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성실

진군하는 생명

by 모든 햇살

뒷마당에서 제법 소복하게 올라온 상추를 솎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들렸다. ‘디딧디딧’ 다급하고 거친 소리였다. 뒤를 돌아보았다. 목까지 까맣게 장식한 검은눈 방울새였다. 갑자기 두 마리가 다가서더니 얼굴을 비스듬히 맞대었다. 어미 새가 아기를 먹이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놀랍게도 그들은 내 발치에서도 신경 쓰지 않고 분주히 움직였다. 오후가 되니 세 쌍의 방울새 가족으로 뒷마당이 시끌벅적해졌다.

5월 중순을 바라보는 시점인데 벌써 방울새들은 알을 낳고 품고 먹여 마당으로 데리고 내려온 것이다. 사람들이 집안에 갇혀 지내던 지난 두어 달 동안 새들의 하루하루는 꽉 차있었다. 짝을 찾아 새벽부터 울어대던 순간부터 새끼에게 생존학습을 시키는 지금까지. 마침내 땅으로 데리고 오기까지 얼마나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날랐던지 아기의 덩치가 거의 엄마만 하다. 바이러스 사태로 사람들의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때 뒷마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잠시 위로를 받는다.

처음 코비드 확진자가 생겨나고 번져가면서 위가 불편해지는 신호가 왔다. 매일 확진자의 숫자가 늘어가며 일을 할 수 없게 된 지 벌써 두 달,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모를 죄책감이 있었다. 왜 우리는 면역력이 낮은 환자들을 보호할 수 없었나? 하루를 지내고 몸을 뉠 때 이렇게 지내도 되나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시간은 많은데 해야 할 일이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질 않았다.

5월 초 공원이 다시 문을 열자 호수 공원으로 향했다. 호수 둘레로 산책길을 걸으며 눈부신 야생화들을 보았다. 봄 내내 사람의 발에 밟히지 않은 야생화들은 본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발산하며 주차장과 캠프장에 하얗게 지경을 넓혀놓았다. 아무도 예견할 수 없었던 이 봄, 거짓, 이기, 분열을 조장하는 거친 눈빛과 무책임한 말들이 넘쳐난다. 이런 오월, 꽃들의 성실 앞에 사람이 부끄럽다.

5월 13일, 아침에 고대하던 올해의 첫 양귀비가 피었다. 작은 꽃봉오리의 단단한 껍질을 벗어던지고 세상으로 나왔다. 몇 해 전 처음 세 뿌리를 구입했다. 작년엔 20여 송이로 꽃의 수가 늘었다. 올해는 적어도 70송이 이상의 꽃을 볼 수 있으리라.

처음 양귀비의 극적인 개화에 놀라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폭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의 개화는 차라리 세상으로의 도전, 또는 진군(進軍)이라 불러야 하겠다. 꽃은 주어진 소명에 매진해왔다. 심은 자리에서 깊이 뿌리를 뻗으며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미풍에도 한들거리는 여리고 붉은 꽃잎으로 목이 타는 사람의 오월을 어루만진다.

인간의 첨단 무기와 돈, 지식, 넘쳐나는 정보도 마른 곤충의 날개같이 부서져 내리는 낯선 오월, 이렇게도 우직한 그들의 성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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