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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15. 2022

살어리 살어리 용산에 살어리랏다

세상을 여는 잡학

한강은 진(辰)과 마한의 중심지였고 삼국이 일어난 후에는 지리적 경제적 가치를 놓고 벌인 각축지였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백제가 한강 지역의 주도권을 잡았을 때 이곳의 명칭은 북한성(北漢城)이었고, 고고려 장수왕이 점령한 후에는 ‘남평양(南平壤)’ 혹은 ‘북한산군(北漢山郡)’으로 불리었다. 훗날 신라 진흥왕이 한강을 차지하면서 한산주(漢山州)라 했다가 757년 경덕왕 때에 이르러 한양군(漢陽郡)으로 바뀌었다. 한양의 ‘양(陽)’은 옛말로 북쪽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양은 한강 북쪽인 ‘한강과 북한산 사이의 땅’을 그 범위로 삼고 있는 셈이 된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한양군을 양주(楊州)로 바꾸고, 거란족의 침략을 대비하는 후방 지원군으로 절도사 휘하의 12군(軍)을 배치한다. 12군에 좌신책군(左神策軍)이 있으니 그 부대가 바로 지금의 용산에 배정되고 있다. 1101년 숙종 조에 이르러서는 양주를 남경(南京)으로 삼았는데 동쪽으로는 지금의 창덕궁과 경복궁 중간 지점인 송현을, 서쪽으로는 인왕산을, 북쪽으로는 북악산을, 남쪽으로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경복궁 앞 세종로 사거리 일대의 황토현을 영역으로 삼고는, 용산은 지금의 과천시인 과주(果州)로 편입시켰다. 조선이 건국되고 남경이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수도가 되었으나 용산은 끝내 성저십리(城底十里. 도성 밖 4km 지역) 서부 용산방(龍山坊)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용산방의 지리적 특수성은 중요했다. 고려 때부터 지방을 잇는 스물두 개의 주요 도로 중 하나인 청교도(靑郊道)가 지나고 있고 그 길목에 청파역(靑波驛)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청파역에 노량진과 서빙고 나루터, 한강진이 맥을 대는 식으로 용산은 남방행 교통의 요처였음이다. 그렇기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할 때도 이곳을 거쳐 한강을 건넜고, 조선의 암행어사들이 삼남 암행 출행할 때도 이곳에서 숨을 골랐으며, 정조대왕의 화성 행차 역시 이곳을 거쳐 가곤 했다.     


한편으로는 귀화 거란족과 여진족을 정착시킨 외인촌(지금의 이태원) 기능도 수행했고 그것이 조선 때까지 이어졌으나, 아무래도 용산은 군 주둔지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고려에 이어 조선 정부도 옛 육군본부와 미8군 터가 들어선 고지대를 둔지산(屯地山)으로 부르는 등 용산 일대를 둔(屯)이라 부르면서 둔병(屯兵)을 배치했다. 또 강변 모래사장인 새남터는 군사 연무장으로 쓰기도 했다. 고려 때는 좌신책군이, 조선에 와서는 동서북 산악형세의 한양 남쪽 평지를 지키는 전략군이 배치되는 등 군대와 질긴 인연을 쌓은 땅인 만큼 군과 관련된 어둡고 거친 역사 소용돌이에 자주 휩쓸리던 곳이 용산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진격전을 벌여 개전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용산 땅에 군대를 집결, 도성을 지키던 도원수 김명원의 조선군을 패배시키고는 도주한 선조 뒤를 쫓기 시작한다. 이후 왜군이 승승장구 북진하고 있을 때 용산은 왜군의 보급 루트가 되었다. 명군 개입으로 평양성 패전 이후 퇴각하던 왜군이 퇴로를 차단당한 곳도 용산이었다. 궁지에 몰린 왜군은 별수 없이 명군과 강화회담을 해야 했고 그 장소가 현재는 비석만 세워져 있는 원효로 심원정이다.     


일본군 보병 제79연대 용산기지 전경. 사진 서울기록원


1884년 고종이 원효로 일대를 외국인에게 개방하자 청 상인과 일본 상인이 이곳에 들어와 세력다툼을 벌였다. 효창동과 청파동 등에 남아있는 일본식 목조 건물들이 그때의 흔적이다. 송파, 마포, 동호, 서강과 더불어 오강(五江) 중 하나인 용산강을 품고 있기에 수로를 타고 인천과 쉽게 연결할 수 있고, 또 도심을 지척에 두고 있음을 간과할 리 없는 일본은 1887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원효로 일대를 저네들 군사기지로 삼았다. 청나라도 이에 질 새라 같은 용산권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니, 189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청 제독 우장칭의 지휘로 흥선군을 청나라로 납치해 간 군사들이 이들이었다. 임오군란 때 청군에게 모욕당한 일본은 이후 청군을 능가하는 여단 규모의 병력을 주둔시키더니 마침내 1895년의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1905년 러시아마저 격파한 일본은 한반도에서 거칠 것이 없어짐에 이곳에 철도기지까지 세워 용산을 대륙 진출 거점지역으로 삼는다. 이후 1910년 대한제국 강제합병에 성공한 일본은 용산에 일본군 사령부를 들였다. 이때의 일본군 사령부 건물이 광복을 맞은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의 국방부 청사가 되기도 했다. 그것이 못마땅했는지 박정희 정권 때인 1966년 지금의 삼각지 부지에 신축 국방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나라 체면을 그나마 세웠고.

한국전쟁 이후 미8군 사령부가 용산에 터를 내림에 외국 군대 주둔지로서의 곤혹스러운 운명이 이어짐과 함께 용산 육군본부의 흑역사까지 일어난다. 박정희에게는 쿠데타를 완성 시킨 곳으로, 박정희를 제거한 김재규에게는 전두환에게 무릎 꿇게 한 곳으로, 한국 정치사에 어두운 발자취를 남긴 것이다.      


용산미군기지 일대 전경. 사진 나무위키


남산 하면 한국인은 소나무부터 떠올린다. 애국가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는 가사가 들어있어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한민족 기상을 철갑 소나무가 대변하는 듯한 뿌듯함을 만끽하곤 한다. 그러나 실상을 따지면 ‘남산 위의 저 아카시아’로 불러야 한다. 그만큼 남산에 아카시아가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아카시아는 번식력이 강해 주변의 모든 나무를 고사시키는 세계적인 악성 수목이다. 한때 이 아카시아를 뽑아내어 남산의 옛 모습을 찾자는 운동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산 정상부위는 봄만 되면 살아남은 아카시아 꽃들이 만개, 남산 머리를 허옇게 만든다. 이 아카시아가 남산을 점령한 사연이 바로 용산의 옛 둔지산에서 생겼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한민족 정기가 듬뿍 담긴 남산의 소나무를 곱게 볼 리 없었다. 이때 독일 총영사 크루거가 조선 땅에 아카시아 이식할 것을 추천했고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진 데라우치는 곧바로 크루거를 통해 당시 독일 조차지였던 중국 칭따오에서 아카시아 수만 그루를 들여왔다. 조선에 들어와 프랑스어 교사로 있던 에밀 마텔이 이 소식을 듣고는 데라우치를 찾아가 프랑스 산천을 초토화한 사례를 들어 아카시아 이식을 만류했다. 아카시아로 한민족 기상을 희석하자는 일념에 차 있던 데라우치가 그런 말을 받아들일 리 만무다. 그는 일본군 사령부가 들어서 있던 둔지산 일대에 수입한 아카시아들을 보란 듯이 심고 말았다. 그것이 산맥을 타고 올라가 남산을 뒤덮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남산 아카시아가 용산 아카시아의 잔재요, 현재 전국 산야 오분의 일 정도를 잠식하고 있는 아카시아의 조상이 용산 아카시아인 것이다. 그나마도 크루거의 장난이었는지 데라우치가 심은 아카시아는 진품이 아닌 사이비 아카시아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토록 간악한 일제 만행의 출발지이기도 했던 용산인 것이다.      


사진 KBS 제1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 YouTube 화면 갈무리


세 정부에 무슨 귀신이 씌웠는지 대통령집무실이 청와대를 떠나 용산 국방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적으로 군대와의 어두운 역사가 일어난 곳이요, 왜란과 일제강점기 때의 간악한 만행이 있었던 곳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 지휘가 일어나는 것이다. 2001년 이래 서울특별시 지구 단위 개발계획 확정 이래 용산 일대에 공원녹지시설, 첨단 국제 업무 단지, 외국인 전용 주거시설, 용산 컨벤션센터 등이 들어서는 등 서울의 때를 씻어내며 거듭나고 있는 와중 뜬금없이 대통령집무실이 들어서다 보니, 군 시스템 변동이며 보안이며 공간 통제며 하는 등의 여러 불편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밝아지던 용산에 다시 먹물이 드리워지는 느낌이다. 여기에 새 정권 각료들 면면을 보면 친일 성향이 강한 자들이 상당히 포진되어 있음을 보면 옛일이 떠올라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앞으로 국민 우울증이 얼마나 깊어질지 걱정이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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