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고르기

by 모든 햇살

굴뚝 옆에 작은 빈터가 있다. 그늘진 곳이라 밭으로 일굴 생각을 못 했다. 올봄 한가한 시간이 주어져 그 땅을 기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삽을 땅에 대고 발로 힘주어 눌렀지만 돌이 가득 찬 땅의 반격에 삽이 움찔했다. 땅은 크고 작은 돌멩이를 삽 끝으로 조금씩 토해내기 시작했다. 공깃돌만한 돌에서 머리만한 크기의 돌까지 많은 돌이 쌓였다. 돌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옹골차게 자리 잡고 있었을까?

나비를 그려 상을 받은 아이는 매번 나비를 그리고 싶다. 두어 번 드라이버로 물건을 고쳤다 해서 모든 문제를 드라이버로 해결할 수는 없다. 드라이버의 성공에 매이게 되면 상황과 문제의 성격에 따라 다른 도구가 필요할 때 용납하려들지 않는다. 우리가 세운 규칙, 옳다고 여기는 것 중 많은 것들은 이렇듯 다리가 부실한 논리 위에 세워져있다.

나름의 문제해결 방식을 가지게 된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이 방식이 점점 굳어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다른 이들이 내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낀다. 더 나아가 밀리미터까지 표시된 빳빳한 자가 되어 이리저리 영역을 넓히며 다른 이들을 판단한다. 종종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의 중간지점, 타협과 협력이 필요할 때도 도무지 굽히지 않는다. 절구에 넣고 찧어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는 어리석음, 나만의 잣대로 타인을 용납할 수 없는 시간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삶의 고비마다 용납이라는 과제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정상과 상식의 범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오차 범위가 큰 사람을 포용하는 일은 늘 어려웠다. 그것은 나를 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도, 내가 옳다는 생각의 늪에 빠져있는 동안은 용납해야할 대상이 구정물이라도 되는 듯 몸서리치기도 했다. 나의 고집은 용납하기를 거절했고 마음과 몸이 병들어 갔다.

그러나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언제나 한 가지였다. 나도 용서받아야할 구정물이고 용서라는 선물을 무수히 거저 받으며 살아왔다는 그 사실 때문에 다른 이의 아래에 서는(understand) 일이 가능해졌다. 그 구정물을 눈 딱 감고 억지로라도 들이켰을 때, 놀라운 은총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지금 누리는 나의 평화는 그 은총의 실체이다.

마침내 굴뚝 옆 작은 빈터는 밭이 되었다. 골라낸 돌로 새 밭 둘레를 한 바퀴 둘렀다. 그 모습은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지금 땅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봄비가 내려 곱게 고른 밭이 촉촉이 물을 들이킨다. 작은 초록 싹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고 올라온다. 길고도 추운 겨울을 지나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모든 것은 햇빛과 비와 바람, 흙, 씨앗을 만드시고 넉넉히 주시는 분의 선물이다. 내가 한 일은 땅속 깊은 어둠에 매어있던 돌들을 햇살 아래 꺼내놓은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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