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journey
아침에 눈을 뜨니 7시 반이다.
우리 숙소는 아침에만 뜨거운 물이 나오므로 오전 중으로 샤워와 빨래 모두 끝내야 한다. 건조한 사막 기후라 옷이며 머리카락이 금방 마른다.
오르차에서는 3일, 우다이뿌르에서도 하루하고 반나절 더 걸렸던 빨래가 당일 저녁이면 보송보송을 넘어 파삭파삭해졌다.
그래도 오르차 추위에 놀라 급하게 산 보라색 판초는 여태 한 번도 세탁하지 못했다. 두터운 털실 가닥마다 낙타 냄새가 심하게 배었지만 물에 넣는 순간 털실이 스르르 풀려나올까 무섭다.
오늘 아침 일정은 시장에서 낙타 투어 도중 너덜너덜해진 바지를 대신할 새 옷을 구하는 것.
외진 곳에 들어선 마을이다보니 배낭여행객에겐 어려운 물가였다. 가게 주인은 맘에 쏙 드는 주황색 알라딘 바지를 대뜸 250부터 불렀다. 오늘 첫 손님이니까 좋은 가격에 해주겠다며 250루피, 180루피, 150루피까지 내려왔지만 이전까지 120보다 비싸게 준 적은 없는 물건들이다.
동네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사진관에도 들렀다. 한 곳은 한 장에 30루피를 부르고 다른 곳은 그나마 25루피를 제시했다. 우다이뿌르에서는 5루피에 뽑았다고 항변했지만 조드뿌르까지 나가서 사진을 인화해오는 비용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처럼 물자 공급이 어려운 도시인데 작은 매점에서도 스페셜K 시리얼을 파는건 뭐담.
거의 매일 입던 까만 반팔티는 한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주황색 글씨로 ‘Life is journey’가 새겨져 있다. 어디 기념품으로 받은걸 입다 버리려고 가져온건데 종종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Yeah! Life is journey’라 외치며 고개 인사를 하곤 했다.
날 보면 지겨울만큼 외워대서 별명이 ‘Life is journey’가 되어버린 종업원도 있다.
숙소 바로 앞 자그마한 상점 종업원은 내가 지나갈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총알같이 튀어나와 ‘Life is journey’를 외쳤다. 며칠을 그러다 으레 인도 남자아이들이 그러듯 프로포즈를 받았다.
평생 미혼으로 살더라도 42일동안 프로포즈를 지겹도록 받은 덕에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 같으니 고맙게 넘겼다.
‘샨티 레스토랑’은 네팔 사람이 운영하는 티벳 음식점이다. ‘모모’라고 불리는 음식이 우리나라 만두와 모양도 맛도 꼭 같다고 들은 차에 지나가던 ‘Life is journey’는 이번에 식당까지 따라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 서로서로 알고 지내는 곳이라 저 친구가 자연스럽게 식당 자리를 차지해도 그러려니 냅두는 분위기였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니 보통의 사람이었다. 21살 학생이지만 학비를 스스로 벌어 대학을 다니기 때문에 한 달은 일을 하고 한 달은 공부를 한단다.
인도 대학은 한 달 주기로 휴학이 되는 시스템인지 영 믿을 수 없었지만 전공은 역사, 미술 두가지라 말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남의 가게 주방에서 직접 짜이를 만들어 대접해주고 오늘은 얌전히 떠났다. 다음날 부터 바로 ‘Life is jorney’를 외치는 가벼운 행태로 돌아갔지만 인도에서 손꼽게 맛있는 짜이 솜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