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일대기 회고
패턴사가 되고 싶었던 나의 세 번째 행보는 사수가 있는 패턴 회사였다.
드디어 진짜 패턴 업계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패턴실은 신당역에 밀집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용역 개념의 사무소였다.
세 번째 직장이 된 패턴실은 역에서 가깝고 점심지원이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업계가 으레 그러하듯 공휴일 출근+토요일 오전 출근을 해야 하는 스케줄에 월급은 4-50만 원으로 책정됐다. 당장 패턴을 뜰 수 있는 실력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적인 금액으로.)
패턴 업계의 초봉은 매우 낮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월급에 대해 큰 생각은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비 외에는 나갈 돈도 없었고, 야근을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회사에는 사장님과 나를 제외하고 4명의 직원이 있었다. 1명은 보조 패턴사였고 3명은 캐드사로, 남녀 각 2명씩 성비가 괜찮았다. 1명의 캐드사도 얼마 전에 온 신입이었지만 나와 다르게 마음의 여유가 있어 보였다.
막내였던 나는, 매일 아침 가장 먼저 출근해서 사무실 청소와 문을 열고 사장님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컵을 닦았다. 그게 막내가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상 업무였다.
처음으로 진짜 세상에 나왔다는 생각과 많이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항상 긴장감을 지녔다. 직원분들은 살갑게 대하며 질문도 하고 했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체로 말을 못 했다. 그래서 서로가 어려움을 느꼈다.
입사 2일 차, 업무가 끝날 무렵 사장님은 나에게 바지 지퍼의 패턴 구조를 설명해 주셨다.
노트로 바지 지퍼를 잘라가며 설명해 주던 사장님은 답답했는지 내가 입고 있던 바지 지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지퍼 위를 따라가던 손가락은 끝에서 멈췄고, 2~3초 정도의 정적 후 사장님은 퇴근을 하셨다.
명백한 성희롱이었지만, 지퍼 설명을 열심히 하다가 그랬나 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순간의 당혹감을 떨쳐버렸다.
입사 환영을 위해 저녁 회식을 가게 되었다.
직원 분들은 나에게 몇 가지 질문들을 했고, 나는 긴장한 채 성실히 답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애석하게도 다들 취향이나 성향이 나와 맞는 부분이 매우 적었다.
식사 중간이 되자, 사장님은 담배를 꺼냈다. 바로 식당 주인이 만류했다. 사장님은 왜 안되냐며 애교도 섞어보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식당 주인의 뜻을 굽힐 순 없었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사장님의 눈은 약간 이상해 보였다. 목소리의 높이도 높아졌다.
사장님은 2차로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우리 중 가장 등치도 있고 나이도 있던 부패턴사 분과 사수 언니가 많이 취했다며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2차로 노래방을 갔다. 회식으로 노래방을 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가장 구석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사장님은 테이블 중앙 좌석에 앉고 나를 옆에 앉으라고 했다. 부패턴사와 사수는 자연스럽게 탬버린을 들고 노래를 시작했다. 눈앞의 언니 오빠가 사장님의 기분을 좋게 해 주기 위해 오버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마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과 비슷해 보였다. 담배와 술 냄새, 그리고 조금은 무서운 술 취한 사장님의 눈이 떠올라 슬쩍 사장님과 떨어져 앉았다.
"어디가?"
사장님은 내 팔을 잡으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험악한 표정을 마주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시 사장님 옆에 앉았다. 사장님은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눈앞의 사수들의 재롱잔치를 흡족하게 바라봤다.
어느 날 점심을 같이 먹자며 다른 패턴실의 직원이 찾아왔다. 이 날도 점심을 같이 먹자는 것이 이유였다.
그 직원분이 다니는 패턴실은 자신과 사장님 단 둘 뿐이었기에, 혼자 점심을 먹게 되면 놀러 오는 듯했다.
성격이 좋아 보이던 그분은 여자친구가 있었다. 사수 언니의 첫 만남에 대한 질문에 그분은 말했다.
"원래 친구였었고,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고백했어"
고백을 받은 여성 분은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를 차고 자신에게 왔다는 말을 들은 사수 언니는 멋지다고 극찬했다. 듣고 싶지 않았던 나는 먼저 사무실로 갔다.
입사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사장님과 친한 다른 패턴실 사장님과 직원들이 왔다. 그쪽에서도 신입이 들어와 인사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패턴실은 남자 2명에 신입 1명이었다. 신입 여자분은 나의 사수 보다 더 나이가 있었다. (당시 26살이었던 것 같다. 어리다..)
나의 사수는 신입 언니를 보자마자 반갑게 '언니!'라고 부르며 달려갔다. 양쪽 사장님들은 담소를 나누다 환영 회식을 함께 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냈다. 낯가림 심한 성격으로 아직 친해진 사람이 없었기에 회식은 나에게 가장 걱정되는 사안이 되었다.
회식 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쾌활하게 수다를 떨었다. 특히 신입 언니는 신기할 정도로 대화를 정말 잘했다. 어리둥절해하던 나를 본 사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 신입언니가 우리 회사에 올 뻔했어."
내가 지원하기 전에 사수 언니가 먼저 지원했었고, 면접도 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모두가 마음에 들어 해서 사수 언니는 합격을 했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사수언니가 거절하여 연이 닿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사수 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회사를 다니기 어려웠던 상황이 다시 잘 풀리게 되어 다른 패턴실을 지원해 입사하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급하게 사람이 필요했고, 그다음에 지원한 사람이 너라서 뽑은 거야"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사수는 내 앞에서 신입언니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너무 아쉽다는 말을 했다.
우리 사장님은 집에 가자고 했지만, 다른 패턴실 사장님은 노래방을 가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두 번째 회식으로 노래방을 가게 되었다.
술이 약했던 나는 당시 머리가 헤롱거렸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사수 분들은 나에게 절대 자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나는 들어가자마자 의자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너무 졸렸던 게 이유였다.
다른 패턴 직원들은 나를 보며 걱정했고, 사수 분들은 내 몸 위에 외투를 올려주었다. 잠시 누워있다 일어나니 내 눈앞에는 누군가와 다른 패턴사 사장님이 손을 맞잡고 블루스를 추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잘 기억이 안 난다.)
노래가 끝나자 다른 패턴사 사장님은 우리 사장님에게 이제 젊은이들 놀라고 집에 가자며 나갈 준비를 했다. 흥이 났는지 우리 사장님은 더 놀고 싶어 했지만, 다른 패턴사 사장님은 보챘다.
그렇게 인사와 포옹을 하며 나가던 다른 패턴사 사장님은 문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나의 두 손을 잡고 끌어올려 세웠다. 그리고 포옹을 한 뒤 나갔다.
분명 성희롱이었지만, 이것 또한 별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사수 언니나 다른 분들에게도 포옹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들이 떠나고 노래방 시간도 끝나자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사람들은 3차를 찾았다.
야외 좌석이 있던 분위기 괜찮은 맥주집을 찾은 사람들은 각자 한 병씩 들고 담소를 나눴다. 그러다 각자 왜 패턴 쪽으로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겉으로 활봘해 보이던 다른 회사 직원은 알고 보니 현실적인 사정이 있는 등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열악하고 월급도 낮은 패턴 업계에서 버티고 있던 사람들은 쓴웃음을 짓다가 하늘을 향해 이겨낼 거라고! 하며 포부 있게 소리쳤다.
마치 청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자기 연민이 섞인 그 포효는 나에게 느끼하게만 보였다.
한 달이 지나도 나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회식 다음 날인 토요일, 속이 안 좋았던 사장님은 문을 걸어 잠그고 다 같이 1시간 정도 잠을 자자고 했다. 우리는 불을 끄고 자리에서 엎드려 잠을 잤다.
똑똑똑, 작업을 의뢰하기 위해 누군가 찾아왔다. 하지만 사장님은 미동도 없었다. 한번 더 노크가 울렸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몇 십 분이 지나고 다시 노크가 울리자 사장님은 한숨을 쉬며 문을 열어줬다.
꿀 같았던 낮잠이 깨져서 사장님도, 모두 다 아쉬워했다.
그날은 워낙 숙취를 느끼셨나 보다. 작업을 잠깐 하던 사장님은 해장국을 먹고 퇴근하자고 했다. 우리는 순댓국을 먹고 그렇게 퇴근을 했다.
아예 주말 근무가 없는 게 더 좋겠지만, 그래도 일찍 집에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기뻤다.
언젠가 우리끼리 회식을 한 어느 날, 술에 취한 사장님을 집에 보내기 위해 대리 기사를 불렀다. 너무나 순하고 약하게 생긴 어르신이 대리 기사로 오셨다. 사장님의 난폭한 성정을 알고 있던 사수 언니는 기사님을 그대로 돌려보냈다. 사장님이 기사님께 어떤 폭언을 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같은 공간에 있게 하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사장님은 사무실에서 자자고 말했다. 부패턴사 분은 여자애들도 있는데 어떻게 그러냐며 했지만 사장님은 왜 안되냐며 되려 소리쳤다.
"내가 사장님과 사무실에서 잘 테니 너네는 집으로 가"
어린애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 사장님을 데리고 한참을 걷던 우리는 결국 부패턴사 분의 희생으로 해방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나는 퇴사를 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퇴사 의사를 말했다. 이유를 묻는 사장님에게 여성으로서의 건강 문제를 말했다. 당시 실제로 나의 배 안에는 무언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리 큰 일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장님은 측은해하며 별 다른 말을 안 하셨다. 여자 직원분들은 퇴사 사실에 불편함을 느낀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만난 게 인연이니까, 연락하고"
사수 언니는 애써 내게 말했다. 다른 언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퇴사를 한 후, 몸에 큰 이상이 없는 것을 알게 된 후 한번 더 놀러 갔었다. 나의 퇴사 이후, 여유가 있어 보이던 신입 분도 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 외에 머리 스타일이 변한 것 외에 다른 점은 없었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지만 얼굴을 비춰 점심을 같이 먹고, 아주 짧은 대화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 날 이후 또 한 번 사장님 하고만 점심을 먹으며 직원 제의를 받았고, 이후 또 한 번 더 사장님에게 직원 제의를 받았었다. (생각해 보니 안부 문자를 드릴 때마다 제의를 해 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표면상의 이유는 건강이었지만, 더 정확하게는 환경이었다.
해당 업계 문화나 구조에 나는 적응하고 싶지도, 적응되지도 않았다.
특히 회식 빈도와 문화가 나에겐 너무나 힘들었다.
자기 연민 섞인 분위기나 그 속에서 힘을 내자는 응원도 나에겐 느끼할 뿐이었다.
원하는 대로 야근이 많지 않고 패턴을 가르쳐줄 수 있는 환경으로 왔지만,
이번에는 적응이 안되고 무서운 환경의(정확하게는 성향에 안 맞는) 어려움으로 인해 퇴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으로, 나는 회식 빈도와 문화에도 많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