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일대기
직전 회사 퇴사 이후 반년 정도 휴식을 갖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여행을 갔다 오거나 텍스타일 학원을 다녔을 거라 생각한다.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나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권고사직이었기에 실업급여 신청이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신청하지 않았다. 실업급여의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다양한 회사를 다양한 이유로 퇴사와 이직을 오갔지만, 실업급여를 신청하게 된 건 근 5년 전 즈음이 처음일 것이다.
법이나 제도에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지금의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무일푼으로 어찌 저지 지내다 보니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정부로, 편도 3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고민하다 나는 면접이라도 보기로 했다.
찾아간 회사 내부는 썰렁할 정도로 깨끗했지만, 조용하게 바빠 보이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작은 남자분이 서 계셨다. 3년 전에 먼저 학원을 졸업한 디자이너 분이셨다. 합격을 한다면 나의 사수가 될 사람이었다. 사 근 한 말투의 남자분은 조용하면서 차분한 성향의 소유자인 것 같았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비슷한 결의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고, 같은 학원을 수료했다는 것만으로도 대화도 잘 이어졌다. 어쩐지 유대감도 미약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면접은 2:1로 영업팀 부장님과 회사 대표님이 들어왔다.
눈이 또렷한 여자 부장님은 카리스마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와 반대로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간 남자 대표님은 기력이 약해 보였다. 패턴 경력을 보던 대표님은 직군 변경에 대한 질문을 했고, 나는 만화가가 꿈이었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흥미가 있어 따위의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어느 정도 질답이 끝나자 영어팀 부장님이 나가고 대표님과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많은 걸 해줄 수 있는 곳은 아니야."
잠시 뜸을 들이던 대표님은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말했다.
최저 시급 기준으로 140만 원 급여와 4대 보험, 그리고 식사비가 전부였다.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해 준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패션 업계에 있었을 때 제대로 된 급여를 받아본 적이 없다.
패션 학원에서는 사무 일을 하루 8시간 풀타임을 해도 급여는 100만 원이 되지 않았다. (강사 일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100만 원을 넘을 수 있었다. - 건강보험자격득실에 이름이 없는 걸 보면 4대 보험도 안 해준 것 같다.)
용역 업체에서는 공휴일과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다. 급여는 5-60만 원 정도였고 인턴 역시 비슷했다. 브랜드 회사와 텍스타일에 가면서 4대 보험이나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처음 받게 된 셈이다. 마지막 급여는 100만 원을 넘었지만, 최저 시급을 살짝 못 미치는 정도였다.
그래서 140이라는 숫자는 당시 나에게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이전 급여에서 한 번에 몇 십만 원이 오른 것이었기에 오히려 괜찮냐고 묻는 대표님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동안 최저조차도 안된 삶을 살았던 걸 깨닫고 친구에게 이 충격의 소식을 나불댔다.
대표님은 업종 변경 이력 때문에 반신반의했던 것 같지만, 부장님과 디자이너 분이 어필해 주셔서 입사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는 10명이 채 안되지만, 꾸준한 거래로 매출은 잘 나오는 곳이었다.
첫날엔 인사와 인수인계를 받고, 둘째 날부터는 신규 입사자답게 회사 문을 열고 청소를 했다. 그때는 너무나 당연했기에 불만 같은 건 없었다.
사수가 된 남자 디자이너 분은 굉장히 순하고 착한 분이셨다. 서늘한 인상과 서늘한 말투, 그리고 서늘한 행동을 하는 분이셨지만 디자인 감강이 뛰어났다. 원단 디자인 하나로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다 보니 디자이너의 역할이 큰 회사였다.
실력도 키우고 야근도 많이 안 하는, 그리고 모난 사람도 없는, 그동안 딱 내가 원했던 그런 곳이었다.
영업팀엔 과장님과 대리님이 있었다.
과장님은 자녀가 있으신 분으로 상당히 활달하고 목소리도 컸지만, 대리님은 나 보다 어린 분으로 상당히 조용했다. 야근이 많고 영업팀의 노고가 큰 곳이라 2~3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일잘러인 대리님은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영업팀 사람들이 힘들었다. 친해지기 위해 과장님은 가십거리를 말하거나 말을 걸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 일엔 관심이 없고, TV를 보지 않는 나에겐 매 질문이 어려움이었다. 좋은 사람이라서 나도 티카타카를 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디자이너 사수는(이하 선배) 자신도 힘들다며 그냥 친절하게 대하고 일에 집중하라고 조언을 해 줬다. 그 조언을 실행시키기도 전에 자신과 맞지 않는 타입이라는 걸 알았는지 과장님이 말을 거는 경우는 줄어갔다.
디자인 팀은 대부분 정시 퇴근을 했지만, 영업팀은 매일 야근을 했다.
회사의 메인 시장은 유럽이었기에 시차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오전엔 일이 잠잠했고 저녁때가 되어서 일이 많아지는 구조였다. 야근을 힘들어하는 나였다면 꽤나 힘들어했겠지만, 당시 영업팀 사람들은 야식을 시켜 먹는 등 아무렇지 않게 일을 했다. 새벽까지 일을 한 게 아닌 이상, 다음 날 정시 출근을 했다.
지금도 나는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의문이자 대단함을 느낀다.
입사한 뒤 얼마 안 가 선배는 해외 출장을 가게 됐다.
디자인이 중요한 회사였기에 디자이너에게 지원을 과감히 하는 곳이었다. 선배는 해외 출장은 처음이라며 걱정을 했다. 영업팀의 과장님과 함께 갈 예정이지만, 디자이너는 자신 혼자라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사대주의에 젖어있던 나는 그저 부러움과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선배가 없는 기간 동안 내가 일을 잘할 수 있을지가 이유였다.
시차가 있었지만 선배나 영업팀 과장님은 업무 시간에 맞춰 메신저 연락을 가끔씩 했다. 떠나기 전 선배가 알려준 파일 위치도 익혔기 때문에 과장님이 요청한 파일도 시간 지체 없이 보낼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입사한 지 얼마안 된 사람에게 일을 맡기기 애매했고, 무엇보다 선배와 동급이 아닌 서포터 개념의 자리였기에 나에게 시킬 수 없는 일이 다분했다. 그래서 걱정과는 다르게 큰 일 없이 여유롭게 흘러갔다. 오히려 독방을 쓰게 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1~2주 정도의 출장을 다녀온 선배의 손에는 엄청나게 많은 원단들이 놓여있었다. 영업팀 과장님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굉장히 화려하고 기술이 뛰어난 디자인들이 한가득이었다. 바닥에 하나하나 펼쳐놓자 전 직원이 모여 감상을 하며 참고할 것들을 선별했다.
이전 회사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기에, 이것이 진또배기 텍스타일을 하는 회사는 다르구나! 따위의 생각을 했다.
"이야~ 진짜 작네!!"
원단을 늘여놓고 보던 중, 회사에 방문한 거래처 아저씨가 키가 작은 선배를 보며 외쳤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선배가 놀란 듯 걸어오다 멈췄지만, 이내 웃으며 거래처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는 어떻게 장가를 갈 거냐는 둥의 무례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당시 선배에겐 여자친구가 있었다.
선배는 성품이 넓은 사람이었다. 무조건적인 착함이 아닌, 사람 자체에게서 나오는 잔잔함이 있었다. 의견이 다를 땐 조심스럽게 말하는 등 그래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처음 선배를 봤을 땐 현실적인 관점에서 불리함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보다는 소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키가 작고, 피부가 좋지 않고, 그리 잘생기지 않아도 성품이 좋으면 멋지다는 걸 선배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선배는 멋있는 사람이었고, 후반으로 갈 땐 선배의 여자친구가 정말 큰 복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