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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01. 2022

히틀러와 한국의 인연

세상을 여는 잡학

두 달째를 맞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찍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저네들의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결사 항전 중임을 강조한다. 러시아군의 폭격이 있고 나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러시아 함선이 가라앉고 러시아 장성들이 죽어 나간다. 이러다가는 전면전으로 확전되어 결국 죄 없고 힘없는 우크라이나 국민만 고통에 빠지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는 것 아닐까 걱정이다. 이 전쟁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러시아가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우크라이나의 탈(脫) 나치화’이다. 히틀러의 제3 제국이 사라진 지 70년도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 러시아는 왜 나치를 거론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과거 1백 년 역사가 배경이 되고 있다.

      

먼저 네오나치즘부터 짚어봐야 한다. 네오나치즘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나치당 잔여세력으로 남아있던 독일국가민주당(NDPD)이 전면에 나서서 전개한, 독일 민족주의 기반의 극렬 우익 운동을 칭한다. 이들은 동서 진영과 거리를 두는 중립주의, 반공, 반미, 반(反)유대주의를 기치로 삼았다. 전후 실업자 폭증과 경제 침체로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은 전(前) 나치 당원인 독일국가민주당원들과 함께 거리에 나서 폭력적인 집회를 열곤 했다. 나치라면 기절초풍할 일어날 독일 정부로서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2014년 돈바스 내전 당시 친러반군에 맞서기 위한 특별한 민병대가 탄생한다. 이들을 아조우(Azov) 연대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근거지가 지금 격전지 중 한 곳인 마리우폴이다. 아조우 연대는 돈바스 내전에서 마리우폴을 탈환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후 우크라이나 국민위병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고, 이번 마리우폴 전투에서도 옛 명성 그대로 용감무쌍하게 전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 아조우 연대는 초기에 문제의 네오나치즘을 옹호했다. 이들이 왜 네오나치즘의 길을 따랐는지는 다시 옛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봐야 이해할 수 있다.     

루스 왕국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 차르가 1721년 제정을 선포한 이후 러시아는 18세기 말 예카테리나 2세 여왕 시대에 이르러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예카테리나 여왕은 1백여 년 전 모스크바를 함락하며 루스 왕국에 모멸감을 주었던 폴란드를 침공 정복하고, 오스만제국을 힘으로 눌러 크림반도를 손에 넣는다. 그와 함께 드넓은 우크라이나 땅까지 노린다. 우크라이나 서쪽 지역은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연합 제국이었던, <루돌프 황태자의 마지막 사랑>이라는 영화로 유명한 외스터라이히웅가른 제국 지배하에 있었다. 예카테리나 여왕은 이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땅을 점령하고는 대규모 밀 곡창지대를 일군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러시아를 노렸던 독일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무주공산 된 우크라이나 땅에 괴뢰 정부를 세운다. 그러나 곧 독일이 패전하면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일어나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세우고는 외스터라이히웅가른 제국에 속해있던 서쪽 지역마저 통합한다. 이후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우크라이나 평의회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국명을 바꾼 우크라이나는 1922년 러시아 중심의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 된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단지 식량 생산 기지로 여겼고, 1924년 스탈린이 집권하면서부터는 돈바스 지역에 대대적인 석탄 철강 산업단지까지 조성, 러시아 주민 2백만 명을 이주시키면서 우크라이나 자원을 끝없이 강탈하는 등 우크라이나 국민을 좌절감에 빠뜨릴 뿐이었다. 1930년대에 공산주의 계획경제 실패로 소비에트 연방 전역에 대기근이 닥쳤을 때도 우크라이나 국민 1천만 명이 아사당하는 중에 러시아 정부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이러한 러시아 공산정부의 혹독한 착취와 외면에 분연히 반기를 든 사람이 나타난다.      


2018년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반러 항쟁 민족지도자였던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를 기리는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topwar.ru


1929년 우크라이나 서쪽 지역의 리비우에서 8만 명 규모의 독립운동 무장조직인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Organization of the Ukrainian Nationalists, OUN)’이 결성되는데, 이 단체를 주도한 인물이 스테판 반데라다. 1939년 단치히 침공을 선두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들어갈 때 반데라는 나치의 반폴란드, 반소련 정책에 동조하며 독일군과 함께 적극적인 반공 무장투쟁을 벌인다. 이때 반데라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단을 이끌고 폴란드인과 유대인 제노사이드에도 참여하는 극악한 짓을 저질렀다. 종전까지 우크라이나 땅에서 학살당한 폴란드인 수는 약 1십만 명, 유대인 수는 최소 1백 5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훗날 집계되었을 정도로 반데라의 인종 청소 악행은 독일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그는 독소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이 되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의 별동대 성격인 ‘우크라이나 봉기군(Ukrainian Insurgent Army, UIA. 통칭 러시아어 UPA로 부름)’을 편성해서 더 강력한 대 소련 투쟁에 나섰고, 종전 후에도 소련에 대한 반체제 투쟁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토록 소련 정부의 골칫거리였던 그였으나 마침내 1959년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그러나 그런 반데라를 지금도 우크라이나 국민은 우크라이나 구국의 민족 지도자로 여기고 있음이요, 아조우 연대는 친나치 반러의 기수 반데라와 우크라이나 봉기군을, 그리고 1960년대 서독에서 일어난 네오나치즘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푸틴은 이것을 이유로 전쟁 명분인 ‘탈 나치화’를 내세우면서 한편으로는 아조우 연대에 대한 응어리도 풀고 싶었을 것이다.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와 유사한 문양의 군기를 앞세우고 있는 아조우 연대


아조우 연대 군인들은 전장에서 전투만 수행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난 2014년 돈바스 내전 당시 친러군 반정부군을 격퇴하는 와중에 포로들에게 잔인한 고문을 가했고 러시아계 민간 여성들을 강간했을 뿐 아니라, 돈바스에 거주하던 러시아계 사람들의 재산을 강탈하고는 그들을 러시아 땅으로 추방하는 짓까지 벌였다. 지금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집단 학살하고 여인들을 강간하는 동기가 바로 8년 전에 당한 것의 앙갚음으로 충분히 여길 수 있다.     


꽃으로 일장기를 가리고 있는 손기정과, 바지를 최대한 끌어올렸음에도 가슴께의 일장기를 가리지 못해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3등의 남승룡. 사진 금성출판사


과거의 우크라이나에는 나치즘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웠고 지금의 러시아에는 ‘탈 나치화’라는 전쟁 명분을 주고 있는 히틀러는 조선과도 묘한 인연을 1936년 두 번에 걸쳐 맺고 있다. 먼저 그해에 있었던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손기정과 히틀러의 인연이다. 올림픽 신기록으로 마라톤에서 우승을 거둔 손기정은 다음날 히틀러를 만난다. 그때 히틀러는 먼 극동에서 온 조선인의 손을 잡으며 이런 말을 전했다 한다. “위대한 청년이여, 조국에 돌아가면 조국의 체육 발전에 힘쓰길 바란다.”라는. 이때가 8월이요, 두 달 정도 후에 히틀러와 조선의 또 다른 인연이 생긴다. 


1936년 10월 21일 조선일보 석간 2면에 실린 히틀러의 조선인 수재 금일봉 관련 기사. 사진 '표로 보는 역사시리즈'


올림픽을 치른 직후 무렵인 그해 9월 1일 한반도 땅에 ‘병자년 포락(浦落)’으로 불린 최악의 풍수해가 생겼다. 피해가 극심했던 강원도 강릉 양양 상황을 다룬 신문 기사를 보면, 강릉의 남대천 물이 양양군을 휩쓸고 지나가 일거에 군민 5백여 명이 희생되었고 모든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화민국 따롄(大連) 총영사로 있던 비쇼프는 조선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수해를 입은 조선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겨 본국 정부에 이를 보고했고, 이에 히틀러가 비쇼프를 통해 수해를 입은 조선의 이재민 구제를 위해 10월 19일 금일봉을 전하고 있다. 이때의 히틀러가 손기정을 조선인으로, 강원도 양양 땅을 조선의 땅으로 알고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한 후 헬레나 섬에서 유폐 생활을 하던 중에, “세계를 모두 정복한 뒤 꼭 가보고 싶은 나라군.”이라고 조선을 언급한 나폴레옹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지 못내 궁금하다. 인류의 고질병이 된 전쟁이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어서 빨리 사라지기를 학수고대할 뿐이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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