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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 햇살 Aug 17. 2023

따뜻한 냉면

   웨이터가 냉면 두 그릇을 내려놓았다. 에바와 나. 먼 데서 온 파란 눈과 갈색 눈이 마주 앉았다. 나는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넜고 그녀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이곳 시애틀에 왔다.  냉면을 앞에 두고 중년의 나와 20대 에바가 다시 여고생이 된 듯 흥겹다.   

   에바와 나는 에드먼드 칼리지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다. 십 년 간의 한글학교 교사 일을 마치고 쉬고 있던 어느 날, 캠퍼스에 한국어를 배우기 원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좋은 일 좀 하라고 남편이 등을 떠밀었다. 학생들을 모아 동아리를 만들어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다. 국적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유난히 눈이 초롱초롱한 에바가 자기를 소개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그녀의 본명은 너무 길어서 누구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사실 ‘에바’는 부르기 쉽게 급조된 이름이었다.

   에바의 어머니는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들에게서 한국 음식을 배우셨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종종 만들어 주신 한국 음식 중 그녀가 반해버린 것은 냉면이었다.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찻잔 속에서 꽃잎을 여는 꽃차처럼 두 눈에 그리움이 가득 피어났다. 유학 생활을 지속할수록 불쑥불쑥 뇌가 기억해 내는 냉면의 맛은 향수병의 징조였다. ‘떠남’이라는 항원의 침투로 고통 받는 몸을 국수 가락으로나마 위로하려 했다.

   한글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여러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도 즐거웠지만, 사실 내가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 것은 떠나온 내 고국의 문화였다. 중국인 학생은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의 명대사를 한글로 써 달라고 하고, 인도네시아 학생은 한국에서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형수가 한국인인 미국인 학생은 어린 조카와 한국어로 말하기 위해 열심을 냈다. 베트남에서 온 학생은 전화의 벨 소리까지 한국노래를 담아놓았고, 종종 나에게 한국의 독립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그들은 내가 떠나온 고국의 문화를 실시간으로 전달해주었다.

   여름이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다. 한글 수업을 시작하기 전, 잘 지냈느냐는 나의 질문에 에바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녀의 커다란 눈에 반짝이던 생기마저 사라진 듯 했다. 대학원 진학을 꿈꾸고 있던 그녀에게서 들은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미국 친구들에게서 자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놀리는 느낌을 받았던 날, 마음이 울적해진 나머지 혼자 냉면을 먹으러 갔다고 한다. 그 후 냉면이 생각날 때마다 같은 식당에 두어 번 더 갔었다. 어느 날 웨이트리스가 “학생은 왜 매일  혼자 와요?” 라고 물었다. 오지랖 넓은 그녀의 질문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물어본 사람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녀의 눈물 바람은 그칠 줄 몰랐다. 이국땅에서 혼자 버텨온 유학생활. 이방의 쓸쓸한 공기. 자꾸만 집으로 달음질치는 마음. 꼭 잠가 두었던 마음의 수문이 한꺼번에 열린 것이다.    

   에바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할 일이 생겼다.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챙겨 들었다. “에바, 갑자기 냉면 먹고 싶은데. 그 식당 어디야? 같이 가자.” 그녀의 두 눈이 물에 젖은 조약돌처럼 반짝거렸다. 한국 식당 앞에 나란히 차를 댔다. 동갑내기 친구인 양 어깨동무를 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냉면 두 그릇이요!” 내 말에 에바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가득하다.

   드디어 냉면이 나왔다. 에바와 나는 경쟁이라도 하듯, 웨이터가 냉면 두 그릇을 내려놓기 무섭게 국수 가락을 밀어 넣었다. 유난히 감칠맛이 도는 냉면. 뱃속까지 시원했다. 냉면 가락이 조화를 부리기 시작했나 보다. 그녀다운 발랄한 표정이 파릇파릇 되살아났다. 함께 먹는 냉면으로 위로가 된다면, 같이 오길 참 잘했다. 후루룩후루룩 넘어가는 국수 가락 따라 서러움도 삼켜내고 이국의 썰렁함을 잘 견뎌주길. 더위를 내쫓는 살얼음 띄운 국수가 둘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다.

   냉면의 추억도 아련해질 무렵, 에바는 학부를 마치고 멀리 벨링햄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소도시의 삶이 무료하다고 했다. 계절이 지나고 어느덧 성탄 이브였다.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몇 십 년 만에 기록을 깬 폭설로 도로가 엉망인데도 초대받은 사람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딩동! 마지막 벨이 울리고 문을 열었을 때 코끝이 빨간 에바가 서 있었다. 눈 때문에 오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길이 미끄러워 시원하게 달리지 못하고 운전하는 내내 벌을 선 모양이었다. 반가운 얼굴을 와락 안아주었다. 에바는 한국어로 캐럴을 불러 모두의 갈채를 받았다.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지금 또 다른 이방인들을 만난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알고 보면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어릴 적 책 속의 세상은 너무 멀어서 아득했다. 갈 수 없어서 신비했다. 지루한 한낮에 세계 여행 책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금세 땅거미 지는 출출한 저녁이 오곤 했다. 먼 곳의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것에 나는 흥미를 느꼈다. 늘 멀리 가고 싶었다. 세계가 한 마을이 되어버린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다채롭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세계 곳곳의 문화를 모두 볼 수 있다.

   나는 한글을 매개로 그들과 만났다. 처음 이 땅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지금은 내가 먼데서 온 그들을 맞아 주어야할 때다. 누구나 한 때는 이방인이 아니었던가? 그들로 인해 내 삶의 경계는 넓어지고 있다. 미국의 서쪽 끝, 조용한 마을에 내가 있다. 그러나 세계는 내게 가깝다. 그들이 내게 다가와 낮은 울타리 너머로 담소를 나누는 이웃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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