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했을까 - 다섯 번째(1)

퇴사 일대기

by HanaLim

마음이 텅 빈 상태가 한 동안 지속되었다. 당연했다. 최소 4년을 되고자 했던 직업을 안 하기로 결정한 것이니 말이다. 퇴사 후 2달 동안, 가끔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정하면서 학원을 찾아갔다. 어떤 이유로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는지에 대해서 기억은 잘 안 난다. 패션이라는 동일 업계라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직업이라는 점이 작용했던 것 같다.

(어릴 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기에 몇 년 동안 노트에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그렸다. - 이것도 언니가 만화가는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말에 그렇구나.. 하며 접었었다.)


직종 전환이라서 6개월 취업반에 들어갔다. 당시 학원비는 타이밍 좋게 만료된 적금으로 충당했다.

매일 8시간을 학원에서 보냈다. 텍스타일은 처음 해 봤지만, 이전부터 포토샵을 다룰 수 있었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종이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학원에서 원장님과 대화를 하다가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이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나는 24살이었을 것이다. 학원 원장님은 어이없어했고, 사무 선생님은 나를 위로해 줬다.

나이는 드는데 직업이 없으니 어서 선을 보라거나 빨리 취업을 하라는 엄마의 언행은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정신도 심리도 힘든 시기였지만, 어쨌든 수료를 다 했고 면접도 잡히게 되었다. 학원은 취업 연계를 해 주는 곳이었지만, 면접은 별도로 지원한 곳으로 가게 됐다.

회사는 고양시에 위치했고,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원했던 나는 편도 3시간인 것을 보고 경악했다. 면접을 취소할까 했지만, 면접 전날에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당일 일찍 길을 나섰다.




회사는 굉장히 외지에 있었다. 지도 앱은 언제부턴가 길을 잘 찾지 못했다. 강이 보이는 다리를 건너고 무수한 풀이 보였다. 쓰레기 매립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언덕을 넘자 겨우 건물이 보였다.

드 넓은 마당을 가진 회사는 마치 초등학교처럼 생긴 큰 건물이었다. TV를 보고 있는 회장님 방을 거치니 회색과 흰색이 뒤섞인 장발을 한 사장님이 나타났다.


외지라서 그런지 20대는 1명이 전부인 곳이었다. 사장님은 나를 마음에 들어 했고, 합격 알림이 왔다. 그래서 그나마 서울과 고양시를 오갈 수 있는 종로 고시원에서 첫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방 덕분에 출근은 어렵지 않았다. 전철로 역에 내리면 운전 담당 직원분이 오셔서 한 명씩 직원들을 픽업했다. 퇴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야근과 회식은 할 수 없었다. 외진 곳에 회사만 있다 보니, 퇴근 차를 놓치면 차량이 없는 사람은 집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20분은 모든 직원들이 나와 단체 체조를 했다. 학교처럼 울려 퍼지는 스피커가 있었기 때문에 지시 내용을 놓칠 염려는 없었다. 맨 앞에서 사장님이 체조를 했다. 싫진 않았다. 외지이다 보니 공기도 좋았고 몸도 정신도 깰 수 있었다.


부서에는 사수 언니 2명과 팀장님이 있었다. 30대 사수 언니는 조용한 성격으로 손도 빠르고 일도 잘했다. 20대 사수 언니는 대학 졸업 후 바로 근무를 한 케이스라 아는 정보도 많고 굉장히 쾌활했다. 사수 팀장님은 오신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차분하면서 에너지가 넘쳐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어 하는 분이셨다. 두 분 다 너무나 좋은 분들이었다.


20대 사수 언니는 테니스나 운동을 좋아했다. 그래서 언제나 에너지가 넘쳤고, 회사에 친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에너지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30대 사수 언니를 더 따랐다.


영업팀 팀장으로 있는 사장님의 따님은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고 카리스마가 있는 분이었다. 서글함도 있고 추진력도 좋았다. 디자인 팀과 영업팀은 나쁘지 않은 관계로 지냈다. 대부분 부서끼리 잘 지냈던 것 같다.




처음 구내식당을 가자 호기심을 가득 담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팀장님은 내가 속한 부서와 근처 부서에만 나를 소개해 주셨다. 전체에 다 소개를 다닐 필요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수 언니와 팀장님에게 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나는 마치 어렸을 때 부모님 뒤에 숨는 것처럼 뻘쭘하게 웃었다. 당시 유독 낯을 가렸던 나에겐 구내식당은 불편함이 컸다. 그래서 항상 점심엔 사수 언니나 팀장님을 따라다녔다.


점심을 먹고 나면 30대 사수 언니는 픽업 차량에 가서 낮잠을 잤다. 20대 사수 언니는 근처 산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마당을 거닐거나 자리에 앉아있었다. 다른 직원들도 경비 초소 앞에 있는 강아지와 놀거나 산책을 했다. 평화로웠다.




텍스타일을 배워서 왔지만 회사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매트, 카펫 등으로 업무 난이도도 낮았지만 퀼팅 등 실이 짜이는 구조나 기계를 알았어야 했다. 자체 생산 공장으로 OEM도 도맡고 있었기에 거래처 관리, 재고 관리도 필요했고 자체 브랜드 론칭도 준비 중이라서 자잘한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일은 회사에서 그리 많지도, 중요하지도, 그리고 어렵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이후의 생산 관리나 미팅, 납품, 패키지 디자인이 업무 비중이 더 많았다. 전혀 생각지 못한 업무들에 나는 혼란을 느꼈지만, 대리님과 팀장님은 이것저것 알려주기 바빴다.


야근 없는 퇴근 후 고시원에서 지내는 한 달은 자유를 느꼈다. 부모님의 잔소리도 없고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었다. 당시 나의 낙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공용 부엌에 있는 흰 밥을 가져와 노트북으로 How I met your mother 미국드라마를 보는 것이었다.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했지만, 몸이 힘들지도 않고 업무 난이도도 낮으니 평온했다.




어느 날, 이마트 바이어 미팅을 동행하게 됐다. 바이어 미팅 장소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

큰 하나의 공간에 빽빽하게 대면 창구가 있었다. 마치 은행 창구를 최소한으로 만들어서 배열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바이어가 나타난 번호 창구로 가니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어투 자체가 날카로운 분이 앉아있었다. 팀장님과 사수 언니는 준비한 서류를 펼치며 제품 설명을 했다. 말없이 몇 개의 서류를 집어 보던 바이어는 손가락으로 자신이 들고 있던 서류를 툭툭 치워내며 다른 제품을 찾았다. 그 행동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지만 팀장님과 사수 언니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30분가량의 미팅이 끝나고 돌아가던 길에 나의 느낌을 묻는 팀장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팀장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이 정도면 약과라며 매우 착한 거라고 말씀하셨다. 사수 언니도 옆에서 거들었다. 나는 그 말에 더 충격을 받았다.




영업팀에 새로운 남자 직원분이 입사했다. 이전 직업은 바이어라고 했다. 자녀가 있는 아빠 같은 모습이었다.

언젠가 나와 사수 언니, 영업팀 팀장님과 미팅을 하던 때였다. 도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은 영업팀 신입 분이 가만히 통화를 듣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끊었다.


"배치를 왜 앞에다 뒀냐고 저더러 죽여버리겠다고 하네요."


무슨 일인지 물어본 영업팀 팀장님에게 영업팀 신입 분은 씁쓸하게 말했다. 충격적인 말에 2초간 정적이 일다 노발대발 난리가 났다. 상처를 받았는지 신입 분은 몇 번을 되뇌다 괜찮다며 미팅을 이어서 하자고 했다.




배치한 제품 매대를 보여주기 위해 팀장님은 30대 사수 언니와 나를 데리고 매장으로 갔다. 20대 사수 언니는 일이 바빴고 파트가 달라 동행하지 않았다.

이마트를 포함해 여러 마켓들에 가서 어떤 위치에 우리 제품이 배치되고 있는지와 동종 업계 기업은 어떤 제품들을 내놓고 있는지 봤다. 팀장님은 하나하나 설명해 주며 시장 조사를 하라고 했다. 틈만 나면 마트에 가서 제품을 보라고 했다.


회사에 들어가기 애매한 시간이 되자 팀장님은 저녁 먹고 퇴근하자고 했다.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팀장님은 시장 조사를 정말 자주 많이 하시는 분 같았다. 맛있는 수제비를 먹으러 가는 길에 소품샵이 있으면 들어가서 구경을 하며 잘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팀장님이 정말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애초에 매트나 카펫에 관심이 없었기에 점점 듣는 것조차 지쳐갔다.


대략 밤 9시까지 시장 조사를 하고 가까운 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잘 가던 차가 급정거를 했고 나는 그대로 앞 헤드에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박았다. 얼굴인지 목인지 뿌득 소리가 났다. 팀장님은 심호흡을 했고 우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다들 무사했다. 없었다. 살짝 찢어진 나의 이마만 빼면.



(길어서 2편으로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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