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에서 젊은 남자가 차를 기다리는 듯 서성이고 있었다. 내가 그를 지나칠 무렵 남자는 갑자기 몸을 휙 돌려 널찍한 등을 내게 보이며 돌아서더니 팔짱을 꼈다. 처음엔 무슨 행동인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로부터 서너 발자국 더 내디딜 때 그제야 중국 우한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당황스러웠다. 내 발이 디디고 있는 현실의 쓴맛을 꿀꺽 삼켰다. 그는 다만 두려울 뿐이야. 나를 위로했다.
도시가 흉흉하다. 중국과 한국을 이어 이곳 미국 땅에도 상륙한 바이러스로 아시안 이민자들은 더욱 주눅 든 듯하다. 재채기라도 나오면 눈치가 보인다. 라디오에서 어느 아시안 남자가 농담을 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자신이 힘 있는 사람이라 느껴진 건 처음이란다. 이 말에 인종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껄껄 웃었다. 어쩐지 내겐 뒷맛이 쓴 유머다.
이곳 워싱턴주에서도 확진자가 생겨날 무렵,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이 아시아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까? 젊은이들은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겼을까? 혹은 처음 발병한 지역의 사람들이 특별히 죄를 많이 지었을 거라 생각했을까? 두려움에 몰린 사람들은 교양으로 가려두었던 속마음을 낯 뜨겁게 드러낸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구하는 일보다 인기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말로 혼란이 가중된다. 실책을 인정하지 않으려 사방으로 화살 끝을 돌려대며 이 바이러스로 인한 사람들의 죽음을 ‘불필요한 죽음’이라고 불렀다. 단어의 뉘앙스로는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는 단순한 의미라 하건만, 내겐 그 말이 한 사람의 생애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는가? 마치 다섯 살 아이의 손에 들린 종이비행기같이 정치인의 말은 가볍고 행방이 없다.
세계보건기구, 질병통제국 같은, 사람을 살리자는 단체들이 본연의 일 외에 사실의 전달에 정치적 의견을 덧대는 모습은 역겹다. 질병에 대한 정보를 사실대로 알려주었어야 했다. 질병통제국은 감기도 못 막을 간단한 지침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인력과 돈이 없어서 일을 못 한다는 핑계는 궁색하다. 사실을 무시하면 그 사실이 사라질 거라 믿었을까?
비 오는 아침 동네 한 바퀴 걷다가 이웃 카라 엄마를 만났다. 멀찌감치 떨어져 섰다. 첫째 딸이 공립학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음악 교사인데 다음 학기부터 필수과목이 아니라서 당분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이 사태로 수술 날짜가 연기되어 고통 받고 있는 친척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욕 무역센터가 무너졌을 때는 모두 함께 힘을 합해 이겨냈는데 어쩐지 이번 사태엔 마음의 거리까지 멀어지는 것 같다며 걱정스런 얼굴을 하는 그녀와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이기, 거짓, 책임회피, 차별, 갖가지 감추었던 마음들이 드러나는 지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이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인 것이 마음 아프다.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서로 돕는 들꽃 같은 사람들이다. 이웃의 안부를 묻는 것, 마스크를 나누는 것, 의료진이나 가난한 이웃에게 공짜 음식을 제공하는 작은 일들이 요즘 이 땅에서 일어나는 가장 희망적인 일이다. 권력과 돈의 힘을 비웃는 들꽃의 찬란한 빛이다.
때는 2020년 오월. 장소는 미국. 이 모든 등장인물들 중에 나는 누구일까? 주요 등장인물들의 뒤에서 마음에 짐을 지고 꿈틀거리는 먼 배경이다. 우는 이들과 함께 울면 나도 벽지에 흩어진 잔잔한 들꽃처럼 필 수 있으려나? 때론 분노하고 때론 애통해한다. 긍휼을 기다리며 하늘을 향해 손을 든다.
일본에 나라가 망했을 때, 들에 흐드러지게 핀 풀꽃을 보고 서러워 지은 이름이 ‘망초’라 했다. 창밖에 작약과 양귀비가 불을 뿜어내듯 피어오르건만, 이런 오월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을 ‘애화’(哀花)라 불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