ‘익’의 뜻을 비교해 보았다. 옥편은 각각 여러 뜻이 있음을 보이고 있었다. 몇 번을 비교하며 헤아리는 중에 어느 순간 갑자기 호흡이 탁 멈추어졌다. 같은 ‘더함’의 뜻으로 쓰이지만, 두 글자 간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마침내 알게 된 것이다. 즉, ‘가’는 ‘물리적인 더함’의 뜻을, ‘익’은 ‘감정적인 더함’의 뜻을 보인다는 것. 그렇다면?!······ 잉아는 내 시의 잘못된 사성법을 올곧게 함과 동시에 원래 표현하고자 했던 뜻도 유지할 수 있는, 아니 더 정확한 뜻을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글자를 제시한 것이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 녀석이 고시를 꿰고 있었다니!’

이마에 손을 짚으면서 의자 등받이 쪽으로 머리를 기대었다.

‘일개 싼룬츠 몰이꾼에게 큰 망신을 당하고 말았군······’

어제의 승리는 오늘의 대패로 전세 역전이 되고 말았다. 화를 진정시키려고 차를 받아 마셨다. 뜨거운 찻물을 한 모금 두 모금 조심스레 넘기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시골에서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았을 녀석이 고시를 알고 있을까? 중국의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문화혁명 당시 중국의 전통문화들은 거의 박멸 당하다시피 했고, 아무리 변화된 오늘날이라 해도 이제 전통문화를 다루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궁금증이 물밀듯 일어났다. 녀석이 신문을 늘 끼고 살면서 소설을 즐기는 것을 보면, 혹시 원래 문인 집안의 후손이 아닐까? 문인 신분이었던 집안 어른들이 당시 홍위병들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기고는 훗날 가문의 전통을 지키고자 후손인 잉아에게 그 맥을 이어 준 것은 아니냐 말이다. 그렇다고 녀석에게 무턱대고 물어본다는 것도 껄끄러운 일일 것이고, 또 그렇게 어려운 대화를 나누기에는 아직 내 중국어 솜씨는 일천 할 뿐이다. 장시간 생각한 끝에 나는 녀석을 인정해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녀석은 비록 시골 출신으로 지금의 모습은 초라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고등교육을 받았고 상당히 ‘문학적인 놈’이라는 것을 말이다. 기분이야 말할 수 없이 찜찜했지만!     


저녁 퇴근길에 잉아는 나를 한강식당으로 데려다주었다. 온종일 불편한 심기에 시달렸던 나는 식당가는 동안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녀석은 식당으로 가자는 말 이후로 왜 이렇게 조용한가 싶은지 조심스러운 눈길로 띄엄띄엄 나를 돌아보곤 하면서 언제 말을 섞어야 하나 궁리하는 듯했지만 내내 냉랭하기만 한 내 얼굴빛에 끝내 말문을 열지 못했다. 식당에 도착하고서는 말 없이 잉아에게 돈을 건네주었고 잉아 역시 내 눈치 한 번 더 보고 돌아서려는데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이 들었다.

“워 치판 지우 썅 워 지야. 이 쌰오스 호우 니 썅 쯜리 능후이 라이느? (밥 먹고 나서 집으로 갈 거다. 너 한 시간 후에 이곳으로 와 줄 수 있느냐?)”

곧 한 시간 동안 잉아를 기다리게 만든 것인데 원래 싼룬츠 몰이꾼들이란 이콰이(일원) 버는 것에도 눈에 불을 켜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이 시간이 되면 깨끗하게 일을 접고 모두 거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나는 그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고약한 요청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녀석은 이제야 내 입에서 말이 나오는 것에 마음이 풀어졌는지 기분 좋게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다.

“하이 씨엉! (아, 물론입죠!)”

잉아는 ‘이 쌰오스 호우 (한 시간 후)’를 복창하고는 싼룬츠를 몰고 사라졌다.     

식당에 들어간 나는 싼 가격에 비해 버섯 맛이 괜찮은 ‘썅꾸차이신’ 안주에 늘 마시는 ‘찡지우’를 곁들이면서 혼자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즐겼다. 베이징에 온 지도 벌써 몇 달째. 이날 따라 이국에서의 객고가 제법 쓸쓸하다는 생각이 몰려들었다. 그런 허한 마음을 독주에 의지해서 달래고 있는데 갑자기 등뼈에 통증이 몰려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곧잘 나를 괴롭히던 지병이 얼마 전부터 다시 시작된 것이다. 집 떠나 몸 아픈 것처럼 서러운 것은 없지, 하는 생각이 들자 가뜩이나 허해진 기분이 더 처량해지고 말았다.


엊그제 조선족 간호사들이 즐비해서 한국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치료받을 수 있다는 어느 한중합작(韓中合作) 병원을 찾아갔을 때 나를 검진했던 한족(漢族) 여의사는 무려 스물여섯 가지의 약이 들어가는 처방전을 써주었다. 빽빽한 글씨로 어지럽기만 한 처방전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조선족 간호사가 다가와 의사의 소견을 들려주었다.

“선생님은 지금 몹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뇌의 아래쪽 신경계 일부 세포가 제법 파괴된 상태인데 그쪽에 문제가 있을 때 나타나는 첫 신호가 바로 척추 통증입니다. 이런 정도는 침과 약으로 두 달 정도면 치료 가능하다고 합니다. 다만 선생님께 우울증 증세가 있는 것이 걱정이라고 합니다. 몸이 열을 내는 체질인데다 혈압도 높고요. 그러니 가능하면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시고, 특히 술 좋아하신다는데 혼자 술 드시는 것 자제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운동을 해 보시는 것이 어떠냐고 합니다.’

‘척추 아픈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뭐? 생뚱맞게 우울증까지 생겼다?’

기분이 더 씁쓸해지는 대목이었다. 우울해지는 기분을 거푸 따라 마시는 술에 섞어서 꿀꺽꿀꺽 삼키는 중에 바깥에서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삼월 중순에 들어서면서부터 베이징 거리에는 거친 바람이 수시로 불어댔다. 황사가 몰아닥치기 전에 이런 바람이 분다고 했다. 이 바람이 얼마나 센가 하면 택시에서 내릴 때 문을 열 수 없고, 또 몸을 숙인 채 앞으로 뛰어나가려 해도 뛰다 보면 오히려 밀려서 뒤로 쳐질 정도였다. 게다가 늘 흙가루를 동반하기 때문에 한바탕 돌풍을 맞고 나면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를 입안의 흙을 뱉어내느라 꽤 번잡을 떨어대야 했다. 한국의 경기도 면적과 비슷한 정도로 넓디넓은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완전 평지에 세워졌기 때문에 시 외곽부터 강풍을 제어할 만한 마땅한 방패막이 없다. 또 그 바람이 도심지의 빌딩들을 타고 돌 때는 훨씬 거칠게 변하기도 한다. 구릉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완벽한 평지인지라 덕분에 자전거 천국이 될 수 있는 베이징이지만 그 대신 거칠 것 없는 돌풍에 시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다. 식당 건물 외면 유리가 돌풍의 힘을 정면으로 버티고 있는지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음험한 충돌 소음이 식당 홀에 울려 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홀 안의 손님들은 그런 정도는 예삿일인 양 그저 먹고 마시는 것에 열중한 채 큰 소리로 떠들어 대었다. 중국인들이 식당에서 그렇게 떠드는 것이 처음에는 몹시도 불편했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된 듯했다. 그나저나 등뼈는 여전히 욱신거려왔기에 그것을 달래려고 주먹으로 등 뒤 아픈 부위를 툭툭 쳐댔다. 갑자기 조용히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화면에 뜬 발신자 번호는 우 사장이 베이징에서 쓰는 핸드폰 번호였다.

“연락도 없이 어찌 들어온 거야?”

“나 들어간다고 서울에서 전화 없었냐?”

“전화는커녕 메신저로도 아무 얘기 없었다.”

“이것들이 사장이 거둥을 하는데······.”

“언제 들어온 거야? 사무실엔 안 들르고 지금까지 어디 계셨데?”

“먹고 살려고 B전자에서 여태껏 회의 했다, 왜?”

“뭐, 급한 프로젝트라도 떨어진 거야?”

“그건 나중에 말하고, 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한강식당이다, 여기로 와라. 그렇지 않아도 저녁 먹고 있던 참이다.”

“나 지금 여기 B전자 분들 모시고 리두 호텔에 곧 도착하니까 지금 나와라. 근데, 너 거기서 술 좀 마셨냐?”

뭔가 일거리가 새로 생길 때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이 ‘광고주 접대’는 정말이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일차 자리는 가볍게 중국 요리에 중국술로 때우지만, 이차 자리는 한국의 룸살롱 격인 ‘단란주점’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당연히 양주를 마셔야 했는데 나는 양주가 맞지 않는 체질의 소유자이다. 게다가 이 인간들이 얌전하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꼭 폭탄주를 만들어 돌려대는 통에 다음 날은 아예 시체가 되곤 해야 했다. 내게는 견디기 힘든 고욕이 아닐 수 없다. 속으로 ‘세상 어디든 편한 곳 없지.’ 쓴 생각 곱씹으며 서둘러 계산하고는 식당을 나섰다.     


다음 날 아침. 아니나 다를까, 전날 밤의 폭탄주로 초주검 된 상태에서 겨우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여덟 시였다. 벌써 일어난 우 사장이 성장 차림에 넥타이를 꿰면서 내 방을 기웃거렸다.

“어제 별로 마시지도 않더구만 다 죽어 가냐, 죽어 가길? 일어나 얼른. 출근하자.”

“야, 나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켜보던 우 사장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혼자 현관문을 나서면서 말했다.

“늦어도 열 시까지는 나와라. 회의해야 하니까.”

아홉 시가 되어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콩 국물부터 찾아 허겁지겁 들이켰다. 그러다가 뭔가 내 뇌를 탁하고 쳤다.

‘아차!’

빌어먹을······. 엊저녁 잉아를 한 시간 후에 식당으로 다시 오라고 해 놓고는 까맣게 잊은 채 광고주 접대한답시고 사라졌으니!······     

아파트 단지 입구를 뛰쳐나갔으나 잉아의 싼룬츠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아홉 시 이십 분. 보통 여덟 시 반이 아침에 잉아의 싼룬츠를 타는 시간이었으니 대략 한 시간이 지나고 난 시각이다. 난감해진 기분으로 저녁 퇴근 시간 때면 녀석을 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머금는 중에 싼룬츠 행렬 맨 앞에 있던 웬 중년의 몰이꾼 사내가 자기 싼룬츠를 몰아서 슬금슬금 내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손짓하며 내게 무슨 말인가를 열심히 떠드는 것이, 잉아는 이미 다른 손님을 태우고 사라졌다는 얘기인 듯했다. 말을 마친 그는 계면쩍은 웃음을 머금으며 자기 싼룬츠를 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출근 때가 훨씬 지난 시간이라 빈 택시도 없었기에 별수 없이 그의 싼룬츠를 올라탔다. 몰이꾼 사내는 정성 들여 페달을 밟았다. 달리다가 도로 면이 울퉁불퉁한 곳에 이르면 요령껏 피해서 달려 주는 둥 비록 찌그럭거리는 싼룬츠지만 승차감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역력했다. 어느 정도 달렸을까, 그는 나를 한 번 힐끔 돌아보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네이거······, 타 잉까이 떵 씨엔승, 딴. (있잖습니까요······, 녀석은 선생을 기다렸어야 했습죠, 예.)”

아무래도 평소 잉아와 나와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는지, 몰이꾼은 잉아가 나를 기다리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의 말을 주절주절 풀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는 드디어 본론을 꺼내기를, 자기도 아침저녁으로 나의 출퇴근을 도울 수 있다며 “쓰콰이, 쓰콰이. 하오바? (사원, 좋습죠?)”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평소 내가 잉아에게 내주던 우콰이(오원) 보다 싼 가격으로 나를 설득하려는 것이다. 기회를 틈타 뜻을 이루려는 그의 심보가 얄미웠다.

“팅부동. (못 알아듣겠소이다.)”

딴청을 부리자 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팅부동아? (못 알아들어요?)”하더니 이제는 짧게 끊어서 외친다.

“메이 티엔 쟈오, 완샹, 워더 싼룬츠, 쓰콰이! (매일 아침, 저녁, 내 삼륜차, 사원!)”

그제야 어쩔 수 없이 알아들은 양 웃어 보였더니 “하오바? 하오바? (좋습죠?)”하면서 나의 답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그를 약이라도 올릴 양으로 대답해 주지 않았다.

“깐 조바. (그냥 가기나 합시다.)”

몰이꾼은 잔기침을 섞어가면서 혀를 심하게 굴려대는 북경식 말투로 뭐라 구시렁거렸다. 그런 소리를 듣다 보니까 속이 더 니글거려 왔다. 괜히 이 싼룬츠를 탔구나 후회를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내릴 수는 없는 일, 억지 트림을 만들어내면서 속을 달래기나 해야 했다.


싼룬츠가 두 번째 사거리를 지나치려 할 때였다. 문득 무엇인가 오른쪽 시선에 걸리는 듯해서 고개를 돌아보니 잉아가 싼룬츠를 세운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몸을 빼어 녀석을 부르려는데 웬일인지 녀석은 얼른 싼룬츠를 돌리고는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어라? 저 녀석 보게?’

내가 타고 있던 싼룬츠를 급히 멈추게 하고는 멀어져 가는 녀석을 불렀다.

“잉아! 잉아! 꾸올라이, 꾸올라이바! (이리 와, 이리 오라구!)”

그러나 녀석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무시한 채 내 눈앞에서 총총히 멀어져 갔다. 몰이꾼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잉아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뭐라고 떠들어댄다. 나는 그렇게 사라지는 잉아를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당겨 물었다.

‘부르는데 돌아보지도 않아? 괘씸한 놈 같으니!’

이제 나는 몰이꾼에게 내 새로운 결심을 들려주어야 했다.


“하오! 진 티엔 완샹 리우 디엔, 니 따오 따샤 치엔미엔, 랑호우 떵 워! (좋소! 오늘 저녁 여섯 시에 건물 앞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도록 해요!)”

그러자 그는 화들짝 신이 나서 “밍빠이, 밍빠이! (알겠습니다요!)”를 연신 주워 올렸다. 열이 뻗친 나는 결국 끓어오르는 기분을 참을 수 없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깐 콰이 조! (빨리 가기나 해요!)”

내 두 번째 ‘출퇴근 전용 싼룬츠 기사’가 된 중년의 몰이꾼 사내도 덩달아 큰 소리로 “하이 씨엉! 하이 씨엉! (그럽죠! 아, 그럽죠!)” 노래를 부르듯 대답하면서 페달을 힘껏 밟아 댔다.         


      

쓰(四)     


온 직원들과 함께 근 일주일 동안 고생한 끝에 전시회 운영안과 제작물 디자인이 드디어 광고주로부터 오케이 확정을 받게 되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김 차장더러 회식을 준비하라고 했다.

퇴근 후 오늘의 회식 장소는 시내에 있는 위구르족 전통 식당으로 정해졌다. 먹고 마시는 것도 괜찮지만 재미난 전통 공연들이 행해진다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 약간은 흥분된 기분으로 건물을 나섰다. 리우 디엔(여섯 시). 몰이꾼 사내는 자신의 싼룬츠 옆에 붙어 서서 천안문 광장을 지키는 위병보다 더 빳빳한 차렷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아침저녁으로 볼 때마다 웃음을 참아야 했다.

‘저것도 참 대단한 정성이지.’

돈을 건네주면서 오늘은 다른 약속이 있다는 말로 몰이꾼을 돌려보냈다. 일도 하지 않고 공돈을 벌게 되어 신이 난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손님을 찾으러 바람같이 사라졌다.

직원들과 왁자하게 떠들면서 택시를 잡아타려고 큰길에 다다랐을 때였다. 큰길 가에는 몇 대의 빈 싼룬츠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중 한 대가 황급히 자리를 이탈해서 움직였다. 손님도 태우지 않은 채 불쑥 출발하는 것이 이상하다 싶어 무심결에 돌아보았다. 몰이꾼은 머리털이 헝클어져 까치집이 제대로 자리 잡힌 두상의 젊은 사내였는데, 비쩍 마른 몸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잉아의 뒷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잉아!”하고 불러나 볼까 하다가 아닐 수도 있겠지, 또 이제 와 아는 척할 필요도 없겠지, 하는 생각에 몸을 돌리고 말았다.


직원들과 나누어서 올라탄 택시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뭔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잉아는 그날 이후 왕징신청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분명 나 때문에 영업 구역을 바꾸었겠지? 그런즉 출근 시간에는 일체 볼 수가 없었고 말이다. 그렇지만 퇴근 때면 싼룬츠를 탈 때마다 어쩌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한 대의 싼룬츠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한 것은, 그곳은 큰 거리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이어서 손님이 거의 없는 곳인데도 싼룬츠가 서 있었지. 그곳은 싼룬츠 몰이꾼에게는 분명 ‘비 영업적’인 장소가 분명한데 말이지. 그렇다면······, 혹시 그 싼룬츠 몰이꾼이 잉아 아니었을까?······ 아냐 아냐, 그 싼룬츠 위 덮개 색깔은 예전의 잉아 것과 달랐었단 말이야. 그렇다면 그 몰이꾼은 잉아가 아닐 여지도 있는 것이고······. 그런저런 생각을 굴리는 중에 갑자기 서늘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김 차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김 차장, 거 싼룬츠 말이야.”

“예? 싼룬츠요?”

“응. 싼룬츠는 다 자기 것들인 게야?”

김 차장은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주면서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떠올렸다.

“다는 아닙니다. 몰이꾼 중에 돈 없이 상경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임대를 한다 말입니다.”

‘임대!’

잉아는 임대 몰이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라도 다른 싼룬츠와 바꿀 수 있을 것이고. 손님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멍청하게 뭉그적거리던 그 싼룬츠는 잉아의 것일 확률이 갑자기 높아졌다. 스산해지는 기분에 나는 눈을 감았다. 녀석이 그동안 내 주변에 머물면서 나를 몰래 지켜봐 온 것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자기와의 신의를 깬 채 뻔뻔스럽게 다른 싼룬츠나 열심히 올라타는 내 모습에 분노를 되새기면서 말이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나에 대한 원망, 혹은 증오, 나아가서 때를 틈타서 내게 복수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날의 회식 기분은 한순간에 싸늘히 식고 말았다.               



우(五)     


구오지짠란쫑신(國際展覽中心)에서 개최되는 ‘제5회 베이징하이테크전’에의 B전자 전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나는 직원들과 함께 만반의 준비를 해 나갔다. 전시 세트 제작, 도우미 선발과 도우미용 의상 제작, 영상물 편집 제작, 이벤트 프로그램 출연진 섭외, 운영 매뉴얼 작성, 기념품 제작 등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하나라도 빠트림 없도록 매일 같이 점검표를 놓고 확인했다. 기본 계획서 통과 후 서울 본사로 들어갔다가 다시 행사가 가까워지자 베이징으로 날아온 우 사장도 진행에 문제없다고 판단하고는 콧노래나 흥얼거리면서 직원들이 움직이는 것에 별 토를 달지 않았다. 우 사장은 온종일 오늘 저녁 식사 프로그램이나 궁리했는지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내 방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이, 오늘 저녁은 양고기 꼬치구이다.”

“양고기?”

“왜, 싫어?”

“그게 아니고······”

얼마 전부터 나는 의사의 충고대로 운동을 시작했다. 왕징신청 단지 북문 안쪽에 있는 휘트니스 센터를 다니는 것이었는데, 매일 가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차라리 노역일 것 같고, 또 술집에서 오붓하게 나만의 저녁 시간을 즐기는 것도 내게는 소중했던 만큼 운동은 이틀에 한 번씩 하는 것으로 정해 두었다. 즉, 월 수 금요일을 운동하는 날로 하고, 화목토요일을 술 마시는 날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금요일. 운동을 하는 날이다. 우 사장은 나를 치뜨고 내리뜨고 보면서 투덜거렸다.

“야, 한 번쯤 건너뛴다고 뭔 일 나냐? 황천 간 장모가 살아오기나 하냐? 하냐고!”


사무실을 나선 우리는 싼룬츠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 우 사장이 불쑥 물어왔다.

“니 전용 싼룬츠, 거 왜 있었잖아, 젊은 놈. 그런데 오늘은 아니네?”

그간의 사정을 모른 채 던지는 질문에 잉아 얘기를 꺼내는 것이 귀찮았다.

“그렇게 됐다······.”

잉아의 모습은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적당히 구워진 양고기의 맛을 음미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중에 무엇인가 머리 속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어이 우 사장. 내 전용 기사가 젊은 놈이었다는 거, 어떻게 안 거야?”

내 물음에 우 사장은 술 한 잔 털어 마시고는 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기억을 살려내었다.

“저번이지 아마? 왜, 그때 B전자 인간들하고 술 먹은 다음 날, 너 골골대느라 나 먼저 출근 했잖아?”

나도 우 사장을 따라 그날의 상황을 되짚었다.

“그랬지. 그런데?”

“그런데는 뭘 그런데야? 아파트 나서자마자 싼룬츠를 잡아타려는데 그게 바로 그놈 싼룬츠였잖아. 그런데 그놈이 자기는 그 시간에는 어떤 한국 사람하고 약속이 되어있다고 하데? 그래서 혹시나 하고 니 얘기를 하니까 맞는다는 거야. 꽁지머리 한국 놈이면 왕징신청에 너밖에 더 있냐?”

우 사장을 쳐다보는 내 눈이 실눈으로 변해갔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 친구 나랑 사는데 오늘 아침에는 좀 늦게 나올 거다, 아마 이따 아홉 시 반이나 되어야 나올 거니까, 나 태워다 주고 와도 된다, 그랬지. 그랬더니 낼름 태워주더구만.”

머릿속이 텅 비어져 왔다.

“그놈 웃기더라. 전날 너 술 많이 먹었냐며 걱정까지 하더구먼. 마누라라도 되나, 자식이······.”

그렇다면······. 일이 꼬여도 지저분하게 꼬인 것이다. 이맛살을 접으며 생각의 조각들을 꿰맞추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잉아는 일단 우 사장을 태우고 회사로 간 것이다. 그리고 우 사장이 일러준 시간을 깜냥하고는 여유 시간을 이용해서 다른 손님을 한 명 정도 더 태웠을 것이고. 그런 후 예정대로 아홉 시 삼십 분에 맞추어 왕징신청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중에 내가 다른 싼룬츠를 잘도 타고 지나간 것이다. 결국 잉아는 그 전날 저녁과 그날 아침 연이어서 나로부터 확실하게 배신당한 꼴이 된 것이다! 잉아는 마음이 여리다 보니 그만한 상황이라면 충분히 화가 났을 것이고. 그 이후 잉아는 증오심을 품으면서도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삐친 여자아이 같은 심정으로 내 주변을 맴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때를 틈타서 나에게 복수를 해 올 확률은 더더욱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


“그날 그놈이 너 태워주면서 뭐라 걱정하지 않데? 워더 아이른, 니 쩐머양, 메이스마? (우리 자기, 어때요, 괜찮나요?)”

우 사장의 짓궂은 말에 나는 찡지우 한 잔을 쪼옥 들이키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아침 부로 깨애끗하게 갈라섰다, 이 떡시루에 담아 죽일 놈아······.”          



리우(六)     


신문과 방송은 올해의 전대(전국인민대표회의)에 대한 뉴스를 수시로 쏟아내고 있었다. 이번 전대에서는 중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둥 이런저런 예측 보도가 앞을 다투었다. 그런데 전대가 가까워지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싼룬츠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던 것이었다. 내 전용 싼룬츠 몰이꾼도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 지 이틀이 지나고 있었다.

“이게 뭔 현상인 게야?”

사무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내가 심드렁하게 묻자 김 차장은 지나가는 식으로 대답했다.

“전대 때문이죠, 뭐.”

“전대? 아니, 왜?”

내가 한 켜 더 깊은 질문을 하자 그는 마시고 있던 화차(花茶) 잔에 두 번째 물을 받아내어서는 어슬렁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원래 베이징은 시골 출신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 있다 말입니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서는 시골 사람들이 너도나도 돈 벌겠다고 꾸역꾸역 도시로 몰리고 있고 말이죠.”

나는 우리의 옛 시절이 생각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땅이나 파던 사람들이 도시 와서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습니까? 공사판에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싼룬츠나 몬다 말입니다. 그런데 전대가 열리니까 일종의 청소를 한다 이겁니다.”

“청소?”

연이은 내 물음에 김 차장은 대답 대신 먼저 뜨거운 찻물을 조심스럽게 후후 불면서 한 모금 마셨다.

“거, 싼룬츠라는 게 시내 관광지구에는 몇 대 허가 받고 영업을 하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는 불법이다 말입니다. 그러니 솎아내는 거죠. 뭐, 들리는 얘기로는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너무 들끓어 대니까 이참에 붙잡아서 내려보낸다는 말도 있고 말입니다.”

설명을 듣고 상황 파악은 되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무 한다 싶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싼룬츠 출퇴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인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자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그리고 젠장! 그런 심정에 툭 걸려 나온 잉아 생각에 내 기분은 한순간에 일그러져야 했다.

“······김 차장, 하나 더 물어보세.”

“그러시죠.”

“중국 사람들 말이야, 만약에 배신당하게 되면 꼭 복수를 하나?”

나의 엉뚱한 이 질문에 김 차장은 털털 웃음을 지었다.

“중국 사람이면 복수하고 중국 사람 아니면 복수하지 않고, 뭐 그러겠습니까? 사람이란 다 똑같죠.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겁니다.”

“뭘 어떻게?”

“중국 사람이 가장 큰 덕목으로 치는 게 뭔 줄 아시죠?”

“그야 의리 아니겠어?”

“옳습니다. 그렇다면 왜 의리를 크게 생각하는지도 잘 아시겠네요. 그저 중국에서는 배신당하지 않게 미리 손쓰는 게 상책이다 말입니다.”

백 프로 내가 원하는 답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슴푸레 뭔가 이해되는 점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김 차장은 화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런데 별걸 다 묻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야.”

나도 참 한심한 질문을 했다 싶어 머쓱해졌다.

‘잉아, 이 빌어먹을 녀석!’    


      

치(七)     


왕징신청 아파트 단지 길 건너에 제법 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왕징신청의 경비를 맡아보는 보안대원들이 아침마다 구보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어느 날, 택시를 타고 퇴근을 하는데 단지 앞 사거리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 공터에 커다란 굴삭기 한 대가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사거리 일대를 뒤흔들 만한 소음을 내면서 뭔가 부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서문 앞에서 택시에서 내려선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소음인가 궁금해서 길 건너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커다란 굴삭 암(Arm)이 몰수되어 한곳에 몰켜 있는 싼룬츠들을 무지막지하게 내려쳐서 납작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택시 기사가 같이 지켜보다가 싼룬츠 몰이꾼들이 많이 잡혔다고 일러줬다. 그러고 보니 공터 한쪽에는 이미 박살난 싼룬츠들이 보기 사납게 나뒹굴고 있었다. 괴수 공룡이 무지막지한 발을 들어 눈앞의 작은 먹잇감을 박살 내는 듯한 모습에 시뜻해진 나는 몸을 돌려 서둘러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공안(경찰)의 일차 일망타진 이후 싼룬츠들은 화자디 거리와 왕징신청 아파트 단지 일대에서 게 눈 감추듯 사라졌나 싶더니, 한 며칠 지나자 다시 한두 대씩 모습을 보이면서 눈치껏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다가 공안 눈에 띄면 영락없이 잡혀가서 ‘형장의 고철 덩어리’로 사라져야 했지만. 가끔은 공안 순찰차로부터 잡히지 않으려고 티라노사우르스에게 쫓기는 작은 초식공룡들처럼 정신없이 도망치는 싼룬츠들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런 뒤숭숭한 날들이 흐르는 동안 나는 여전히 아까운 돈을 써가며 택시를 타고 출퇴근해야 했고 말이다.      

엄청난 폭염. 도시는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베이징의 여름 날씨는 막바지 맹위를 떨치며 하루하루를 쇳물처럼 늘어뜨리고 있었다. 어쩌다 사무실에서 거리로 나서면 그야말로 삶는 가마를 뒤집어쓰는 듯했다. 가로수 그늘조차 이글거렸고 사람들은 축축 늘어져 휘적거렸다. 낮에 업무 관계로 협력업체의 세트 제작 공장을 다녀오는 바람에 땀을 한 양동이는 족히 흘렸던 어느 날 저녁. 거리가 폭염의 압박에서 풀려나 어느 정도 제정신을 되찾았을 즈음 되었을 때 사무실을 나선 나는 포장도 되지 않은 회사 건물 앞 황량한 흙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갈등에 빠졌다. 오늘은 수요일. 운동하는 날이다. 낮에 그토록 시달려서 그런지 운동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게 느껴진다. 그저 술 생각만 간절할 뿐이다. 아무래도 우울증이 더 깊어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이를 앙다물었다.

‘집에 가자. 객지 생활은 의지가 굳세어야 해! 그리고 운동은 내 의지의 표현이야!’

택시를 잡으려고 차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차도 쪽에서 싼룬츠 하나가 붉어지는 석양을 뒤로한 채 흔들흔들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을빛을 배경으로 사람의 형체가 어른거렸는데 몰이꾼의 몸만 보이는 것이 분명 빈 싼룬츠였다.

‘허, 요즘 같은 때에 공안 따윈 무섭지 않다 이건가? 배짱 하나는 좋군.’

보통 이 정도로 늦은 저녁 시간에는 그나마 눈치껏 영업하던 싼룬츠들도 거리에서 일시에 사라지건만 웬일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오랜만에 싼룬츠를 타볼 수 있게 되었음에 기분이 조금 즐거워졌다.

“에이! 싼룬츠! 싼룬츠!”

내 부름을 듣기는 한 건지, 몰이꾼이 노인네인가 싶을 정도로 싼룬츠는 여전히 느림보 속도로 굴러왔다. 오랜만에 싼룬츠를 타게 되었겠다, 술의 유혹을 과감히 떨치고 운동을 하기로 한 내 굳은 의지가 기특도 하겠다, 이제 나는 한결 여유로워진 기분이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강렬한 노을빛에서 시선을 돌려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담배 두어 모금을 피웠을까 싶을 즈음 해서 싼룬츠는 겨우 내 앞에 정지해 섰다. 싼룬츠 뒷좌석에 올라타기 전 행선지를 말하려고 몰이꾼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시선을 정면에 둔 채 덤덤히 안장에 앉아 있는 몰이꾼은 상당히 수척해진 얼굴이었지만 분명, 잉아였다.


“잉아?!”

녀석은 대답 없이 잠깐 고개를 꺾어 내 발끝을 내려다보면서 푸석푸석한 표정으로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릴 뿐이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녀석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하나, 그냥 내쳐 올라타야 하나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설마 네 놈이 이제 와 내게 무슨 짓을 하랴 하는 생각에 미치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싼룬츠에 올라앉았다. 녀석이 살짝 가래 끓는 소리로 물었다.

“······취 니, 지아마? (집으로, 가는 겁죠?)”

“······뚜에이. (응.)”

잉아는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싼룬츠는 아까 내게 다가오던 그 속도와 별반 차이 없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래도 녀석의 안색이 수상했다. 나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나무라는 말투로 물었다.

“니, 쭈이진 꾸오더 루흐어야? (너,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야?)”

잉아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짧게 대답했다.

“꾸오더 하오. (잘 지냈습니다요.)”

‘잘 지냈다고? 자식이 체면치레하고 있나?······’

나는 틀어진 기분을 삭이면서 잉아의 수척한 얼굴로 궁금증을 돌렸다.

“스부스······ 니, 승삥라? (혹시······ 너, 병이라도 났었냐?)”

마치 취조하듯 들이치는 내 질문에 녀석은 그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다른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머뭇거려졌다. 이제 잉아는 말없이 페달을 밟기만 했고, 나 역시 담배나 피워댈 뿐 이제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그러면서도 나는 온 신경을 끌어올린 긴장된 상태로 녀석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언제 어느 순간 녀석이 갑자기 와락 성질부리며 달려드는 것 아닐까 싶어서였다.      

싼룬츠가 벌써 왕징신청의 서문을 바라고 사거리에 들어서고 있는데도 녀석은 다행스럽게 별다른 움직임 없이 묵묵히 페달만 밟았고 나는 또 나대로 녀석을 주시하면서 녀석과의 말 물꼬를 어떻게 터야 하나 하는 생각만 내내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거리를 막 통과할 즈음, 사거리 지나 서문 쪽 도로에서 두 대의 싼룬츠가 페달 밟는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무엇인가 사단이 난 것이다. 잉아도 사태가 심상찮음을 단박에 눈치 채고는 싼룬츠를 세웠다. 바람같이 지나치던 몰이꾼 한 명이 그 와중에도 동종업자 정신을 발휘한답시고 잉아에게 크게 외쳤다.

“후일라이, 후일라이! 찡츠 추씨엔 자이 씨먼! (돌아와! 서문 쪽에 공안 차 떴다!)”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음을 간파한 나도 엉겁결에 외쳐댔다.

“잉아! 취 삐에드 띠팡! 조 리두 판디엔바! (다른 곳으로 가자! 리두 호텔로 가자고!)”

리두 호텔은 오던 길을 반대로 가야 했다. 그러나 잉아는 나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끄어거, 워 지다오. 진완, 니 때이 취 뚜안리엔. (알고 있습니다요. 오늘 저녁, 형님은 운동해야 합죠.)”

뭔가에 뒷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았다.

‘내가 운동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게지?······ 가만, 게다가 날짜까지 알고 있잖아?!’

내가 어처구니없어하든 말든 잉아는 이제 서둘러 싼룬츠를 오른쪽으로 돌려 동문을 바라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두 다리에는 이미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그만큼 싼룬츠도 거침없이 속도를 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서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파트 동문에 이른 잉아는 동문마저 지나쳐서 곧장 북문을 향해 질주했다. 그렇다. 북문! 왕징신청 단지 안에는 두 개의 휘트니스 센터가 서로 떨어져 있다. 녀석은 내가 다니는 휘트니스 센터가 북문 안쪽에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섬뜩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이것은 또 무슨 일일까?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죽어라 내달리는 잉아를 지켜보던 나는 어느 결인지 섬뜩한 기분 대신 점점 바빠지는 내 심장 박동을 느껴야 했다. 게다가 손에 땀도 나면서 입이 말라온다. 이제는 공안 순찰차가 있나 없나 부지런히 주변을 살펴댄다. 그러다가 결국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까지 터져 나온다.

“조! 콰이 조! (달려! 어서 달려!)”

황당하게도 녀석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는 동안 시간은 또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던지!     

 

드디어 싼룬츠는 그 넓은 단지 외곽의 절반을 넘게 달려 무사히 북문 입구에 도착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싼룬츠에서 황급히 내려선 나는 서둘러 돈을 주면서 잉아를 재촉했다.

“니 콰이 조! (어서 가거라!)”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왜앵’하는 확성기 음이 귀를 찢듯이 들려오더니 곧이어 공안 순찰차가 북문 안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싼룬츠를 다급하게 밀어 댔다.

“잉아! 조, 조! (달려, 달리라고!)”

공안 요원이 차에서 내려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상황은 이미 절망적이었다. 허겁지겁 싼룬츠를 돌리려던 잉아는 결국 공안 요원의 거친 손에 붙잡혀 안장에서 끌어 내려졌다. 잉아는 끌어내려지자마자 머리통부터 두 대 얻어맞았다. 그것을 보고 불끈 분노가 치민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공안 요원에게 달려들었다.

“도우 꾸아이 워, 도우 꾸아이 워! 스 워 랑 탈라 워더!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라고! 내가 저 녀석한테 타자고 했단 말이야!)”

그러자 다른 공안 요원이 나서서 나를 가로막으며 도끼눈을 한 채 물러서라고 밀쳐댔다. 속이 타는 심정으로 잉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무엇을 믿고 그러는지 녀석은 그다지 놀라거나 겁에 질린 표정은 아니었다.

“잉아?!”

녀석은 오히려 만족스러운 얼굴로 평안한 웃음까지 머금고 있다.

“메이꽌시, 메이꽌시. 끄어거, 니 취 뚜안리엔바. (난 괜찮으니까, 형님은 가서 운동이나 합쇼.)”

아까의 퀭해 보였던 잉아의 눈은 언제인가 내가 봤던 그 맑기만 한 눈빛을 띠고 있었고, 나는 그 눈을 바라보면서 공허하게 혼잣말을 흘릴 뿐이었다.

“웨이 쓴머, 웨이 쓴머······. (왜, 무엇 때문에······.)”    


      

빠(八)     


그 뜨겁던 여름은 마침내 저 스스로 흐물흐물 물러나고, 가을은 오는 듯 사라져 갔다. 그리고 이내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제 신흥 상권으로 확실하게 발돋움한 화자디 구역과 왕징신청 일대에는 새 건물 새 식당들이 속속 들어섰다. 그토록 모진 고난을 겪고 난 싼룬츠들도 단속이 풀리면서 예전처럼 이 거리 저 거리를 누비며 돌아다녔다. 게다가 애벌레가 허물벗고 성충이 되듯 훨씬 더 세련된 모습으로 승객들을 유혹했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도 어제오늘 다르게 변해갔다. 그러나 나의 일상만은 제자리에 머문 채 물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일 이후, 나는 다시는 싼룬츠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거리에서 잉아의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다.          



지우(九)     


2003년의 해도 거의 기울어 연말이 가까워지자 거리 곳곳은 크리스마스 장식 트리와 안개 조명으로 치장되어갔다. 아파트 단지 역시 광장 여기저기를 울긋불긋 물들인 채 요란을 떨어댔다. 베란다 너머로 아래쪽의 광장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문득 거실을 돌아보았다. 거실에는 트렁크 두 개가 썰렁한 모습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이제 나는 내일이면 일 년간의 중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간의 생활 동안 이곳 문화에 쉽게 적응되지 않아 결국 회사 직원들과 융화되지 못했고, 그것을 포함한 다른 몇 가지 이유로 인해 관리자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병은 더 악화만 되었다. 척추 통증은 여전했고, 거기에 점점 더 심해지는 우울증도 문제였다. 그동안 통원치료와 운동을 꾸준히 했는데도 차도는 없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남은 길은 귀국하는 것뿐이었다.

‘벌을 받는 거겠지.’

어쩌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잉아를 떠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머금곤 했다.     


귀국에 앞서 나는 찡지우 네 병과 선배 후배들에게 줄 선물, 그리고 한 가지만 빼고 내가 소장할 기념품 몇 점까지 챙겼다. 빼 먹은 한 가지는 푸얼차(普耳茶)였다. 시계를 봤다. 오후 다섯 시. 이제 몸을 움직여 왕징병원 근처에 있는 할인마트에 가서 푸얼차를 산 후 어디 가서 술 한잔 걸치면 베이징에서 마지막이 될 오늘 저녁의 시간 안배는 맞아떨어질 것이었다. 아파트를 나서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벌써 어두운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고 거기에다 짙은 구름마저 몰려들고 있었다.

‘눈이라도 오려나?’

베이징은 겨울이 되어도 좀체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이라는 얘기가 맞는지 올겨울 들어 아직 한 번도 눈 구경을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위도(緯度)상으로 보면 한반도로 쳐서 신의주 쪽과 거의 같은 곳이지만 겨울날의 평균 기온도 웬만해서는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어쩌다 영하 5도만 되어도 “우와! 타이 릉라! (무지막지하게 춥다!)”하면서 다들 난리 피워대는 곳이 베이징이다.


서문 밖을 나서고 보니 빈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다들 퇴근 손님을 잡으려고 오피스 타운 쪽으로 몰려간 모양이었다. 싼룬츠들 마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걸어서 가기에는 제법 먼 거리였기 때문에 아무것이나 빨리 나타나 주었으면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때마침 싼룬츠 한 대가 북문 쪽 방향에서 바람같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 나를 진즉에 발견하고는 속도를 내는 모양이었다. 잉아와의 그 일 이후 한 번도 올라타 보지 않은 싼룬츠. 그러나 오늘은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어 몰이꾼에게 손짓을 보냈다. 이윽고 내 앞에 도착한 몰이꾼은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한국의 군밤 장수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 모자에다 털장갑, 목도리, 마스크로 단단하게 무장을 하고 있었다.

“왕징옌샤마트, 니 지다오 쩐머 조? (망경연사마트, 가는 길 압니까?)”

“지다오. (압니다요.)”

막 싼룬츠에 올라타려는 순간, 어디서 나는지 앵앵거리는 작은 소음이 얼핏 내 귀에 걸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것은 음악 소리였고, 한국 대중가요였다.

‘이 음악?!······’


나는 반사적으로 싼룬츠의 위 덮개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앙증맞은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묶여 있었다. 몰이꾼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제야 몰이꾼은 마스크를 벗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스크로 덮인 덕에 발갛게 달궈진 입으로 하얀 입김을 흘리며 활짝 웃음짓고 있는 몰이꾼은 바로 반년 가까이 만에 보는 잉아였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느냐, 나는 이렇게 지냈다, 이런 정도의 대화는 있어야 할 텐데도 싼룬츠가 마트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윽고 마트에 도착했다. 잉아를 잠시 기다리게 한 후 마트 안에 들어가 서둘러 차를 챙겨 나왔다. 다시 싼룬츠에 올라타고 나서는 잠시 행방을 생각한 끝에 한강식당을 떠올렸다.

“워 야오 흐어 지우. 니 지다오 취 날리아? (술 마시고 싶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그러자 잉아는 웃는 눈길로 대답한다.

“땅란 지다오. (당연히 압죠.)”

“조바. (가자.)”

잉아는 서두르지 않고 싼룬츠를 몰았다. 가뜩이나 묵직한 구름으로 인해 어둑했던 하늘은 이제 거리 곳곳에 먹물을 풀어 축축이 물들여 놓고 있었다. 얼마 정도 달렸을 즈음 잉아는 슬그머니 나를 돌아보았다.

“끄어거, 쭈이진 니 부쑤에 한위에마? (형님, 요즘은 중국어 공부 안 하십니까요?)”

“니 운 쯔거 간 쓴머? (그건 왜 묻는 거냐?)”

“진티엔 니 팅 안징더. (오늘은 어째 조용합니다요.)”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를 알게 된 순간 내 마음도 거리의 풍경처럼 축축해지고 말았다.

‘······그래, 한때는 중국어 연마한답시고 이 자리에 앉아 들들 볶아대듯 저를 괴롭혀댔었지.’

미안한 마음에 응대하지 않고 있자니 잉아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 들으라고 이렇게 말했다.

“쯘스 진티엔 티엔치 흔 이창! (거참, 오늘 날씨 한 번 요상합니다요!)”

녀석은 예전에 내가 써먹었던 방법으로 나와의 대화를 유도해왔다.

“······스더. (······그렇구나.)”

아무래도 이제는 말을 해 줘야 했다.

“잉아?”

“에?”

“······밍티엔 워 후이 한구얼라. 워 부 자이 후이 베이징라. (······내일 나 한국에 간다. 이젠 베이징에 다시

는 돌아오지 않는다.)”


잠시 후, 잉아는 대답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묵묵히 왼쪽 오른쪽 페달을 세는 듯 조심스레 밟으면서 싼룬츠를 천천히 몬다. 다시 입을 다문 나는 아쉽게 흘러가는 매 일각에의 기억을 스쳐 지나가는 주위 사물에 새겨놓기라도 하려는 듯 그저 시선을 산만하게 뿌려대기만 한다. 길가 식당들이 내다 걸은 커다란 홍등(紅燈)들은 오늘따라 유난히 붉게 타올랐고, 일렬로 죽 늘어선 가두 광고판의 판다 곰들은 내가 저들을 지나칠 때마다 똑같은 표정으로 내게 눈총을 주었다.     

어느덧 싼룬츠는 식당에 도착했다. 나는 길에 내려서면서 마지막 인사말을 생각해 봤다. 그렇지만 뭐라 해야 할지, 딱히 근사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큰길 쪽으로 시선을 둔 채 오가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 줄까,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러다가 ‘뭐, 특별한 말이 있으려고.’하고는, 서먹한 시선을 던지면서 입을 열었다.

“니, 타이 씽쿨라. 하이요······, 쩐더 씨에씨에닐라. (너, 수고 많았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

잉아는 나의 멋쩍은 인사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부끄치, 부끄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요.)”

이제 돈을 주려고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데 잉아는 지갑을 쥔 내 손을 조용히 잡았다.

“끄어거, 부용라. (형님, 필요 없습니다요.)”

나는 그의 따스한 눈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어색하게 돌아섰다. 악수라도 나누어야 하지 않나 싶어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끄어거, 이 쌰오스 호우. (형님, 한 시간 후.)”

잉아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훌쩍 싼룬츠 승객용 좌석에 올라타 앉더니 타블로이드 신문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굳게 당겨 문다. 그 모습이 마치 ‘전에는 네 놈이 약속 시간 되기도 전에 중간에 잘도 내뺐지만, 오늘은 내가 지키고 있는 이상 꿈도 꾸지 마라’라고 강변하는 듯해 보였다.     


식당 안에 들어선 나는 여사장에게 귀국하게 되었다는 얘기와 함께 마지막 술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여사장은 아쉬워하는 말을 하면서 주방장에게 이리저리 요리를 주문했다. 미리 나온 반찬을 안주 삼아 술을 두어 잔 마셨을 때였다. 갑자기 식당 복무원 아가씨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칸바! 와이비엔 씨야 쑤엘라, 씨야 쑤엘라! (저것 봐요! 밖에 눈이 내려요, 눈 내린다고요!)”

그 소리에 바깥을 내다보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손님들이나 복무원들 모두 바깥을 내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술자리를 기억해 두라고 하는지 눈은 보기 좋게 내려주었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을 떠올리고 있자니 여사장이 요리 접시 두 개를 직접 들고 다가왔다.

“선생님 좋아하시는 썅꾸차이신에 특별히 하나 더 준비했습네다. 서비스이니까니 맛있게 드시라요.”

여사장이 내온 특별 요리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생선튀김 요리였다.

“뭘, 이런 걸 다······”

여사장은 요리들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맞은 편 자리에 앉아 내 빈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저렇게 내리는 눈은 정말 오랜만입네다.”

“그동안 저런 큰 눈은 없었나 보죠?”

“옳습네다. 아마 한 십 년은 더 됐을 겁네다. 고저 눈이라고 내려봤자 슬쩍슬쩍 비치는 정도였다 말입네다. 아무래도 선생님 떠나시는 걸 하늘도 아는 모양입네다?”

그 말에 헛웃음을 지으면서 술잔을 비운 후 여사장에게도 한 잔 따라 주었다. 용케도 그 독한 술을 받아 마신 여사장은 튀김 생선 고기 점을 잘 발라주더니, 자기가 비운 잔에 술을 따라 내게 건넸다. 그때 한쪽 테이블의 손님이 “마이딴! (계산서!)”하고 외쳤다. 그러자 여사장은 “가봐야겠시요. 많이 드시라요.”라는 말을 남긴 채 계산대 쪽으로 돌아갔다.

술잔을 들어 한 입에 털어 마시고는 생선 요리를 맛보다가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눈은 여전히 소리 없이 꾸준히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잉아는 여전히 싼룬츠 안에서 꼼짝하지도 않은 채 희미한 불빛을 찾아 신문 읽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내리는 눈 구경에 정신을 팔고 있던 복무원들 중 나이 어린 여자 복무원 한 명이 때아닌 내 부름을 듣고는 ‘내줄 것 다 내줬는데’하는 데면스러운 표정으로 테이블로 다가왔다. 나는 새로 담배를 꺼내 피워 물고 나서 그녀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푸우위엔, 짤라이······, 이거 빼이바. (복무원, 술잔 하나······, 더 갖다줘요.)”   

  

식당 앞에 서 있는 무심한 가스등 하나가 함박눈에 묻혀가는 잉아의 싼룬츠를 여리게 비추는 동안 베이징의 밤거리는 하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긴 겨울밤에 취해갔다.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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