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노동자로 살아남기
이른 아침 물안개가 자욱하다. 너무 추워서 샤워는 커녕 세수, 양치도 안 하고 잠든 밤이었다. 과연 인도에서 필요할 것인지 반신반의하며 가져온 핫팩에 의존해 밤을 새웠다.
아픈 날들에도 불구하고 오르차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는데, 웃기게도 우릴 아프게 한 숙소 덕이 크다.
우릴 이 숙소로 안내했던 사환은 카운터 업무, 청소일까지 모두 혼자 담당하고 있었다. 추운 방이지만 대리석 바닥은 광이 났다. 매일 쓸고 닦아 주는 사환 덕분이었다. 따로 머무르는 방도 없어 입 돌아가게 차가운 로비 바닥에 누워 자면서도 늘상 방긋방긋 웃어주는 그에게 왜 뜨거운 물이 안나오냐 닦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환은 밤이면 테라스에 소똥 모닥불을 피워 주었다. 방보다 따뜻한 불가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불이 꺼지면 다시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바짝 말린 소똥은 장작 냄새와 똑같아서 역하지 않았지만, 밤이면 모닥불에서 묻혀온 그을음으로 향 냄새를 방 가득 채웠다.
갈색 피부에 동그란 얼굴 더 동그란 눈을 그는 20대 후반인 줄 알았는데 겨우 22살이었다. 타지에서 일하는 인도 노동자들은 대게 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일까 녹록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 오르차가 유난히 추운 곳이니 본인이 대신 미안하단다.
∙ 형제만 5명인 집 넷째였다. 큰 누나와 형은 벌써 아이도 2명씩 낳아 기르고 있다.
∙ 한국 학교는 한 학급당 30명씩 대략 6개 반이 있다 하니 자그마한 규모에 놀란다. 인도는 50명씩 10개 교실이라고 했다. 부모님 학창 시절 우리나라 모습이다.
∙ 고향은 여기서 100km 정도 떨어진 하여튼 먼 마을이다. 인도 빛의 축제 ‘디왈리’ 기간인 나흘만 고향에 다녀올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짠했다. 오르차는 일년에 딱 3개월있는 성수기 시즌에 와서 일을 도운댓다. 우리의 만남은 꽤나 운명적이었다.
∙ 3개월치 총 봉급은 2000루피. 3만원 조금 넘는다. 쉬즈마할 호텔 하루 방 값에 해당한다. 얄량한 내 동정심에 의한 착각인진 몰라도 그 말을 하는 눈이 잠겼다
∙ 추울 때는 계란을 먹어랬다. 본인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2개씩 삶거나 오믈렛을 한단다. 계란은 잘 먹어서 다행이다.
∙ 너무 추운 오르차에서 급하게 산 내 숄 가격을 물었다. 350루피 가격에 놀라며 자기 친구는 똑같은 숄을 250루피에 팔고 있단다. 역시 이거 250루피 짜리였다.
우리 말고도 숙소엔 손님 두 명이 더 있었다. 나홀로 여행객인 호주인과 이스라엘인 모두 매일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해줬기에 우리도 모든 일을 ‘샨티’롭게 흘려보내기로 했다.
아침 얼음물 샤워를 하고, 햇볓이 안개를 물리치는 이른 오후가 될 때까지 그나마 바람이 덜 드는 로비 의자에 모여 아침 인사를 나눈다. 외출 전까지 각자 책 한 권씩 읽는, 참으로 샨티스러운 숙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