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월 Aug 30. 2023

4일차

1부

4일차 (1부)


7월24일(월)


나름 4일차. 벌써 적응을 했는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숙소가 낯설지가 않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가면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설친다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도착한 이후로 왜 이렇게 꿀잠을 자는지 심지어 아침에 일부러 일어나지 않으면 오후까지 잠을 잘 판이다. 아마 지난 3일동안 엄청 바쁜 일정들을 소화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사실 나는 온라인으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필리핀에 오기 전에 숙소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했던 것이 끊기지 않는 와이파이 연결이었다. 다행히도 보니파시오의 와이파이 상태는 매우 좋다. 거의 한국과 비슷하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장·단점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았는데, 말레이시아의 인터넷 연결은 상당히 불편하단다. 아마 필리핀도 보니파시오 외곽은 이만큼 편리하지 않을 것 같다.


현지인 피셜, 보니파시오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자 동네란다. 한국의 청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필리핀에 살면서 안전하고 쾌적한 거주환경을 고려한다면 보니파시오는 최고의 선택이다. 단, 생활비는 그냥 한국에 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특히 숙소 렌트비는 상당히 비싼편이다. 생활비야 이래저래 아끼면 되지만 지붕과 벽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자야 하기에 아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대신 인건비는 여전히 저렴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비용은 1:1 과외비 기준 1시간에 15,000원 내외 정도이다. 어쨌든 사람들 상황이야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어느정도 어느 곳을 가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약간의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어서 오직 남편 월급에만 의지하지 않는다는게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진심 얼마 못 번다.) 그렇게 나는 노트북을 짊어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오전에 영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대니가 헬스장을 등록하러 가야한다고 계속 성화를 부렸다. 수업에 방해가 돼서 카드를 줄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툭! 한마디 던졌는데 진짜 신용카드를 챙겨들고 혼자 씩씩하게 나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해가 안가는 아이다.) 그러다 약 30분뒤에 다시 돌아왔다. 왜 왔냐고 물으니 미성년자는 보호자와 동행해야 하고 또 현금으로 결재해야 한다고 했단다. 어떻게 그 말을 알아들었냐고 하니 “온리 캐쉬”라고 말했단다. 생각보다 생존력 만랩이다. 누굴 닮아나 싶다.


마침 수업이 끝난 터라 대니와 함께 헬스장 등록을 하러 갔다. 어제 마따붕까이에서 아주 친절하고 비싼 값을 잘 부르는 한국 아저씨에게 10,000 페소를 지불한 덕에 현금이 거의 없었다. 겨우 겨우 지갑을 탈탈 털었더니 2,000페소 정도 남아 있었다. 다행이다 싶어 현금을 내고 등록하려는데 서약서 비슷한 것을 쓰란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혹시 헬스 기구를 이용하다 사고가 생기면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한마디로 어떠한 사고가 발생하여도 헬스장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 것이다.) 나름 합리적인 책임 전가라 우선 오케이를 하고 대충 a4 용지에 내용을 간단히 쓰고 사인을 했다. 대니는 본격적으로 헬스장을 이용한다하고 나는 할 일이 없어 슬쩍 나가려는데 부모님도 같이 있어야 한단다. 대니가 못마땅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직원에게 그럼 이 근처 밖에서 기다려도 되냐 물으니 그건 괜찮다고 해서 집이 바로 코앞이라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 뒤로는 대니 혼자서 헬스장을 다녔는데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3일 주구장창 아이와 같이 붙어있어서 그런지 잠깐 떨어져 있으니 너무 좋았다. 여유있게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얼마 후 대니가 헬스장에서 돌아왔다. 대니의 얼굴도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 역시 돈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대니 점심을 챙겨주고 그랩을 잡고 학원으로 향했다. 우선 대니를 학원에 들려 보내고 나는  혼자 거리를 활보하다 오후 온라인 수업이 있어 서둘러 그랩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나서기 전에 대니 핸드폰에 그랩 어플을 다운 받고 내 신용카드를 등록해 놓았다. 오후 늦게까지 온라인 수업이 잡혀있는 관계로 오늘은 대니가 수업을 마치고 혼자 그랩을 타고 와야 한다. 이러한 행동은 절대적으로 비추다. 하지만 나는 나름 푼돈 버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 내린 궁여지책이다. (-..-)

작가의 이전글 3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