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마을의 사리입은 여인들
황토색 벽이 해를 만나 골목마다 따뜻한 노란빛이다.
붉은 사리 자락이 빛 사이를 지날 때의 잔상이 자꾸 인도로 우릴 돌려보냈다.
사리 가게에서 빨간 사리 하나를 샀다. 밑단에만 장식이 있는 심플한 6m 길이의 천이다. 처음은 가게 주인장이 입혀주었지만 아무래도 혼자 입기 쉽지 않아 입을 때마다 근처 인도인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했다.
남자들의 방법은 교본집 그대로의 정석인 것 같이 예쁘지만 걷기가 영 불편하다. 기모노를 입은 것처럼 보폭 좁게 걸어야 하는 치마가 된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종종걸음을 걷는 날 보고 이렇게 입으면 불편하다며 고쳐매주었다.
세상에 황새 다리처럼 쭉쭉 내달아도 불편함이 없다.
하루는 자이살메르로 가족여행에 얼레벌레 끼였다. 아기와 내 또래의 젊은 어머니, 오빠, 젊은 남자 두 명이다. 커다랗고 까만 눈 사이 빨간 빈디를 콕 찍은 아이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초면에 월급 공개를 거리낌 없어하는 인도인들 덕분에 현지 사정을 알게 된다. 오빠 쪽은 학교 선생님이다.
공교육 선생님 월급이 40~50만 원 남짓하단다.
내가 영어 과외로 저들 월급보다 많은 돈을 모아 여행 온 것을 알고 되려 놀란다.
바라나시 대학이 명문이라는 것, 바라나시에는 버팔로 우유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바라나시에서 먹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델리에도, 바라나시에도 있던 German bakery가 성 내에도 있었다. 마을 개선 활동 및 교육에 기여하는 NGO라고 언뜻 들은 기억이 난다. 독일 빵집 옆으로 좁은 골목이 나 있었다.
오늘따라 노란 햇살이 골목을 가득 채워 돌아보기로 결심했다.
골목길을 따라 가정집 서너 채가 나란히 있고 골목 끝은 작은 옷가게로 막혔다.
날 부르는 소리에 두리번거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가정집 옥상에서 아기와 어린 엄마가 손을 흔들며 올라오라고 반겼다.
사다리나 계단은 없고, 튀어나온 벽돌과 다름없는 아슬아슬한 받침대가 벽을 따라 박혀있었다.
스파이더맨이 된 기분으로 벽을 기어 올라가는 나에게 아기는 물개 박수를 쳐 주었다.
아이는 힌디어도 못 할 나이고, 젊다기보다 어린 엄마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힌디어를 모르니까 끊임없이 건네주는 볶은 옥수수 알갱이만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으며 서로 방긋방긋 웃고 말았다.
아직 머리카락이 덜 마른 참이었는데, 빨래가 너울대는 한낮의 옥상은 머리 말리기도 좋은 곳이었다.
옥수수를 내가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이제 내려가야 할지 고민할 무렵 내 또래 여자 아이 두 명이 올라왔다. 인도 아이들답다고 해야 하나 빈손이 아닌 빨랫감을 한 아름 지고 아슬아슬한 벽돌을 밟으며 옥상으로 올라왔다.
한 명이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영어를 못하는 친구는 빨래판 위로 옷을 북북 밀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주고, 한 명은 어느 순간 내 팔에 헤나를 그려주고 있었다.
팔뚝 전체를 차지하는 큰 무늬도 사막 도시의 햇살 아래에서 말리니 30분 만에 바짝 말랐다.
햇볕에 잘 말릴수록 헤나 색이 짙어진다더니, 자이살메르를 닮아 델리보다 진한 갈색 헤나가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