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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26. 2022

바이킹 루스족 후예들의 동족상잔 전쟁

세상을 여는 잡학

한 달여 전 즈음부터 동유럽이 전쟁 포화로 아비규환이다. 힘없는 민간인의 목숨을 무참히 빼앗고 여인들에게 성폭력까지 가하는 침략군의 끔찍한 지옥경에 온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침략당한 나라는 우크라이나요 침략한 나라는 러시아로 이 두 나라 간 전쟁에는 음모론이 재기 될 수 있다. EU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탄 후 러시아에의 무기 수출을 중단하는 협정을 맺었으나 여러 나라가 교묘한 수를 동원하며 갖가지 전쟁물자를 수출해온 것이 물경 5천 5백억 원 물량이라고 한다. 그런 EU가 우크라이나에 NATO의 문호를 여는 것처럼 짐짓 분위기를 잡아 러시아를 자극, 끝내 우크라이나를 진출로로 삼는 서구권의 동진을 걱정한 러시아로하여금 부득불 생존 전쟁을 일으키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전쟁물자는 전쟁물자대로 팔아먹은 후 우크라이나를 미끼 삼아 전쟁을 일으키도록 해서 실컷 소진하게 하고는 향후의 수출 물꼬를 확보하고, 아울러 각종 제재를 병행해서 러시아의 국력을 확실하게 무너뜨리는 달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과 별개로 두 나라 간 대립에의 앙금을 8백 년 전 역사에서 찾을 수도 있다. 지금의 모스크바 일대와 키이우 일대는 9세기 무렵 모스크바 동북부 지역인 노브고로드에 세워진 옛 노브고로드 루스(Rus. ‘노 젓는 사람들’의 뜻) 왕국을 계승한 키이우 루스 왕국(882년~1240년)의 영토였고 키이우가 당시의 수도였다. 그랬던 키이우 루스 왕국을 신흥 정복제국 몽골이 점령해서 킵차크한국을 세워 오랜 기간 다스리면서 유럽인에게 ‘타르타르의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 후 중세를 넘고 격동의 근세를 거치는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키이우 지역에 대해 종주권을 놓고 각을 세워온 것이요, 러시아가 이번에 러시아의 서남지역이자 우크라이나의 동북부 지역인 돈바스를 놓고 전쟁을 일으킨 와중에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키이우에 대대적인 진격전을 벌인 이유가 먼 옛날 애매해진 그 땅의 종주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바이킹들이 항해할 때 탔던 프램(Fram). 사진 historyhit.com

  

1만 년 전부터 스칸디나비아반도에는 바이킹족 조상인 북방계 노르드(Nord) 게르만족이 존재했다. 수렵으로 장구한 세월을 살았던 그들은 훗날 중세에 이르러 짐승 가죽을 파는 해상 무역을 생업으로 삼았다. 그와 함께 때로는 남의 땅을 침략, 그곳 사람들을 포획해서 노예로 팔기도 했다. 바이킹족을 북유럽의 무자비한 해적으로 부르는 연유가 이것에서 나온다. 그런 그들에게는 다른 민족에게서 볼 수 없는 강인한 도전정신이 있었다. 그들은 미지를 찾아 프램(Fram)이라는 쾌속선을 타고 다니며 바다를 탐험했다. 그러다 보니 랑스킵(Longship)이라는 고도의 항해술을 터득할 수 있었고, 훗날 난센과 아문센의 북극 남극 탐험이라는 인류의 웅대한 발자취도 남길 수 있었다. 그렇듯이 바이킹은 바다의 유목민으로 지구상 가장 강인한 민족이었다.      

스칸디나비아반도 땅에 노르웨이와 스웨덴이라는 고대 왕국을 세운 바이킹족은 5세기 무렵 바다 건너 지척에 덴마크 왕국을 건설했다. 그렇게 든든하게 근거지를 마련한 그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는 한편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것에 맞춰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덴마크 땅을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8세기부터 약 3백 년 동안 본격적으로 해외 개척 활동을 펼치며 프랑스, 잉글랜드, 아일랜드, 아이슬랜드, 그린랜드, 북아메리카 동북부 해안 지역인 빈랜드(Vinland), 북대서양, 지중해, 북아프리카, 중동,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 등에 정착, 곳곳에 후손을 퍼뜨렸다.

노르웨이계 바이킹은 서쪽으로 눈을 돌려 아일랜드, 아이슬랜드, 그린랜드, 빈랜드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아이슬랜드나 그린랜드는 동토의 땅이었기에 계륵 같은 곳이었고, 삼림이 울창해서 원자재라도 얻을 수 있겠다 싶었던 빈랜드에서도 토착 원주민들과의 십 년 전쟁 끝에 패퇴하여 초라한 귀국 길에 올라야 했다. 반면 덴마크계 바이킹은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시칠리에까지 진출하는 등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덴마크 바이킹 왕조는 특히 잉글랜드를 8세기부터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10세기 중엽 덴마크 왕국의 하랄드 왕이 노르웨이를 병합한 후 죽자 그의 아들 스웨인이 왕위를 계승, 마침내 잉글랜드 정복 사업을 완수해서 잉글랜드 왕을 겸한다. 이후 잉글랜드 토착 민족인 엥글로 색슨족을 이끌던 웨섹스 왕조의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가 거센 도전을 하나 스웨인의 아들 크누트가 그마저 꺾고 아버지에 이어 잉글랜드 왕위를 이어갔다. 크누트는 현지인을 탄압하는 대신 선정을 베풀었기에 그로써 이후 잉글랜드 왕실 역사에 덴마크계 바이킹 왕조의 채색을 짙게 드리울 수 있었다.

 

카르뭬이 바이킹 축제에서 옛 바이킹 전사의 모습을 재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 visitkarmoy.no


스웨덴계 바이킹도 덴마크계 바이킹 못지않은 성과를 올렸다. 그들은 동쪽 지역을 목표로 삼아 지금의 쌩 페테르부르크, 노브고로드, 모스크바, 키이우 일대에 동슬라브족 등 토착 민족을 누르고 루스 왕국을 세웠다. 그 후 올레그가 이끄는 바이킹 전단이 흑해를 건너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까지 침공, 당시 비잔틴 제국 황제 레오 6세로부터 항복 조약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비잔틴 제국 군대의 강력한 항전으로 진퇴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서로 간 교역에 치중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고는 비잔틴 문화와 생산물을 받아들여 정치 종교 경제 분야에서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중동 지역 이슬람 상권과의 교역에도 힘을 쓰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 스웨덴계 바이킹을 루스족으로도 불렀고, 그들이 세운 루스 왕국이 러시아의 기원인 것이요, 우크라이나 역시 같은 루스 왕국 소속이었으므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결국 서로 다를 바 없는 루스족의 후예들인 것이다. 물론 그들은 현지 토착 민족이었던 동슬라브족에 동화되는 과정을 겪지만 그들의 뿌리는 분명 루스 왕국 바이킹족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20세기 초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더니 1990년대 서로 각자 갈 길을 갔다가 21세기 들어서서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걱정할 정도로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중세 유럽 거의 전역을 세력권으로 삼았던 바이킹의 후손들은 지금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등 곳곳에 퍼져 살고 있다. 그들은 바이킹의 후예로 자처하면서 바이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한곳에 모여 축제를 벌여 전 세계에 바이킹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하는데, 노르웨이 서남지역에 있는 카르뭬이가 바로 전 세계 바이킹들이 모여 옛 조상들의 생활을 거의 판박이로 재현하는 축제의 장이다. 이곳은 먼 옛날 바이킹들이 노르웨이에서 북해로 진출할 때의 출발지였을 정도로 전략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노르웨이 왕국의 왕들도 이곳에서 배출되었고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노르웨이 전역을 다스렸다. 즉 카르뭬이는 바이킹족의 성지이기에 전 세계 바이킹들이 이곳에 모여 종족제의를 여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대표적 해적 집단이었던 왜구가 고대부터 한반도와 중원 대륙 해안가를 침략했던 좀비급 존재였다면, 한반도 땅의 장보고는 역시 해적 출신이었으나 훗날 교류를 앞세우며 강력한 해상왕국을 건설한 창의적 인간이었다. 바이킹족 역시 한때의 침략 시대를 닫고 타지의 문물을 수용하며 교류를 앞세웠던 지혜로운 민족이었다. 침략은 인류를 퇴보시키는 것이요 교류는 문명 발전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 총부리를 서로 겨누며 참상을 빚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바이킹 후예들이 5월 이전에 전쟁을 끝내고, 6월에 저네들의 성지인 카르뭬이에 모여 같은 동족으로서의 동질감을 회복함과 함께 옛 조상들이 높이 세웠던 교류 정신의 미덕을 다시 일깨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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