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며 영어 공부를 하고 보니...
집에서 차를 타고 5분만 가면 한인 마트가 있습니다. 그 마트의 이름은 H-Mart입니다. 몇 년 전까지 이 마트의 이름은 한아름이었습니다. 한아름이란 단어는 '안다'라는 동사의 어간 '안'에 명사형 어미 '-음'이 붙어 아름이 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팔을 뻗어 최대한 벌려 만든 원의 크기를 한아름이라고 부릅니다. 순수한 한국말입니다.
한아름은 한인들의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트였습니다. 야채가 싱싱하고 좋은 과일이 많아 외국인들도 많이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일본, 필리핀 등 동양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백인들도 이 마트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트 이름을 한의 H와 마트를 결합해 H-Mart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17년 전 제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 동네 4개의 상점을 가진 소규모 마트였습니다. 어느 날부터 인근 주로 지점을 확장해 가더니 이제는 미국 전역에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든 대형 기업형 마트로 성장했습니다. 그 성장의 배후에는 미셸 자우너의 <Crying in H-Mart> 책도 한 몫을 한 듯합니다. H-Mart 대표가 미셸 자우너에게 감사를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이 책은 미셀 자우너가 쓴 자서전적 수필입니다. 그녀는 인디 팝 밴드 'Japanese Breakfast의 리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입니다. 유대계 미국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셸이 엄마의 암 선고와 투병 그리고 죽음을 경험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적은 책입니다.
미국에서 별다른 직업이 없었던 아빠는 한국에서 일정 교육을 받으면 중고차 판매업을 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해 용산 미군 기지에 옵니다. 그때 한국에 처음 묵은 호텔에서 일하는 엄마를 보고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부부는 한국에서 미셸을 낳고 9개월이 지나 미국으로 이주해 오리곤 주에서 살아갑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미국 시골에서 성장한 미셸은 친구들의 엄마와 다르게 자신을 양육하는 엄마를 보며 혼란을 겪습니다. 딸이 다치면 괜찮냐고 호들갑을 떠는 미국 엄마와는 달리 나무에서 미끄러져 배에 피가 나도 엄마는 늘 "괜찮아, 안 죽어." 하며 병원에도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겪으며 심한 반항을 하며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부모님을 떠나기 위해 대학을 일부러 멀리 갑니다. 대학에서는 문예 창작을 전공하며 음악을 하기 위해 고전분투하며 엄마와 거리를 두고 살아갑니다. 25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급작스럽게 췌장암에 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됩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그리움과 죄책감에 힘들어하던 미셸은 H-Mart에 가서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만들어 먹던 한국 음식을 만들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에 나오는 표현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가수라서 음악 전공이 아닌가 했지만 책을 읽으며 미셸이 문예 창작을 전공한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 한국 가족 이야기, 엄마를 잃은 슬픔, 가수가 되는 험난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엄마를 보내고 음악인의 길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던 즈음에 엄마의 죽음을 소재로 한 노래 음반이 엄청난 인기를 얻습니다. 그녀는 그 노래 덕분에 유명한 가수가 되고 이 책을 쓰게 되면서 인기 작가 타이틀도 얻게 됩니다.
2021년 뉴욕 타임스, 타임, 아마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이었습니다. 특히 뉴욕 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는 60주 동안이나 머물렀고, 나중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더욱 유명세를 치르게 됩니다.
순전히 영어 공부를 위해서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 매일 영어 원서를 읽고 인증하는 밴드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4기부터 참여했는데 지금 11기가 진행 중입니다. 늘 건성으로 인증을 하다 보니 남들은 원서를 읽는 실력이 느는 게 보이는데 저는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았습니다.
여러 고민을 하다가 영어 듣기 향상을 위해 지지난 기수부터 오디오 북과 전자책으로 영어 독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배경을 가진 책이 그래도 좀 수월하게 들리고 이해가 있을 것 같아 여러 책을 고민하다가 선택한 책입니다.
1장에 한국 단어들을 고유 명사로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엄마, 이모, 만두, 고추장, 마늘 등등. 미국 단어인 Mom, Aunt, Dumplings, Hot Sauce, Garlic으로 표현하지 않아 친숙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저자는 이 단어를 엄마에게 배웠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한 것 같았습니다.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이런 단어들이 반갑고 친근해 참 좋았습니다.
내게 익숙한 음식인 떡국, 잣죽, 김치, 설렁탕과 같은 한국 음식을 미셸의 설명을 통해 음식을 소개받으면 미셸의 관점으로 음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고 맛있는 한국 음식의 느낌이 살아났습니다.
어릴 적 미셸이 한국 외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이모는 늘 중국집에서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시켜주던 장면을 써 놓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친숙한 그 광경을 미셸은 마치 우주에서 처음 경험하는 놀랍고 신기한 장면으로 묘사한 걸 보면서 당장이라도 짜장면을 시켜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은색 철가방에서 랩에 싼 짜장면이 나오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 너무도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먼저 구글 오디오 북으로 듣는 이유는 접근의 용이성 때문입니다. 구글 플레이 앱만 누르면 늘 듣던 자리 그래도 뜹니다. 두 번 클릭하면 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책을 원서 그대로 오디오 북만으로 읽는다는 것, 쉽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사건이 전개될 때는 한국 고유 명사와 동사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내적 갈등, 사건이 끝난 뒤 적은 감상은 이해가 불가능했습니다.
한 챕터의 길이도 보통 20분이 넘는 것이 대부분이라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초반에는 사건들이 많아 그래도 참고 들을 만한데 엄마가 암에 걸리고 난 후 자신의 내면 갈등을 표현하는 중반부부터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결국 11장에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쉬운 책으로 밴드 인증을 하다가 새로운 기수가 시작되면서 독한 마음을 먹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두 번째에도 독한 마음과 달리 11장쯤 오다 보니 자꾸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인증을 보름 넘게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음을 다 잡고 겨우 다 듣고 완청을 했습니다.
듣기 실력이 생각보다 향상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국 소액 재판 프로그램을 보는데 별 어려움을 안 느낍니다. 전에는 서로 소송을 하는 상황이 이해가 잘 안되어 답답했는데 지금은 소송하는 세부 내용이 들려 훨씬 재미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웅얼거림으로 들리던 골프 중계나 테니스 중계들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를 소개하는 내용, 플레이를 평가하는 소리들도 조금씩 들립니다.
오디오 북으로 전환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이 책으로 원서 듣기와 읽기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동남아 7개국어로 번역되고 난 후에 영어로 번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 전공인 상담분야라 단어를 찾아가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 제 이야기가 보여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 책 오디오 북은 유튜버에 전체가 있어서 같이 들으며 읽고 있습니다. 영국 발음이라 T가 불쑥불쑥 발음되어 낯설기는 하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들려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듣고 있습니다.
저의 영어와 친해지기 위한 노력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