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철 Jong Choi May 08. 2022

현대판 순장(殉葬)과 유사이군(有事二君)

세상을 여는 잡학

옛 식자들은 사람의 죽음을 문자로 구분했다. 상민의 죽음은 사(死)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으로만 살았던 청정 선비의 죽음은 불록(不祿. 녹봉을 받지 않음), 4품 이상 벼슬을 한 대부의 죽음은 졸(卒), 군자의 죽음은 종(終), 왕이나 천자의 죽음은 붕(崩)이라 했다. 사람의 죽음에 사회적 지위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으로 집요하게 차별을 두려 한 것이다. 그래봤자 어차피 죽으면 다 계급장 떼는 것인데.      


사람이 죽으면 혼령은 두고두고 모시고 육신은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혼령 모시는 방식이야 기제(忌祭)와 평소의 위패 배향 정도일 것이나, 생명 잃은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은 지역 환경, 집단의 규약과 관습 등에 의해 각각 다르게 형성되었다. 화장(火葬), 수장(水葬), 비장(秘葬), 풍장(風葬), 매장(埋葬) 등이 형태나 성격을 달리하는 대표적 장례 방식일 것이다.


화장은 유기된 시신, 개장(改葬) 유골, 무연고자, 죽은 태아 등을 장사치를 때 주로 쓰인 방식으로 불교 의식인 다비(茶毘)에서 주로 유래된 것이라고들 한다. 다비는 이승의 부정한 육신과 영혼을 정화한다는 의미로 불로써 일소하는 장례 방식이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던 만큼 왕을 포함한 지배계층은 죽으면 이 다비로 시신을 처리한 후 그 재를 함에 담아 봉분 묘에 들였다. 중원의 당나라 역시 불교 문화가 강했기에 이 당시에는 화장이 주류를 이루었다. 송나라 때 유교 영향으로 매장 문화가 활성화되어 근세까지 이어졌으나 인구 폭증으로 묫자리가 부족해졌고, 이에 1956년 마오쩌둥이 화장을 대대적으로 보급해서 오늘에 이르게 하고 있다. 고대 일본인들은 한때 매장과 풍장 등을 혼용하다가 불교 전래 후 화장이 일반화되어 현재 일본 국민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을 정도로 중국과 더불어 대표적 화장국가가 되어 있다.


춘추전국 시대 무렵의 중원에서는 염습한 시신을 황허나 양쯔강에 빠뜨리는 수장이 빈번했다. 오래전 북미 원주민들의 수장은 시신을 관에 담아 강이나 바다에 빠뜨리는 방식이었다. 수장은 오늘날에도 캐나다, 남미 일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에서 볼 수 있고,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바다에서 순직한 해군이나 바다에서 사망한 선원들을 수장으로 장사치를 수 있게 하고 있다.


미국의 대테러 최정예부대인 해군 특수전 개발단이 빈 라덴을 사살한 후 그 시신을 항공모함 칼빈슨호로 옮겨 추를 매달아 바다에 집어넣은 것은 방식이야 수장일 것이나 시신을 찾지 못하도록 칭기스칸의 시신을 이름 모를 벌판에 묻은 것과 같기에 비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비장은 흉노족, 선비족, 몽골족 등 옛 유목민의 장례 방식으로 시신을 묻고 난 후 봉분을 만들지 않는다. 대개 산기슭이나 골짜기 등에 사람들 눈을 피해 묻는다.

 

풍장은 인간적으로 볼 때 쓸쓸하고 잔인하다. 죽은 시신을 자연에 노출, 시간이 지나면서 풍화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들짐승 날짐승에 뜯어먹혀 다른 생명에게 전이시키도록 하는 방식이다. 풍장 중 시신을 포대로 싸서 나무 중간 즈음에 매달아 놓는 방식도 있었다. 이것을 따로 수상장(樹上葬)이라고 불렀다. 수상장은 한국의 서해안 도서 지역에서 20세기 초까지 존재했었다. 티벳 사람들은 시신을 들판에 놓고 독수리에 장례를 의탁하기에 티벳 풍장은 조장(鳥葬)으로 불리기도 한다. 풍장에 의해 남겨진 유골을 따로 수습해서 장사 치르는 것도 있다. 이것을 복장제(復葬制)라고 하는데 한국 남해안 완도 아래쪽 청산도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서해 도서 지역에서 널리 행해졌던 수상장(樹上葬). 시신이 가마니로 싸여 나무 중간 즈음에 묶여있는 모습. 사진 전킨선교사기념사업회


매장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선사시대의 고인돌은 지도자의 시신을 땅에 묻고 그 위에 거석을 덮은 무덤이었다. 적석총, 봉분 묘, 돌무지 묘, 옹관 묘와 석관 묘 등도 매장의 종류에 든다. 불교를 멀리한 조선 조정은 불교식 화장을 엄금하고 시신을 염습해서 관에 넣고 땅에 묻은 후 봉분을 세우는 매장을 널리 권했다. 이것이 한국인의 전형적인 장례 방식으로 전승되어왔으나 근래 들어서는 묫자리 부족과 편의상의 이유로 화장과 납골당, 수목장을 택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매장 문화를 대체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 로마, 그리스, 잉카,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서 막론하고 잔인한 장례문화가 있었다. 순장(殉葬)이다. 이집트와 로마, 그리스, 잉카의 순장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인간을 희생(犧牲)으로 바친 인신 공양의 성격이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왕 무덤에 시종들과 사륜차, 짐승을 함께 묻었다. 인도의 순장은 사티라고 부른다. 사티는 창조와 파괴의 신 시바의 아내로 창조신 프라체타스가 시바를 능멸하자 남편인 시바 대신 불에 뛰어들어 자결한다. 이후 인도인들은 사티의 죽음을 앞세워 남편이 죽어 화장할 때 아내를 불 속에 뛰어들게 해서 같이 화장 처리하는 순장 문화를 만들어 근세까지 관습으로 유지하다가 1829년에 이르러 영국 총독의 강제 법으로 비로소 금지당했다. 그토록 끔찍한 장례문화를 중시했던 인도인들이었으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는지 사티에 임하는 여인에게 미리 몽혼약을 먹였다. 약에 취한 상태에서 불에 뛰어들게 한 것이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남편의 죽음으로 불길에 던져질 운명에 처한 과부 아우다를 포그와 파스파르투가 구출할 때 그녀가 몽혼약에 취해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중원에서는 은나라 때부터 순장의 흔적이 보인다. 지도자가 죽으면 신하와 후궁 등을 산채로 같이 매장했고, 민간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산채로 혹은 죽인 후 매장하곤 했다. 진시황은 그런 순장을 대대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분서갱유로 생매장에 맛을 들였던 만큼 자신이 죽을 때는 병마 도용을 활용함으로써 대량 순장을 막기는 했으나 아들의 후계 계승에 반발할 형제자매들만큼은 모조리 자신의 묘에 끌고 들어갔다. 중원의 순장은 원나라 때 순장자의 목숨을 거둔 후 무덤에 들이는 방식으로 부활, 맹위를 떨치더니 명나라 때까지 유습으로 이어졌다.


진시황릉의 병마도용. 사진 baidu.com


만주와 한반도 국가들도 약 6세기 무렵까지 순장을 시행했다. 고고려(古高麗) 동천왕이 죽을 때 신하 백여 명이 함께 순장에 동참하고 있고, 가야에서도 호위 장수가 임금을 따라 순장에 임했다. 4세기 무렵에 지어진 경주 월성 유적을 발굴했을 당시 발견된 수십 명의 유골은 신라 순장의 흔적이다. 중원에서 발현한 동이족의 순장 문화는 한반도로 흘러들어왔다가 502년 신라 지증왕의 법령으로 폐지되면서 차츰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인다.      


가야 고분에서 발굴된 어린 소녀 순장자를 3D로 복원한 모습. 사진 창녕박물관


그랬던 순장이 오늘날 부활해 있다. 물론 사람의 목숨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치권 얘기다. 정부 말기에 총선을 포기한 채 청와대에 남아있는 고위직 관료들을 일컬어 순장조라 함이 그것이다. 이들은 오직 지금의 주군(대통령)을 위해 눈앞의 명예와 부를 포기한 의리파인 것이다. 이들의 진면목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천명으로 삼아, 이후 새로운 대통령을 모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유사이군(有事二君)의 사례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김종필과 고건이다. 이들은 각각 정파를 달리하는 두 정부에서 국무총리직을 수행했다. 이제 그 뒤를 이어 노무현 정부 때 국무총리직을 수행했던 자가 유사이군에 눈이 멀어 입술 벌겋게 물들이며 등장하고 있어 사람들 눈 궁둥이를 몹시도 시리게 하고 있다. 유사이군 모양도 보기 흉하건만 그자의 전적에 서민을 허탈하게 하는 의심스러운 돈 수십억 원이 들락거리고 있어 자격 문제까지 언급되고 있다.    


새 정부에 의해 대통령 집무실로서의 역할을 멈추고 국민에게 개방되는 청와대. 사진 president.go.kr

  

지금 새 정부 들어서기 전부터 신임 고위직 관료 후보들의 면면이 국민의 일반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 있고, 또 현 정부까지 운영해 왔던 국가 시스템을 공연히 변형하고 있음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국민으로서는 불안과 우려를 느낄 수밖에 없다. 현시대를 장사 치르는 모양새에 많은 국민이 억지 순장 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 동서고금 역사 신화와 함께 하는 한국인의 인문학『면사포를 쓰는 신화 속 한국 여인』만나기

https://smartstore.naver.com/roadnvill/products/6973681341


작가의 이전글 문기하우(問起河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