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명작가 Apr 02. 2024

사랑, 마음 뒤로 숨다

오픈 카톡 독서모임 


들어가면서 

동치미와 수다가 무르익는 순님이네 안방 (모빌 같은 감정 공동체, 정신역동) 

누가 과꽃의 미소를 아시나요? (나로 살고 싶다. 개성화)

아버지가 있는 겨울 풍경 (손댈 수 없는 부분 상처와 시간)

한여름 밤의 꿈과 자주감자 (처음처럼 상처 입지 않는 마음 자아실현 경향성)

왜 사냐건 웃지요 (삶의 의미로 찾는 행복, 의미치료)

산딸기가 들려주는 애절하고 소중한 이야기 (나도 인정받고 싶어요 인정 욕구와 사랑)

양파와 행복으로 가는 눈물 (나를 지키고 싶다. 저항)

미안하다. 꽃들아 (자극과 감정, 기질과 성격 출생 순서)

잡초라 불러 미안해 (수치심과 취약성)

나가면서 








들어가면서 



한 주간 내내 글을 쓴다. 마음을 다루는 책을 읽고 소감을 쓰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내가 가장 앞장을 서야 한다. 사람들에게 오픈 카톡 방으로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중이다. 상담을 공부하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열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직도 낯선 사람들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내가 나 자신의 내면에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풀어 놓아야 한다. 


2주 차에 들어서자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아예 진도를 맞추지 않고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가고 싶다고 양해를 구한다. 아픈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만나지 않아도 함께 책을 읽어나가며 마음을 나누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다. 



동치미와 수다가 무르익는 순님이네 안방 (모빌 같은 감정 공동체, 정신역동) 


한국에서 상담 공부에 입문하던 때 집단 상담을 경험했다. 일주일간 아침 9-6까지 가족에 관한 주제로 집단 상담에 참여를 했다. 너무 강렬했다. 이론을 배우고 서로 나누면서 우리는 일주일 동안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경험했다. 인도자가 집단 상담 전문가라 집단 상담의 최대치를 경험했다.


 이후 내 진로는 정해졌다. 집단 상담 인도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독서 모임이라는 형태로 상담을 내 스스로 풀어냈다. 수치를 나눌수록 자유가 온다는 걸 경험했다. 이후 내 곁에 마음 아픈 사람들이 머물기 시작했다. 나의 이야기만으로도 그들 스스로 나를 친구로 여겨 주었다.



누가 과꽃의 미소를 아시나요? (나로 살고 싶다. 개성화)


 개성화란 한 사람이 자신의 전인적인 자아상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자기의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는 많은 바람과 욕망, 아픔과 슬픔과 상처를 전부 의식으로 끌어올려 의식과 함께 어울릴 때까지 평생에 걸쳐 계속되는 내면의 탐색과 사고, 느낌의 수용과정이다.


책을 읽고 눈을 감는데 파란 하늘 때문인지 그 아래 서 있던 소나무 때문이었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 눈물이 났다. 책 속의 어떤 구절이 나를 자극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지나친 분풀이 때문이었나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내가 지나갔나 보다. 그토록 오랜 세월 눈물 흘리며 나의 개성화를 키워왔건만 아직도 건드려지는 불편한 감정이 오늘도 나를 훑고 지나간다. 이내 늘 그랬듯 슬픔을 안고 잠시 잠을 잤다.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친구야, 홍시는 보내지 마라 (옮겨 다니는 감정, 감정전이)


주변에 큰소리를 내며 나에게 억지로 뭔가를 강요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독특한 그 사람의 기질 때문이다. 나랑 자주 부딪치며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어제도 뭔가가 불편한 듯 나에게 강압적인 말을 쏟아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앉아 메모를 했다. 그다지 내가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이내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강요받던 과거 그때 나는 지독하게 슬펐다. 다그침을 당할 때 내가 한 모든 수고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엄마에 의해 팽개쳐질  때 지독한 슬픔을 겪었다. 간혹 나의 그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지금 여기 (HERE & NOW) 내 곁에 있다. 하지만 옛날처럼 지독한 슬픔에 빠지지 않는다. 몇 가지 메모로 정리하면 이내 평정을 되찾는 어른이 되었다. 그분은 엄마가 아니다. 쉽게 빠져나온다. 요즘은




아버지가 있는 겨울 풍경 (손댈 수 없는 부분 상처와 시간)


상담을 공부하고 내 문제를 해결하는 툴을 갖게 되자 마음이 한없이 기뻤다.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풀어냈다. 신기하게도 관계가 풀리고 문제가 해결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했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단념하는 지혜도 생겼다. 그 때문인지 남의 문제도 해결해 주려는 성향이 많다. 그래서 빨리 접근하고 빨리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손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내용이다. 


사람의 내면세계에 손을 대지 않고 내버려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 내면의 그림에 손대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조화로운 삶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손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모르니 모든 걸 손을 대려고 했었다.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새롭게 안다. 손댈 수 없는 부분은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의 선택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걸,


늘 상처, 아픔, 더딤, 미숙, 고통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처럼 달려들었다. 맏이인 내게 언제나 해결자 노릇, 역할이 부여되었다. 누구에게나 맏이가 되려 했었다. 이제는 경계선을 넘어 지나치게 도우려는 내 마음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 손댈 수 없는 부분은 삶의 여백이다.





한여름 밤의 꿈과 자주감자 (처음처럼 상처 입지 않는 마음 자아실현 경향성)


칼 로저스 - 내담자 중심의 상담요법 (인간 중심의 상담요법) 인간마다 현실을 각기 달리 자각하고 주관적인 경험이 행동을 지배한다. 사람은 외부 현실보다는 오히려 내부적인 경험에 의해 이끌린다. 인간의 행동을 보면 그의 내면세계를 알 수 있으며 따라서 내면세계를 바꾸면 행동을 바꿀 수 있다.


로저스는 인간에게 거대한 자원이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삶을 성숙으로 이끄는 미래를 향한 추진력이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항상 노력하고 도전하고 어려움을 극복함으로 진정한 개인이 되어간다.


저자는 이것을 ‘신의 형상’이라고 불렀다. 예전에 나는 이것을 논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표현했었다. 하나님 형상 회복 모임을 만들어 집단 상담을 오랫동안 진행했었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상담을 공부하고 진행한다. 우리 모두 우리 안에 만들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찾기 위해 인생을 살고 각자 다른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왜 사냐건 웃지요 (삶의 의미로 찾는 행복, 의미치료)


인간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추구할 때 살아남을 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 고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의미 치료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생의 의미를 이끌어 내어 자기 삶의 이유와 존재의 차치를 발견하도록 돕는 상담 방법이다. 자신이 이루어야 하는 존재의 가치가 미래에 있고, 또 의미가 있을 때 인간은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신 분석이 인간의 과거에 집중해서 기억하고 과거를 각성하고 재해석을 하는 작업인 반면 빅터 프랭클의 의미 치료는 미래에 집중해서 자신의 삶에 주어진 소명과 과업을 찾아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상담법이다. 어는 한 쪽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두 작업 모두 한 개인에게 의미 있는 작업이다. 과거를 잘 살피고 장차 우리를 부르신 소망의 부르심을 찾고 오늘 내게 주어진 지금 여기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딸기가 들려주는 애절하고 수중 한 이야기 (나도 인정받고 싶어요 인정 욕구와 사랑)


상담자를 찾는 내담자에게는 각자의 산딸기가 있다. 각자의 마음 곳 깊이 잠겨 있는 단어, 꼭꼭 숨겨둔 단어, 억압했던 단어, 입에 올리기 힘들었던 단어, 자신조차도 속여 버린 단어다. 그래서 내담자의 아픔과 슬픔이 모두 담겨 있는 단어를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하루 종일 나의 산딸기는 무엇이었을까 하루 종일 주어진 일을 처리하며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인정, 고개가 숙여지지만 여운이 남는다. 결핍, 너무 많아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어둠이 찾아오자 불안 단어가 떠올랐다. 그랬구나 나의 산딸기는 불안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자주 싸웠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나는 누구를 따라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며 내가 말 잘 들을 테니 이혼하지 말라는 편지를 쓴 기억이 났다. 필통 속 그 편지를 친구가 빼내 기어코 울며 말리는데 펴서 읽고 말았다. 그 친구가 전학 갈 때까지 눈을 맞추지 않고 지냈다. 내 안의 산딸기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기어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경청해냈구나… 대견타.





양파와 행복으로 가는 눈물 (나를 지키고 싶다. 저항)


주일 날 부부 갈등을 내내 말하던 지인은 기쁜 마음으로 상담을 받는 것에 동의했다. 부부 중 더 성숙하고 변화의 가능성이 큰 사람이 상담을 먼저 하면 된다는 말에 공감을 하면서 선뜻 상담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어젯밤 전화가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상담가와 만났는데 이상하게 상담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나는 마음이 찾아오고, 상담사를 만난 뒤 굉장히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게 저항이다. 상담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저항에 부딪친다. 내 스스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는 증상이라고 말해 주었다. 두려움이 와도 잘 견디며 가보라고 했다. 간호사라서 신체적 수술에 비유를 했다. 몸에 암세포는 결국 마취와 수술의 과정을 거쳐 떼내야 다시 새 생명을 얻는다. 상담은 정신적인 수술작업과 같다.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민감해서 첫 시간 이후에 바로 나타나는 듯하다며 이후 과정에 대해 글을 써보라고 권했다. 글을 쓰면서 자신에 대해 객관화를 시도해 보라고 권면해 주었다.


저자의 양파 비유에 공감이 간다. 눈물이 나지만 천천히 한 겹씩 벗겨내고 더 건강해진 밝은 미소를 지을 그녀를 기대한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나는 평안하고 싶은데 불안의 시작 풀리지 않는 감정은 억압되고 억압한 것들은 야속하게도 반드시 돌아와 힘들게 한다.


분노하는 사람을 힘들어한다. 화를 터뜨리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본다. 분노의 파편조차 맞기 싫어 일찌감치 도망친다. 어린 시절 모든 것에 화가 많은 엄마 때문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가끔 딸이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엄마라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힘들다. 그렇게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이 딸에게서 나온다. 돌아보면 내가 뿌린 씨앗이다. 나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화내면 뒤돌아 후회하는 딸이 다가올 때까지 잠시 내 마음을 다독이며 기다린다. 그러고 있으면 딸이 찾아와 화낸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면 조용히 듣는다. 그리고 내 감정도 힘들었다고 말한다. 가끔씩 내 감정이 지나치게 불편하면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편지를 쓴다. 먼저 어린 시절 까닭 모를 엄마의 감정 표출에 힘들었을 딸에게 사과와 함께 위로를 전한다. 뒤 언어 아까 딸이 한 행동에 대한 내 마음을 솔직하게 쓴다. 엄마한테 서운한 감정을 분노로 푸는 건 잘못된 행동이고 사과를 해야 할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편지를 쓴다. 딸이 조용한 어조가 잘못했어요 한다.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 더 큰 화를 내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기에, 어떤 감정이든 분노의 그릇에 담으면 그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는 걸 조용히 알려준다. 내 분노를 지혜롭게 다스리며. 분노가 다시 거기서 나와서 나와 내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도록




미안하다. 꽃들아 (자극과 감정, 기질과 성격 출생 순서)


나는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들을 기대한 엄마는 딸이 태어났음에도 나에게 많은 기대와 투자를 하셨다. 집에서는 언제나 군림하는 큰 딸이었다. 지금도 내가 결정한 일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그래서 종종 충돌이 있기도 하다. 잘 굽히지 않는다. 특별히 5남매 맏이 권사님과 충돌이 잦다. 서로 고칠 수 없으니 이대로 부딪치며 살자고 내가 제안했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과 성격이 바뀌지 않으니 그냥 바뀔 생각하지 말고 서로 인정하자고 했다. 나이가 20살이나 많은 분인데 내가 져 드리질 못한다. 그렇지만 삶 속에 신뢰와 우정이 싹튼다. 서로 기질을 인정하면서






잡초라 불러 미안해 (수치심과 취약성)


잡초는 별게 아니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 피면 잡초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다른 용어다. 수치심은 존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죄책감은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할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수치심이 가득한 사람들은 죄책감은 파트너처럼 따라다닌다. 존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니 하는 행동은 모든 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필요 이상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모든 일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한 일도 나로 인해 생긴 일도 아닌데 적극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사용했었다. 그러다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미안하다는 뜻의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을 낸다. 사과가 필요한 자리는 잘못했다는 행동에 관한 사과는 한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감정에 대한 사과는 이제는 하지 않는다. 나는 이대로 충분하다.







얘들아, 칡 캐러 가자 (두려움과 게으름, 핵심 믿음이 빚어낸 자동 사고)


두려움과 게으름 키다리 아저씨 집의 겨울이 키다리 아저씨의 얼어붙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니 신선하다. 스스로 겨울 속에 갇혀버린 사람들 매일이 겨울인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일도 분노와 원한으로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담을 공부하는 과정은 나의 핵심 사고와 자동화된 사고 수치심을 벗는 작업이었다. 내가 원했던 성경적인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웠고 수백 번 수천 번 사건마다 나를 분석하며 나의 가치를 십자가 앞에 끊임없이 세웠다. 어린 시절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었다. 방법을 알려달라고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고 하신 그것이 무엇인지 내게 알려달라고 따지듯 기도했다. 하나님은 내게 하나하나 방법을 알려주셨다.


이제는 두려움과 게으름을 뚫고 그분이 주신 사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매일 조금씩




나가면서 


책을 읽으며 상담 공부를 하고 이 분야에서 일을 하며 어떤 씨름을 했는지 한편의 영화처럼 지나간다. 부모 양육에 관한 강의를 들으며 나의 내면을 보기 시작했다. 더 깊이 나에 관해 알고 싶어 상담 연수 과정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경험한 집단 상담은 가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후 더 깊은 상담 공부를 위해 남편과 유학을 왔다. 남편과 함께 공부를 하며 서로 병적인 끌림을 알아채면서 우리가 결혼한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아픈 병명이 같아서 결혼한 거라고 웃곤 했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나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우연하게 주어진 독서모임 강사라는 일이 내가 꿈꾸던 형태의 집단 상담의 틀로 만들어 사역을 이어갈 수 있어 행복하다.



상담사는 완성된 자리가 아니라 매일 자신 안의 핵심 사고와 감정 그리고 두려움과 불편의 근원을 찾아내는 자리임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된다. 내 감정은 내 것이다. 내가 끌어안고 싸매주고 보듬아 주어야 하는 일이다.



 지금도 곁에 감정이 내 것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자신의 감정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자리로 부름받아 감사하다. 상담 공부조차도 사실 쉬운 작업이 아니다. 꽁꽁 숨겨둔 보고 싶지 않은 나를 만나야 하는 힘겨운 작업이다. 하지만 좋은 책을 만나 위로와 따스함으로 다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저자와 함께 다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작가의 이전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