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했을까 - 여섯 번째(2)

퇴사 일대기

by HanaLim

회사는 야근이 거의 없었다.

과장님은 대체로 외근 후 퇴근을 하거나 정시 퇴근을 하라고 먼저 말을 해 줬다. 실장님도 외근 혹은 정시 퇴근을 했기 때문에 야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야근을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어느 날 퇴근 시간이 되어도 실장님과 사수 언니는 수다를 떨었다. 보통 정시 퇴근을 하던 것과는 달라 5분 정도 기다렸다. 하지만 둘은 퇴근할 기색이 안 보였고 나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인사를 하고 퇴근했다. 그 순간 둘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실장님과 나의 관계는 점점 어색해져 갔다.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다. 딱히 권위를 부리는 등의 불합리한 행세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사담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언젠가 실장님과 나만 사무실에 남게 되었다. 실장님은 사담을 하기도 하면서 친해지는 것인데 나는 그런 걸 잘하지 않는다며 내성적인 게 너무 심하다고 했다. 가만히 듣던 나는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스스로도 왜 우는지 몰라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가만히 보던 실정님은 휴지 몇 장을 뽑아주며 힘든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 것은 아니고 나 역시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했다. 그렇게 그날의 대화는 끝이 났다.


생각해 보면 실장님은 어색해진 관계를 아쉬워했던 것 같다. 계속 나와 친해지고 싶었고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운 것은, 나 스스로 나의 그러한 성향을 줄곧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몇십 년 동안 내성적으로 살았지만, 20대 사수 언니처럼 활달하고 스스럼없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부러워했고 나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성향 상 그런 게 어려운 사람이었고, 스트레스를 줄곧 느꼈다. 그러한 속내를 누군가는 너무하다고 하니, 그것이 칼날이 되었던 것 같다.




언젠가 과장님과 30대 사수 언니, 나 이렇게 점심을 먹게 되었다.

가격대는 조금 있지만 맛있는 짜장면 집을 갔다. 과장님은 면을 먹을 때 가위로 면을 잘라먹는 게 깔끔하다고 했다. 그냥 먹으면 다 먹고 나면 그릇에 국물이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과장님과 사수 언니는 가위로 면을 잘라놓고 먹었지만, 나는 귀찮기도 하고 신뢰성이 없어서 그냥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사수 언니는 국물이 조금 생긴 나의 그릇을 보며 '어? 정말이네?'라는 말을 했다. 나와 과장님은 딱히 말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회사 건물 1층의 쪽방에서 지냈다. 몸집이 작은 분들이었지만 나름의 경비원이었다.

나를 처음 본 할머니는 귀엽다고 해 주셨다. 감사 인사를 하고 계단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톡톡 할머니는 손바닥으로 나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당혹감에 나는 손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할머니는 헤헤 웃으며 귀여워~ 할 뿐이었다.

그 후 한번 더 할머니는 나의 엉덩이를 토닥였고, 불편함을 느껴 피하게 되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아주 가끔만 보였기에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검은색의 광택이 나는 차가 회사 앞에 섰다.

두 분의 자녀분이었고, 곧 다가오는 명절이 이유였던 것 같다. (성별은 기억이 안 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기쁘게 맞이했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렇게 해맑은 표정은 처음이었다. 아이 웃는 소리가 얼핏 들렸던 것 같은 기억을 보자면, 자녀 분의 온 가족이 왔었던 모양이다. 산책이나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던 두 분은,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하고 돌아가는 차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어느 때와 같이 평수 가늠도 되지 않는 쪽방 입구에서 저녁밥을 짓기 시작했다.




"인턴을 한 명 보내려고 해"


통화 너머로 학원 사무 선생님이 말했다. 대학교 교수직을 겸업하고 있는 원장님의 제자 중 한 명을 인턴으로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밝은 머리를 한 여자 아이는 으레 대학생처럼 나름 꾸미고, 그리고 처음 해 보는 사회 진입으로 긴장감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인턴이 해야 할 일은 대부분 잡무였다. 나를 도와 원단을 갈거나 샘플을 정리하는 등 아주 단순한 일들이었다. 잡무를 알려줘야 하는 건 나의 업무였기에 자연스럽게 인턴 아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인턴 아이는 나를 잘 따랐고 말도 잘 들었다. 나 만큼은 아니었지만 말 수가 많지 않았고, 특히 실장님을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인턴 친구의 자리는 당시 병가로 공석이 된 30대 사수 언니의 자리였다. 나름 대화가 통하는 만큼 언니보다 인턴 친구가 더 오래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인턴은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오랜만에 학원을 찾아가니 사무 선생님이 인턴 친구에 대해 물었다.

나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라고 말했다. 나의 말에 사무 선생님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교에서는 원장님에게 스승의 날이라고 돈이 든 봉투를 친구들과 원장님 차에 던져 넣었던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원장님은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는 말도 전해 듣게 되었다. 상상이 안 가는 이야기에 나는 깜짝 놀랐지만, 사무 선생님은 특이한 친구라고만 말했다.




그 뒤로도 인턴 아이는 딱히 특별한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디자인하는 나의 작업물을 옆에서 빤히 지켜보는 것 외엔 말이다. 꽤 오랜 시간을 감시하듯 턱을 괴고 보는 눈빛에 나는 어색하게 너무 보니까 민망하다고 말했고, 그제야 인턴 친구는 당황해하며 자신의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인턴 기간 끝나기 일주일 전, 과장님과 실장님 모두 외근으로 인턴 친구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곧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인턴 친구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도 잘 맞는 것 같고 과장님 실장님 모두 좋은 분들 같다며 직원 채용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나는 위로하기 위해 예전 회사에서 최종 탈락했지만 한 달 후 다시 전화가 와서 입사한 경험을 말해주며, 여기도 자리가 있으면 공고가 날 테고 혹여나 떨어져도 이렇게 붙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인턴 기간이 끝났고, 한 달 정도 흘렀던 것 같다.


"전에 인턴 친구한테 여기 회사에서 부른다고 말했었어?"


학원 사무 선생님에게 걸려온 전화는 당혹감 그 자체였다. 나의 경험담을 인턴 친구는 '~이런 것처럼 너에게도 연락이 갈 거다.' 형식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인턴 친구는 학원 원장님에게 내가 회사에서 한 달 후에 입사하는 걸로 말을 한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내가 했던 말을 선생님에게 말하며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인턴 친구 얘를 가르치며 특이한 녀석이라고 말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사장님은 상당한 짠돌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잘 어울렸다.

그래서 회식은 꽤 큰 이벤트였다. 전체 회식을 하자는 사장님의 말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들떴었다.

(용역 회사에서 안 좋은 회식 문화를 접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장님은 회식으로 영화를 보자고 했다. 술 회식이 아니었기에 나는 반가웠고, 단체로 히말라야를 봤다. 억지로 쥐어짜 내는 신파였지만 모두 눈물을 흘렀다.

식사 장소는 짜장면 집이었다. 동네에서 조금 더 넓은 뿐, 분위기가 고급스럽진 않았다.

외근이 많은 과장님이 마지막에 왔고, 센스가 없다며 옆의 회계 직원 분께 속삭였다. 사장님은 마음껏 시키라고 했지만,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적당히 시켰다. 10명 남짓의 직원들은 탕수육 대 2그릇을 테이블 별로 나눴고, 1인 1 짜장면으로 통일되었다. 소주를 많이 시킨 남직원 분들은 짜장면, 탕수육과 함께 자주 마셨다.


애써 하하 호호하며 진행되는 회식 자리에 거래처 사장님이 나타났다.

사장님은 어느 업체인지 소개를 해 주셨고, 거래처 사장님은 낮은 자세로 인사를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대표님이 할 말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분하고 감정이 잔잔한 어투였지만 매출 저조에 대한 내용으로 분위기는 금세 삭막해졌다. 이야기가 끝나자 사장님의 편하게 먹으라는 말과 다르게 분위기는 겉으로만 살아났고, 과장님은 회식 자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냐며 회계 직원분께 속삭였다. 나는 거래처 사장님이 나타난 이유와, 계산을 그분이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직원들은 사장님의 짠돌력에 감탄을 했다.




어느 날, 출근하니 실장님 자리에 무수한 흙과 돌이 쌓여있었다.

밤 사이에 천장이 무너진 것이었다. 가장 먼저 출근한 나는 사람들이 올 때마다 이를 알렸다.


"낮이었다고 생각해 봐! 그럼 엄청 큰 일이라고!"


엉망이 된 자신의 자리를 본 실장님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소리쳤다. 맞는 말이었다. 큰 벽돌이 의자 위에 주저앉아 있었으니까. 빗자루와 쓰레기 받기를 가지고 최대한 흙을 털며 정리를 했다.

느지막이 출근을 한 사장님이 디자인실을 찾았다. 실장님은 사무실의 노후와 낮이었다면 자신을 죽었다며 열변을 토했다.


"이거 3천만 원짜리 시계다?"

가만히 듣고 있던 사장님은 갑자기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여주머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던 실장님은 입을 닫았다.




천장 사건이 계기가 되어 사무실은 이사를 결정했다.

서울역 근처로 정하게 된 건물은 별 반 다를 게 없었던 것 같다. 사장님과 함께 탐사를 갔던 직원들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원하는 비용 자체가 당시 시세에 맞지 않았기에 오래된 건물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새로운 사무실이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보지 못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회사의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항상 밝고 목소리도 카랑한 회계 직원분조차 표정이 죽어있었다. 매출 저조로 인해 각 부서에서 1명씩 권고사직을 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우리 팀은 자연스럽게 막내인 내가 당첨되었다. 하지만 다른 부서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결정되었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상당히 삭막했다.


당시 내가 다닌 근속일은 11개월이었다. 1달만 더 있으면 1년을 채우고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4대 보험이나 퇴직금 자체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과장님은 너무하다며 회계 직원분에게 퇴직금은 안 주더라도 근속일은 12개월로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회계 직원분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나중에 서류를 떼어보니 회사는 끝내 12개월로 해 주지 않았다.


마지막 날, 실장님은 샘플 창고에서 여름 파자마 바지 하나를 이별 선물을 주셨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바지였다. 고맙지? 실장님이 건네주며 말했고 나는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 바지는 매우 시원해서 지금도 즐겨 입고 있다. 그날도 외근이었던 과장님은 전화로 잘 지내라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사수 언니는 어떘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짠돌이 사장실을 청소하고 컵을 치우고 그날을 마무리했다. 문을 닫을 땐 직원들은 고생했다고 했고, 일이 남았는지 샘플을 들고 있던 실장님은 잘 가, 하며 손을 흔들었다.




이번 회사는 처음으로 타의에 의해 나오게 된 경험이었다.

동성에 의한 성희롱은 있었으나 무난하게 나름 잘 지냈던 곳으로, 크게 모난 사람은 없었기에 실력에 의한 어려움만 있었다. 실장님과의 관계가 조금 아쉬울 뿐, 그것 외에는 아무런 미련이나 슬픔이 없었다. 그 이유는, 이 회사를 다니면서도 텍스타일을 나의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에 막연한 불안정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텍스타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였다. 특히 손 그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학원에서도 텍스타일 디자이너 일자리에 대한 선생님의 고민을 들었다. 그런 업계에 무언가 뜻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었기에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선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걸 외면했었다. 예술적인 직업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기에 직업 자체가 싫지 않았다. 해외에서 더 좋은 직업이었기에 해외로 가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 생활이나 대학생 때부터 희망하면서도 영어 공부나 도전, 등은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과장님도, 실장님도 모두 좋은 사람이었지만 성향적으로 맞지 않았다.

직업 자체는 싫지 않기 때문에, 이후 커리어도 텍스타일로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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