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했는가 - 다섯 번째(2)

퇴사 일대기

by HanaLim

팀장님은 나를 데리고 매대 확인이나 시장 조사를 가끔 갔다. 사람 좋은 팀장님은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고 나는 팀장님의 인생의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첫 회사에서 20년을 있었어."


팀장님은 입사할 때 여기 어떻게 있냐고 생각했던 회사를 다니게 된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리고 회사에서 원하지 않는 직군으로 적힌 명함을 받을 때, 자신이 원하는 직군으로 수정해 달라고 다시 받은 이야기도 해 주셨다. 팀장님은 자신의 직업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현재까지도 나에게 울림이 되고 있다.


팀장님은 결혼한 지 시간이 꽤 됐지만 자녀가 없었다. 모든 시도 끝에 포기하게 된 이야기를 덤덤히 하시며 그래서 나 같이 어린 직원을 보면 데리고 다니며 맛있는 것도 먹고 하고 싶다고 하셨다. 팀장님이 나나 사수 언니들을 시장조사에 긴 시간 데리고 다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날은 팀장님 차를 긴 시간 탔던 날이었다. 여러 매대를 보고 팀장님 아는 사람 사무실에 들르고, 로봇 건물같이 생긴 잠실도 보았다. 물론 맛있는 것도 먹었다. 팀장님의 인생관을 들으며 지금도 떠오르게 하는 것들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이 수다들과 이동이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회사는 정기 워크숍을 갔다. 신입 입사자도 있으니 명분이 되었다.

20대 사수 언니는 집에 일이 있다며 참여하지 않았다. 유일한 미참가자이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토요일에 큰 관광버스가 왔고 우리는 어떤 산으로 갔다. 인사팀인가 운영팀인가, 어떤 팀에서 준비한 일정을 알려준 대로 꽃게탕을 먹었다. 섞어 앉아서 먹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밥을 먹게 되었다. 친한 사람들끼리 대화를 했고 첫 스케줄부터 집에 가고 싶었다. 다음 장소인 어떤 부두에 도착하자 자유시간이 생겼다. 흩어져서 사람들은 이리저리 산책을 했다. 나도 조금 떨어져서 바다를 보며 걸었다. 혼자 다니는 나를 발견한 팀장님은 나를 데리고 다녀주셨다. 영업팀 팀장님이 오시고 어디서 일하는지 모를 분도 오시면서 3~4명이 다시 버스에 탈 때까지 산책을 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고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다를 봤다. 그때도 지금도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일정이 마무리가 됐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4~5 가량 모든 일정이 끝났고 당일치기였기에 우리는 다시 회사 근처로 돌아갔다. 역에서 모두 내린 사람들은 흩어졌고, 나도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주말 1일이 날아갔다.




20대 사수 언니는 집안일은 잘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주 후 사수 언니는 퇴사를 통보했다.

사장님은 화를 냈다. 희망 퇴사 일자가 2주도 안 되었기 때문에 다음 사람을 구할 시간이 촉박했다. 20대 사수 언니는 눈물을 흘렸다. 사장님은 그대로 나오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30대 사수 언니가 바빠졌고 나도 어리숙하지만 일부 작업들을 이어서 하게 되었다. 회사는 급하게 채용을 진행했다.


이 사건 이후 사장님은 구내식당에 직원들을 집합시켰다.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긴 사장님은 한숨을 쉬었다. 사장님은 책임감에 대한 것과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분노한 것 같았다. 20대 사수 언니는 워크숍이 있던 날 면접을 보러 갔던 것 같았다.


"저 어린 얘가!! 혼자서 힘들게 하고!"


사장님은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20대 사수 언니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 회사 공장과 이야기나 업무 등을 하게 된 것을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힘들진 않았기에 속으로 당황스러웠다. 사장님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팀장님은 사장님에게 자신의 책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 시간 이후에도 팀장님은 사장실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그 뒷모습이 쳐져있어 보였다.




공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이다 보니 불량품이 생기면 모았다가 사내에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했다. 공장 직원들이 날짜를 알려주면 사람들은 미리 어떤 것을 구매할지 찜을 했다. 구매는 업무 시간에 각자 알아서 공장에 찾아가 담당 직원에게 물어보고 구매해야 했다. 딱히 카펫이나 매트에 관심이 없어 나는 구매할 생각이 없었다.


"카펫 되게 비싼데. 불량이라도 티 안 나서 사는 게 좋아."


30대 사수 언니가 구매한 카펫을 놓으며 말했다. 팔랑귀인 나는 쭈뼛쭈뼛 공장에 갔다.

공장은 어지럽고 사무실보다 훨씬 바빠 보였다. 포장을 하는 직원들과 재고 정리를 하는 직원들이 엉켜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어버버 하고 있는 나에게 오지랖이 넓기로 유명한 직원 분이 오셨다. 같이 불량들이 쌓여있는 곳으로 갔고, 몇몇 직원 분들이 이거 이쁘다며 말했고 가늠이 잘 안 갔지만 권해주는 것으로 5천 원을 내고 중형 카펫을 구매했다.

그 카펫은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예쁜 카펫이 맞았다.




영업팀 팀장님이 면접자로 꼽은 이력서에는 예쁘고 매마른 모습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면접 당일, 조금 늦어지는 팀장님의 전화로 손님맞이를 먼저 했다. 눈앞에는 굉장히 통통한 분이 서 있었다. 사진과 많이 다른 풍채라서 당혹감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윽고 오신 영업팀 팀장님과 우리 팀장님이 오셨다. 당혹감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그런 편이죠 하하하"


사진과 조금 다르시네요 라는 영업팀 팀장님의 물음에 면접자는 호쾌하게 웃으며 답했다.

며칠 후, 20대 사수 언니 자리에는 그분이 앉게 되었다.




급한 일들을 마무리해야 했기에 인수인계를 각 잡고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풍채가 좋은 언니는 입사 후 며칠은 할 일이 없었다.

나의 앞자리였던 언니의 모니터는 생생하게 보였다.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는 모습도 당연하게 보였다.


"블로그 하세요?"


나의 물음에 풍채 좋은 언니는 편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꽤 오랜 시간 운영을 했는지 방문자도 많고 잘 꾸며져 있었다. 풍채 언니는 할 일이 없으니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이 없으면 회사 정보나 인수인계 문서를 확인하는 편이었기에 당시근무 시간에 블로그를 당당하게 하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영업팀 팀장님이 디자인 실을 찾아왔을 때도 풍채 언니는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것을 본 영업팀 팀장님도 블로그에 대해 물었고,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이후 별 다른 말이나 이야기가 없었지만 풍채 언니에게도 조금씩 업무가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은 전반적으로 평화로웠다.

어려움이라면, 나이 차가 나는 어른들과의 생활로 불편함이나 긴장감과 팀장님과 함께하는 장시간의 시장조사뿐이었다.

인수인계를 받을 때부터 커리어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지속적이었다. 국내에선 희소한 매트와 카펫 경험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 가늠이 안 됐다. 인도나 유럽처럼 카펫 문화가 짙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디자인은 항상 간단했다. 관심이나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 학원 원장님은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계속 다니기를 희망하셨던 것 같다. 누가 봐도 편한 직장이었다.(혹은 내가 잘 기억 못 하는 걸 수도 있다.)


평화롭지만 매일 답답함을 느끼며 다니던 중,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너에게 딱인 곳이 신입 디자이너를 뽑는데!"

마침 난이도가 적당한 텍스타일 회사에서 학원에 연락이 왔고, 나는 면접을 보기로 했다.




용산에 있던 회사는 오래된 건물에 있었다. 퇴근 후 방문한 사무실에는 과장님 1명만 사무실에 있었다.

나 때문에 야근을 하시는 것이 아니냐며 죄송하다고 한 말에 과장님은 웃으며 아니라고 답했다. 우아하고 잘 꾸미는 사람 같았던 과장님은, 자신도 비전공자였고 몇 년 전에 학원을 다녔었다고 했다.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처럼 보여서 그런지 무언의 유대감이 담긴 눈빛을 받았다.

면접 마지막에 궁금한 점이 있냐는 질문에, 야근에 민감했던 나는 관련해서 물었다. 순간 당황해하던 과장님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거의 하지 않는다며 말했다. 과장님은 내가 괜찮은지에 대해 확신을 느끼지 못하셨다. 하지만 학원 원장님의 소개로 보낸 아이였고, 자신도 학원을 다니면서 원장님이나 수업 방식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믿음 하나로 나를 뽑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환승 이직을 하게 된다.




합격 다음 날, 팀장님에게는 카펫 텍스타일에 대한 관심과 텍스타일보다 패키지 디자인 등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팀장님은 아쉬워했고 영업팀 팀장님은 또다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사실에 나를 보면 으이구를 외쳤다.


소식을 들은 30대 사수 언니는 아쉬워했다.

1:1 면담을 하게 된 사장님도 많이 아쉬워했다. 사장님은 20대 사수 언니의 급진 퇴사가 영향을 준 것이라 생각한 듯했다. 그새 소문이 돌았는지 오지랖 넓은 공장 사람은 조용히 퇴사 이유를 물었다.


마지막 날, 디자인 팀에 인사를 했다. 아쉬움과 함께 짧은 덕담을 주셨다. 30대 사수 언니와 오래 눈을 맞추며 이별을 고했다. 부서에서 나오자 미안함과 좋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내 마음이 편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문 앞에서 눈물을 흘렀다.




퇴근 차량은 처음 보는 공장의 남직원 분이 운전대를 잡았다. 연세가 조금 있어 보이는 분이셨다.

조수석에 앉자 얼마 안 가 또다시 눈물이 나왔다. 직원분은 이유를 물었고, 나는 미안함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 마음이 드는 이유에 대해서도 들은 직원분은 차분한 목소리로 무어라 말씀을 해 주셨다.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삶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어쨌든 뭐라고 계속하면 무엇이든 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살아."


울지 말고! 차에 내린 나에게 눈을 맞추며 직원분은 조금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뒤에 타고 있던 다른 직원 분들도 잘 살라며,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해 주셨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하며 선물로 주신 카펫 봉지를 꽉 쥐었다.

자진 퇴사였음에도 떠나는 차의 뒷모습이 아쉽고 슬펐다.




나란 사람은 흥미가 생기지 않거나,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몸이 편해도 오래 있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커리어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나에겐 온전한 평화는 되려 답답함과 불안감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현재까지도 여전하다.)

그러나, 다음 행보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있어보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은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


하지만 동시에 지낸 시간이 어떻든 좋은 사람들을 떠나는 것에도 슬픔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내가 오래 버티지 못하는 요소나 원하는 업무가 아니라면 지원조차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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