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했을까 - 네 번째(2)

퇴사 일대기

by HanaLim

우리 부서의 바로 옆에 있는 영업팀은 항상 아침마다 소란스러웠다. 목소리도 우렁차고 사교성도 좋은 남자분은 상사에게 서두르라는 말을 듣거나 혼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남자분은 나의 사수 분에게 전에 줬던 패턴에 실수가 발견되었다며 다시 뽑아달라, 빨리 나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행동이 느린 사수는 어버버 하며 일을 했고 남자분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아침, 일을 하고 있는 와중 큰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쪽을 보니 영업팀의 남자분의 얼굴이 붉었다. 협업팀 상사는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왜 항상 그렇게 말씀하시냐고요! 저도 열심히 하려고 하잖아요!"


비슷한 말을 남자분이 자신의 상사를 향해 외쳤다. 상사 분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울분인지 분노인지 마음을 삭힌 남자분이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회사는 계절에 맞춰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고 제작했다. 프로젝트는 순풍 중이었다. 대표가 디자인을 다시 하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대표의 말을 듣고 온 직원은 사색이 되었고, 그 말을 전달받은 각 부서는 난리가 났다. 디자인에 해당되는 부자재 발주도, 진행도 모두 마무리에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 부서의 팀장들은 한 명씩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부서는 평소 조용하고 상식적으로 일을 하던 과장님도 한 말씀을 들었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대표님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불만들을 듣고 있던 직원이 소리쳤다. 그 말에 다들 미간만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변경된 프로젝트로 디자인이 바뀌며, 주문했던 원단 량이나 부자재 등이 모두 함께 바뀌게 되었다. 그나마 메인 브랜드는 대부분 기존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타협이 되었던 듯하다. 원단 량이 바뀐 것은 1개밖에 없었다. 과장님은 종이에 어떤 스타일의 어떤 원단이 얼마큼 양이 바뀌었는지를 적어 나에게 주며 원단 부서에게 내용을 알려주라고 지시했다. 나는 종이를 들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원단 팀의 여자 과장님에게 갔다. 그리고 내용을 전달했다.


"아니 이거 바뀌면 어떻게 하라고!!"


나의 말을 들은 여자 과장님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생각지 못한 반응에 나는 얼어 눈만 깜빡였다. 여자 과장님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왜 이제 말하냐며 나의 업무 자질을 탓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고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이 이 목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몇 마디를 듣고 있자 뒤에서 종이를 주신 과장님이 오셨다.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의 과장님이 입을 열자 여자 과장님의 어투와 볼륨이 달라졌다. 과장님은 나에게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고, 자리로 온 나는 얼떨떨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억울함에 몸이 축 처졌다.




원단 팀의 여자 과장님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컵라면을 먹는 영업팀 팀장님이나 남성 분들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로 남성 분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던 것 같지만, 여자 과장님은 항상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결혼을 못하지"

그 모습을 본 사수 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결혼을 못해서 그런지 히스테리가 있다며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른 사건은 자신도 당했고, 괜히 그럴 때가 있다며 넘기라고 했다.

처음으로 히스테리가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 때문인지, 다행히 그 일로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그러진 않았다.




나는 사수 언니와 남자 신입의 사수 분과 자주 어울렸다. 그 둘은 나를 잘 챙겨줬고, 남자 신입까지 4명이 같이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언젠가 문득 내가 떨어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남자 신입이 어떤 것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합격했는지 알고 싶었다. 나의 질문을 들은 사수 분들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모든 면에서 네가 훨씬 월등했어."

"근데 다른 브랜드의 여자 대리님이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했어. 그래서 걔가 붙은 거야."


사수들은 번갈아가며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성별로 불이익을 받은 사실을 인지한 건 이 날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남자 신입은 나 보다 일을 못했다. 그래서 사수 분의 말을 들은 이후부터 씁쓸함을 느꼈다. 잘해도 소용없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지하의 원단 창고에 사수 언니와 가던 중이었다. 사수 언니는 나에게 노하우 비슷하게 눈치가 너무 빨라도 안 좋다고 했다. 사실 사수 언니는 눈치도 빠르고 행동도 빠른, 일잘러였다. 하지만 어디선가 불편한 경험을 했는지 현재 회사에서는 눈치 없는 척 행동한다고 했다. 잦은 실수에 울상을 짓던 영업팀 남자분이 떠올랐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오히려 눈치가 없는 척을 한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다른 브랜드 사수 분이 퇴사를 하게 됐다.

후임으로 온 경력직 언니는 중간에 자신이 쉰 기간이 많다며 걱정을 했다. 그리고 입사 3개월이 다다르기 전, 나도 팀장님에게 퇴사를 말했다. 경력직 캐드 언니는 자신은 어떻게 하냐며 울상을 지었다.


용역 업체보다 긴장감이 적은 생활이었지만, 야근이 많다는 것은 동일했다.

또한 그 야근이 업무를 위한 것이 아닌, 눈치를 보며 하는 공부를 위함이라는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예민하고 기가 센 디자인팀, 히스테리가 있는 협업 부서 등 사방으로 눈치를 봐야 하는 환경이 답답했다.

시끄러운 매일 아침, 오지의 물류 지원도 은근하게 짜증 나고 답답했다.

공부한 적 없는 아동복/유아복 그레이딩 계산은 머리가 너무 아팠고, 외우려고 해도 잘 외워지지 않아 막막함과 스트레스를 느꼈다.

패턴사 특성상 선택한 복종 외의 다른 복종으로 가기 어렵다는 사실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여성복만 공부했고 희망했기에)


하지만 용역이 대다수인 패턴 업계에서 브랜드 회사를 들어갔다는 자체가 큰 행운이었다. 운이 따랐지만 나는 금방 그 운을 놓아줬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좀 더 있을만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다. 계산법이 머리가 아프더라도 1년 정도는 공부하면서 있었다면, 원하던 여성복으로 이직할 수 있었지도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의 퇴사는 나름의 트집과 이유를 대며 했던 퇴사였던 것 같다. 단지 원하는 복종이 아닌데 계산법도 너무 어려워서 그 어려움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던 것 같다. 아쉬움이 남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더 있어볼 만했던 곳이었다.

(수학을 너무 못해서 오히려 더 힘들었던 걸까?)




"너는 공무원이 잘 맞을 것 같아"


패턴 용업 업체 사장님과의 연락은 의외로 2~3년 정도 지속되었다. 마지막 통화에서 사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나는 공무원이 되길 원했던 엄마가 잊을 만하면 권유했기 때문에, 되고 싶지 않은 직업 1위가 공무원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내려앉았다.


미래의 내 모습이 될 수 있는 패턴 전문가가 나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전문가의 눈으로 나는 안 맞는 직업이라며, 순진하게 그렇구나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주 착하게(?) 나는 다른 일을 해야 하나 보다- 하며 고민했다.

그래서 정말로 패턴을 그만두기로 했다. 시작이 쉬운 만큼 끝도 쉬웠다. (이 만한 팔랑귀도 있을까?)

고등학생 때부터 목표였던 직업을 버리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마음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어떤 계기로 나는 다른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

(계기는 잘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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