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좋아진 델리

여행 마지막 날

by 도가경




신기하게 인도에서는 8시간 숙면이 딱딱 들어맞았다. 알람 없이 12시쯤 자서 8시간 뒤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눈을 뜸과 동시에 오토바이 소리, 경적 소리, 길거리 짜이 장수의 일관된 ‘짜이! 스낵!’ 외침이 한 번에 밀려들어오곤 했지만 이것들은 사실 잠들기 직전의 밤거리 소리와 전혀 다를 바 없기에 소음이 날 깨우는 것은 아니다.

어제 옥스퍼드 서점에서 270루피짜리 책을 사고 동전 한가득과 10루피짜리 지폐들만 남았다. 인도 마지막 하루를 보내기에는 충분하다.


야크치즈 토스트

우선 아침으로 everest에서 야크(yak) 치즈 토스트를 주문했다. 치즈와 계란 때문에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인도의 치즈는 특별하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야크 치즈는 히말라야 등 고산지대에 사는 동물 야크(yak)의 젖으로 만드는 것인데 꼬릿꼬릿한 냄새 가득 풍기며 바싹 구워 바삭바삭해진 치즈를 흰 빵 위에 올려주는 단출한 샌드위치 한 입만 먹어도 노릿한 맛이 입에 오래 남는다.


닭꼬치

밤까지 75루피는 닭꼬치 용으로 아껴둬야 한다.

빠하르간지 큰 대로에서 우리 숙소 골목으로 빠지는 입구 저녁 시간이면 닭꼬치 청년이 온다. 인도닭은 한국보다 훨씬 연해서 뭘 하든 맛이 뛰어난걸 직화로 초벌하고 철판에 한 번 더 볶아준다.

마살라를 뿌리지 않아 숯불 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엄청난 닭구이다. 엄밀히 말해서 꼬치라고 보긴 어렵지만 적어도 숯불에 구울 때는 꼬치에 꿰어 굽는다.

마지막 날이니까 팔뚝에 거대한 헤나를 새기고 한국에 돌아가기로 했다. 닭꼬치 맞은편에 헤나 좌판이 있다. 푸근한 인상의 할머니는 헤나를 그리고,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접객과 호객을 맡아한다.


인도 상인이 외치는 free는 99프로의 확률로 free가 아님을 알기에 무시하고 가려는데 골목 끝까지 따라와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날 부르는 아이의 말이 진심으로 보였다.

생각해 보건대 어제 그 좌판에서 헤나를 받던 한국인을 구경하다가 우리도 헤나를 그렸고, 우리 작업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연달아 고객이 되었었다.

나를 모델로 내세워 어제 같은 상황을 만들려는 모양이라면 어린아이가 대단한 수완이 아닌가 기특한 맘ㅡ로 따라갔다. 할머님은 어제와 같이 활짝 웃어주며 팔뚝 전체에 그림을 그렸다.

그 사이 네팔인과 중국인 3명이 모였다. 닭꼬치를 살때까지 헤나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헤나값은 치뤄준 셈이지만 델리 공항으로 가기 전 남은 루피를 털어 갈색 해나팩을 선물로 전해주었다.


아이는 팔을 높게 들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 준다. 손님들에게 둘러싸여 아이는 보이지 않고 터미네이터 마지막 장면처럼 엄지만 한참을 보이다 팔이 천천히 내려갔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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