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터와 사기꾼

영적인 순간과 강매꾼

by 도가경


12월의 마지막 날도 갠지스강에서 보트를 탔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신성할 수 있게 인도인들은 갠지스강 화장터에서 잿가루 흘려보내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올해의 마지막을 그런 믿음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


뱃놀이 중 겨우 한 살 정도 될법한 아기 시체가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떠내려왔다. 채 완벽하게 타지 못하여 애기 시절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뒷모습이었다. 사람이 잿가루가 될만큼 태우려면 상당한 장작이 필요한데, 장작값이 부족할 경우 생전 모습 그대로 화장을 끝낸단다. 저만한 아이도 다 태우지 못할 장작값이었다. 숙연하게 화장터에 도착했다.


나무 장작 무더미가 사람 키만큼 쌓여 있고, 화장터 뒤로는 돌로 된 건물이 우뚝했다. 수년간 연기에 그을린 새까만 외벽. 소똥으로 바닥까지 까맣게 덮힌 건물 유리창과 문 자리엔 구멍만 뻥 뚫려 있고 구멍마다 갈 날을 앞둔 사람들이 죽음을 기다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사후세계를 위한 다른 출발점이라 검은 배경과는 다르게 덤덤한 분위기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선명하다.


당시 인도 인구는14억여명으로 세계 인구의 1/6인에 달했다. 힌두교는 세계에서 신의 숫자가 가장 많은 종교라고 한다. 오죽하면 1인당 1명의 신이라는 설명이 있을 정도니 그만큼 다채로운 선과 악이 있고 오늘이 그랬다. 영적인 순간과 사기꾼을 만나는 순간을 동시에 마주했다.


화장터에서 엄숙한 새벽을 보내고 블루라씨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왠 인도인 아저씨가 말을 건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저씨가 전통의상 사리와 펀자브 역사를 재미있게 읽어주면 그는 바로 옷과 관련된 사기꾼임을 이제 안다. 핸드메이드 작물들을 ‘살 필요 없이’ 그저 보고 느끼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속지 않지만 그 날은 화장터를 다녀와서 그런지 홀린 듯 따라가게 되었다. 복잡한 주택가를 지나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여러 명의 남자들이 베틀에서 베를 짜고 있었다. 옥빛 천이 굉장히 고와 제법 재밌게 구경 했고, 사기꾼은 공장에서 복제품을 만드는 한국과 달리 인도 사리는 모조리 handmade임을 강조했다.

인도인 장사꾼들은 하나 같이 말이 유려한데 여기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네 취향을 모르니 넌 여기있는 상품을 몽땅 보여달라할 권리가 있어.” 라며 요청하지도 않은 천을 죄다 꺼내 놓기 시작했다. 나는 넘어가지 않았고, 화가난 형제는 날 그냥 집 밖으로 쫒아내버렸다.


길거리에서 물어 물어 간신히 갠지스 강변으로 나왔다. 인도에서는 갠지스강을 ‘강가’ 라고 부른다. 주택가 사람들은 ‘갠지스’라 하면 어디냐는 표정을 짓다가 ‘강가’라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으로 나가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선행학습 한 힌두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길을 잠시 잃어버린 것 말고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오전에는 인도의 영적인 믿음에 경건함을, 오후는 사기꾼 덕에 정이 뚝 떨어지게 되는 다채로운 나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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