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했을까 - 네 번째(1)

퇴사 일대기

by HanaLim

용역 회사 이후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공고에 지원을 했다.

패턴 업계는 공고 자체가 굉장히 적고, 신입은 특히나 적었기 때문에 취업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도 용역 회사에는 지원을 안 했다. 다시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캐드 프로그램 회사에서 무료 교육을 받으며 지원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면접이 잡혔고, 유명한 브랜드의 임원 면접에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고지식함은 나와 맞지 않다는 걸 느껴 실망감만 느끼게 되었다.


그런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규모 있는 회사의 공고가 올라왔고 서류 통과를 했다.




면접을 보러 간 회사는 압구정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 이때 처음으로 압구정을 갔던 것 같다.

고층 빌딩의 고층에 위치해 있던 회사는 엘리베이터도 있고 여러 개의 방도 있었다. 사람도 많았고 파티션으로 구분도 되어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회사'라는 모습을 처음 본 경험이었다.


팀 면접은 2:2로 진행되었다. 비슷한 처지의 남자가 옆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나름 충실하게 대답을 했다. 나는 학생 때부터 스스로 공부하고 학습했던 성실함을 어필했다. 최종까지 가게 되어 대표님과 1:1로 면접을 진행했다. 1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처음으로 회사다운(?) 회사 모습을 봐서 그런지 아쉬움이 컸다. 허탈함에 전혀 다른 직무의 회사에 입사했지만, 몸이 편해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을 하기에 나의 마음은 미련이 컸다.


"혹시 아직 직장을 구하고 있으신가요?"


회사에서 전화가 왔고, 탈락한 지 한 달 만이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첫날엔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이나 인사관리팀, 영업팀 등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처음으로 부서에 소속되고, 처음으로 직급을 단 직속 상사와 다른 부서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회사의 2개의 브랜드 중, 메인 브랜드의 막내 캐드사를 맡았다. 사수 언니는 회사 생활을 위한 정보들과 위치 등을 알려주며 바쁜 일을 해냈다. 옆의 영업부 사람은 언니가 실수할 때마다 제발 잘해달라며 울상을 짓기도 했지만, 언니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반대쪽의 다른 브랜드의 막내는 나와 같은 면접을 봤던 남자가 있었다. 내가 떨어지고 그 사람이 붙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이유에 대해 궁금했지만 그저 내가 부족해서 그랬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입사 2일째, 한 달에 한 번씩 전 직원이 모여 생일자를 축하하는 날이었다. 갓 입사한 나는 다른 부서의 막내 분과 함께 출근 시간 30분 전에 미리 주문한 김밥을 찾고, 생일자가 속한 팀의 막내가 편지를 써야 하는 문화를 따라 아직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한 생일 축하 편지를 적었다.

출근 시간이 되자 큰 방에 모두가 모여 앉았다. 생일자 이름이 호명되자 각 팀의 막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쓴 편지를 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었고 생일자는 고맙다며 웃었다.


나의 차례가 되자, 쭈뼛쭈뼛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알지 못했고, 이를 의식한 듯 어떤 사람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아이고 하며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생일 편지를 읽었다. 무난하게 썼던 내용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 울려 퍼졌고, 의례적인 박수와 감사 인사가 오갔다.




대리님은 공부를 강조했다. 그래서 대리님이 늦게 있는 날에는 퇴근 시간이 되어도 회사에 남았어야 했다. 대리님도 남아 공부를 가르쳐 주었지만, 대체로 나와 사수 언니, 다른 브랜드를 담당하는 사수 분과 남자 신입만 남는 경우가 많았다. 대리님이 일찍 퇴근하지 않는 날에는 공부를 해야만 했다. 먼저 가면 오늘은 공부를 안 하냐고 묻거나 인사를 안 받는 등의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생겼다.

대리님은 남아서 공부하는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분기에 한 번인가 회사는 창고 할인을 진행했다. 이 날은 전 직원이 물류가 있는 일산으로 가야 했다. 차가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그룹이 찢어졌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전 날 그나마 가깝던 친구네 집에 하루 밤을 보냈다.


창고는 굉장히 컸지만, 모든 직원을 동시에 수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역할 분담은 현장에 도착한 순서대로 이뤄졌다. 의류가 있는 매대에서 고객 응대를 담당하게 되었지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그런지 실내 옷 정리 담당으로 바뀌었다. 선풍기 몇 개를 틀고 나와 사수언니, 그리고 처음 보는 나이대가 있는 몇 직원분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옷을 정리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만지며 해지거나 다시 개어야 하는 옷들은 끊임없이 들어왔지만, 사수 언니는 꿀 보직이라며 기뻐했다.

밖은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던 고객들이 한데 엉켰고, 쏟아지는 문의와 계산으로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평일부터 주말까지 진행되었고, 배정이 안 됐던 마지막 날엔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물류 지원을 경험하게 되었다.




디자인 팀은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부서였다. 입사 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받아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기가 강했다. 그래서 디자인팀에 문의를 할 때 언행을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한 번개 내용을 명확히 확인하고 가야 했고, 많은 시간을 뺐지 않도록 조심했어야 했던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디자인 팀은 퇴사율이 높았고, 새로운 사람도 잘 들어왔다.


나 다음으로 들어온 신입 디자이너는 입사 첫날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굉장히 씩씩하고 활기차서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대청소 날에도 혼자 열심히 싹싹 청소를 하거나 모르는 건 물어보며 편안함을 보여주던 사람이었다. 2년 차 디자이너는 그런 막내를 보며 바보라고 말했다. 냉장고에 넣은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불과 입사 며칠 후의 일이었고, 야근을 하고 퇴근하던 중, 내 앞에서 다른 동료 디자이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뒤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디자인 팀은 그런 곳이었다. 예쁜 분들이 많지만 살벌했다.


(길이서 2편으로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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