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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 햇살 Aug 17. 2023

딴길

딸을 보내며

   비행기가 몇 시간 째 날고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도 멀리 떠나고 싶었나 보다. 미국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 집에서 제일 먼 곳으로. 조금씩 보낼 준비를 하긴 했었다. 가족 여행 가자고 하면, “우리끼리?”하며 김빠진 표정 지을 때, 옷을 사러 갈 때 “친구랑 갈래요.” 라고 말할 때, 운전면허 시험을 보던 그 날도.

   시험관과 딸을 태운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유리문 밖을 내다보며 기다리는데, 앳된 얼굴의 학생 하나가 헤실헤실 웃으며 문 쪽으로 걸어온다. 붙었나 보다. 내 옆에 서 있던 금발의 여인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우리 둘째 아들이에요. 오늘 저한테서 또 한 걸음 멀어졌네요.” 기쁨과 서운함이 반반씩 섞인 그녀의 미소가 애매했다. 나는 그녀와 오랜 친구나 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격려했다.  

  나란히 앉아 있으나 아이의 눈은 내게서 멀리, 비행기 창밖으로 내달린다. 펼쳐진 세상을 향한 설렘을 감출 수 없다. 낯익은 얼굴이다. 

   첫 직장을 향해 집을 떠나던 날, 엄마는 버스 터미널까지 배웅 나오셨다. 자동차 기름 냄새, 오징어 냄새, 담배 냄새로 절은 우중충한 터미널에서 버스에 짐을 실었다. 주말에 올게요. 하고 활짝 웃었지만, 엄마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시고 조용히 중얼거리셨다. “이제 가면 아주 가는 거지 뭐!” 마음의 준비를 해 두려는 노력이셨나 보다. 몸을 실었던 직행버스 안에선 방정맞은 트로트가 멀미가 나도록 흘렀다. 엄마를 떠난다는 서운한 마음보단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레었다. 창밖 검은 도화지 위로 다가올 미래를 연신 그렸다가 지웠다. 아주 오래 전의 나였다.   

   게이트가 하나 밖에 없는 대학 마을에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차를 빌려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붉은 저녁노을이 우리를 맞았다.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노랫말을 중얼대다가 딸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이문세의 노래를 빅뱅이 리메이크한 건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차를 타고 가다가 노을을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딸들과 나는 자동으로 합창했다. 그런데 지금 이 낯선 도시에서 낯익은 것은 저 노을뿐. 딸의 눈은 낯선 것들을 담느라 분주하다.

   딸을 기숙사로 들여보내고 지인에게 소개받은 집으로 향했다. 집의 분위기는 주인의 목소리처럼 활기찼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녀는 은퇴 후 이 넓은 집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고 있다. 걸음마다 삐걱거리는 계단은 적지 않은 나이를 말해주었다. 이 층 복도 벽 책꽂이에 고전들이 꽂혀있었다. 키다리 아저씨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그 주인공이 나였으면 하고 바랐던 과거로 잠깐 돌아갔다. 이제 주인공은 딸이다. 낡은 방명록 안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글로 가득했다. 나도 감사의 말을 몇 자 적어 넣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이 방문을 두드렸다. 여행을 떠난다며, 잘 머물다 가라고 인사를 했다. 문단속을 어떻게 하고 떠나야하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잠글 필요도 없이 그냥 닫고 가라고 했다. 이런 동네에 아이를 놓고 간다는 것이 감사했다. 왁자지껄하던 아침식사가 끝났는지 갑자기 온 집안이 고요해졌다. 

  아래층 거실로 내려갔다. 학사모를 쓴 젊은이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집을 거쳐 간 이들인가 보다. 햇살 머금은 젊은 미소와 어깨동무가 잘 어울렸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어깨동무가 자연스러운 시절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유리 장식장 안에는 기념품이 가지런하다. 내 나이와 비슷한 머그잔과 세월이 무색하게 맑은 소리를 내는 작은 종, 탁상시계와 열쇠고리. 그 물건들을 따라 마음은 50여 년 전부터 가까운 시간까지 손쉬운 시간 여행을 했다. 아마도 이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의 소유였을 것이다. 기념품은 젊음의 기억을 숫자로 제 몸에 새겨 놓았음에도, 주인들을 보내고 여기 이 장식장 안에 남았다. 

   엄마로서의 나도 주인을 떠나보낸 그들을 닮는 것이 살아가는 이치일 것이다. 이제 나는 테이블 위에 햇살에 말린 깨끗한 테이블보를 펴고 그 위에 화안한 꽃을 올려놓아야 한다. 아이가 언제든 위로와 쉼이 필요할 때 두 팔로 안아 환영해 주는, 아이의 고향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은 고즈넉할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늘 '딴길'로 가고 싶었다. 소풍을 갈 때 반 친구들이 줄을 서서 이동할 때도 늘 다른 길이 궁금했다. 엄마와 시장에 갈 때는 얼른 다른 골목 구경을 하고 서둘러 엄마 곁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국땅에 와 있는 건 아닌지. 

   나를 닮은 딸은 장 보러 갈 때 곧잘 사라지곤 했다. 집에 가야 할 때가 되면 한참을 기다려야 아이가 나타났다. 가르치지 않아도 나와 꼭 닮은 행동을 하는 딸에게 흠칫 놀랐다. 딸은 늘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책상 밑이나 식탁 아래 이불을 씌우거나 상자를 사용했다. 딸을 보며 어린 시절 나만의 공간, 그 장롱 속의 아늑함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딸은 이제 그렇게 고대하던 딴길로 들어섰다. 학생증을 받아들고 활짝 웃는 얼굴이 꽃잎이 듬성듬성 뿌려진 윗옷이 잘 어울린다. 문득 엄마에게 전화 할 때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생각난다. “전화 좀 자주 해라!” 하지 않으시고 “목소리 들려줘서 고마워!” 하시는 엄마. 그 애잔한 마음을 헤아려 본다. 딸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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