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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요제

대학생을 위한 대학가요제

by 만월

대학가요제를 봤다. 몇 년 전일까... 족히 30년도 전의 영상이었다. 이미 하늘에 있을 신해철이 '그대에게'를 부르고 있다. 그 앳된 모습, 전문가의 훈련을 받지 않은 불안정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목소리, 긴장한 몸짓 하지만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천재 음악가가 만든 너무나 완벽한 초기작 거기에 웅장한 인트로가 더해지자 숨이 턱! 막힐 만한 무대였다. 그리고 생을 일찍 마감했다는 사실이 더해지자 거부할 수 없는 감동이 나를 휘감았다. 압도된 감동 덕분에 무더운 여름이 시원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영상 뒤로 친절한 유튜브 알고리즘 덕에 신해철의 생애를 더듬어가는 전문가들의 코멘트까지 더해지자 천재적인 음악가의 짧은 생의 마감이라는 음악 영웅의 서사가 완성되기에 충분했다. 나를 포함해 음악을 좋아하는 누구든 그의 생을 담은 음악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상의 어느 부분에서는 그의 자녀들이 그들의 아빠였을 이를 되새기는 모습을 보자 글썽이던 내 눈물이 기어이 뚜르륵! 떨어졌다. 신해철의 노래를 더듬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꼭 들어야지 결심하며 잠이 들었다.


무더운 여름, 비좁은 지하철 안 에어켠 바람을 맞으며 어제 재생했던 유튜브 목록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금 신해철의 노래를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학가요제 영상, 신해철과 그를 둘러싼 밴드, 환호하는 관중을 보고 또 봤다. 횟수를 더할수록 숨은 그림을 찾듯 새로운 볼거리로 더욱 음악에 집중해 온전히 음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무한 반복 영상을 시청하다 순간 멈칫했다. 음악이 시작하기 전 그들을 소개하는 화면에 무한쾌도(서울대, 연세대, 서강대)라고 쓰여 있는 화면에서다.


아직도 나는 '대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음이 찌릿하다. 그때쯤의 나는 뭘 했었나? 1980년 눈부신 산업 성장으로 일명 상업학교(요즘은 특성화 고등학교, 마이스터 고등학교 등 이름이 좀 다양하게 바뀌었다) 졸업생 학생들이 지금 sky 졸업생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중 나도 있었다. 중학교 때, 나름 상위권에서 놀았던 나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그래도 나름 명성 있는 상업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내 선호, 성향등을 고려해서 특성화고를 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면 무조건 인문계 그리고 중 공부는 잘하지만 집안의 형편이 좋지 않으면 나름 명문 상업학교를 가는 것이었다. 나름의 명문 상업학교를 간다는 것에 별다른 프라이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집안이 가난하다는 낙인이 공공연히 찍히는 과정이었다.


중3, 사춘기의 정점이었던 나는 그 낙인이 아직도 한이 되어 지금도 누군가 어느 고등학교를 졸업했냐고 물으면 말을 돌린다. 나는 결국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LG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입시 원서를 쓸 때쯤 엄마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상업고등학교 입시원서를 썼고 그날 이후로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나는 부모님과 마음의 문을 닫았다. 나름 적응을 해서 일을 했지만 좌절과 분노, 부끄럼움의 응어리 덕분에 나의 회사 생활은 혹독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20대는 뭐랄까? 다시 되짚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 전까지 따로 공부를 해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녀 대학 졸업장을 손에 거머쥐었고 27살이 되던 해, 어느 정도 우리 집안이 그 거지꼴이라는 것을 벗어날 쯤에는 어학연수의 바람이 불던 시대의 바람을 타고 퇴직을 결정하고 뉴질랜드로 영어 공부를 한다고 떠났다가 1년쯤 후 돌아왔다.


​되짚어 보면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대학엘 들어갔다. 말인즉슨,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집안에 돈이 좀 있어서 뒷바라지를 해 줄 수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 대학을 갔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며 낭만을 누렸던 시대였다. 왜 하필 '대학가요제' 였을까? 음악의 열정과 재능이 충만했을 대학이라는 울타리 밖의 아이들은 그 쇼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학을 가서 그 경연대회에 참석해야지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냥 방에서 씁쓸히 술을 마셨을까? 방송의 의도, '대학'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었던 젊음의 벅찬 에너지를 이용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싶었던 의도로 만들어진 쇼는 그 외의 사회의 변두리에 있었던 많은 청년들에게 또 하나의 좌절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영상을 꺼버렸다. 다시 볼 것 같지 않다. 신해철이 싫은 것이 아니다. 그 경연을 통해 배출한 재능 있는 음악천재가 그들의 노래가 싫은 것은 아니다. 그냥 그 대회의 이름이 싫다.

"대 학 가 요 제" 그냥 그것뿐이다.


p.s 알아보니 강변가요제라는 이름으로 불특정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회도 존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요제라는 타이틀은 영 마뜩잖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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