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길거리 사람들

길거리 헌팅의 성지였다.

by 도가경




천천히 샤워를 마치고 한참을 꾸물 꾸물 움직였지만 황 씨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초반 며칠을 제외하곤 매일 아침에 헤어졌다가 숙소에서 다시 만난다.

숙소비도 절약하고,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공유하고, 귀국 후 함께 인도를 추억할 수 있는 이 형태가 아주 만족스럽다.

이번 일기는 숙소에서 옥스퍼드 서점까지 걸어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의 기록이다.


걸어서 30-40분 걸리는 길거리에서 오늘따라 오만가지 사람들을 만났는데 델리는 길거리 헌팅의 성지였다.


1. 누가 옆에서 릭샤? 라고 제안한다. 돌아보지도 않고 no 라고 했지만 sorry라는 대답에 놀라서 쳐다봤다. 릭샤꾼이 sorry라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굉장히 젊은 남자가 릭샤도 없이 인도 위에 서 있는 행태를 보아하니 릭샤꾼은 아니고 그냥 말을 걸고 싶었던 모양이다.

졸졸 따라오며 온갖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사랑해’를 말한다. 그리곤 천연덕스럽게 ‘사랑해’가 영어로 뭐냐고 묻는다. 떼어내느라 애먹었다.

2. 이번에는 점잖게 생긴 아저씨다. 옥스퍼드 서점 가는 길을 물었고,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신건 고맙지만 연신 따라온다. 내 머리카락이 까많고 곧게 뻗었으니 ‘India’ 스타일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3번이나 들은 말이지만 어림없는 소리. 한국인과 같이 착 붙은 생머리를 한 번도 본 적 없다.

3. 길치와 방향치를 함께 묶어둔 나는 초행길을 무조건 헤멘다. 이번에도 옥스퍼드 서점 바로 근처에서 골목을 잘 못 들었다. 피자헛 건물 뒤편이 보이는 허름한 골목을 돌아 나오는 와중에 인도인 청년이 말을 건다. 대뜸 옥스퍼드 서점을 찾는 것 아니냐고 맞춘다. 그가 안내해주는 길이 큰 길로 향하는 방향이어 따라나섰다. girlfriend와 놀러왔다는 내 말에 레즈비언이냐며, 혼자 웃다가 세상에 joke가 없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느냐며 또 웃는다. State building이 보이자마자 멀어졌다.


4. 서점에서 나오니 해가 쨍한 시간이었다. 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걷는 도중 또 웬 남자가 hot?이냐고 말을 걸었다. 분명 hot처럼 보일건데 뜨거운 짜이를 대접할테니 함께 가잔다. 센스가 없다.


5. 인도인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오히려 내게 길을 물어왔다. 네팔인이었다. 동행을 구한다길래 거절했다.


6. 숙소 로비에서 체크아웃 중인 백인 관광객을 만났다. 내 티셔츠를 보고 대뜸 Life is journey! Enjoy your stay!를 외치고 나갔다.


벌써 옥스퍼드 서점의 기억은 흐릿하고 사람 기록만 남았다. 인도 여행 답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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