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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명작가 Apr 21. 2024

세상에서 길을 잃어보기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찾아 나선 길 


 All The Beauty in the World를 읽고 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영문 제목이다. 전자책과 오디오 북을 구입해서 귀로 듣고 눈으로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 신중하게 선택하느라 분명 저자인 패트릭 브링글리의 인터뷰를 찾아 들었다. 또박또박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능했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말과 글이 이렇게 다를 수가 완전 철학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낯선 단어들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 


이해는 제대로 안 되지만 슬픔을 처리하는 그들만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영어책만으로도 밀려오는 감동이 만만치 않아 이참에 더 깊은 감동을 맛보고 싶은 생각에 한글 전자책도 샀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한글 책을 읽고 나서야 드문드문 이해하던 내용들이 퍼즐이 맞아들어 갔다. 책이 이해되고 공감되니 그가 일하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 더 커진다. 



한 달 전 <교회 옆 미술관>을 읽을 때 책에 나온 첫 작품 렘브란트의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아브라함> 작품이 메트로폴리탄에 있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했었다. 책에 나온 몇몇 작품들을 그곳에 가서 직접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책 저책 감동이 더해져 결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멤버십을 만들었다. 한 번 관람이 $30이다. 적지 않다. 그런데 연간 멤버십은 $110이다. 거기다 1인 동반이 가능하다. 아직 멤버십 카드는 오지 않았지만 회원 번호만 있으면 입장이 가능해 뒷날 다녀오기로 했다. 











 뭐든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는 삶의 태도 때문에 미술관에서도 최대의 수확을 위해 이런저런 검색을 했다. 메트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갖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려고 이런저런 검색을 하는데 이상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삶을 탐험하는 방법
1. 세상 속에서 길을 잃어보기 
2. 이미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3. 내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기
4.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세계와 나를 더 잘 이해하기
5. 내게 중요한 가치를 찾아내어,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 
그 과정을 반복하며 계속 변화하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관람하듯, 세상을 살아보기 

요부마 (브런치)




세상에서 길을 잃어보라니 낯선 말이다.  처음 듣는 말이다.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나에게 길을 잃어보라고 한다. 늘 정답을 찾으려 곤두서는 나에게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한다. 매일 치열하게 사는 나에게 미술관을 관람하듯 세상을 살아보라고 한다. 


메일 주먹을 쥐고 살아가던 손에 힘이 빠진다. 그 말이 내내 마음에 맴돈다. 혼자 맨해튼에 나갈 일이 좀처럼 없는데 걱정이 되지 않는다. 뉴욕 지하철도 난생 혼자 타야 하는데 걱정이 안 된다.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길을 충분히 잃어보자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 하지 말고 그냥 헤매자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조용히 그 장소에 존재로 머물러 보자
얻으려고 애쓰지 말자 




버스를 내려 지하철을 타러 갔다. 42가에서 82가까지 가면 된다. 맨해튼에 자주 가는 딸이 지하철 C를 타라고 했다. 애플 페이로 지하철을 바로 탈 수 있다고 했다. 핸드폰을 갖다 대니 문이 열린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지하철이 왔다. 바로 탔다. 42 가를 출발해 51가 53가 57가 잘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57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더니 갑자기 퀸즈 사인이 뜬다. 강을 건너는지 압력이 높아져 귀가 아프다. 지하철을 잘못 탔나 보다. 직감했다. 



내려서 다시 갈아타야 한다. 다시 맨해튼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려서 반대편에서 오는 전철을 탔다. 그리고 57가에서 내렸다. 다시 C를 탔다. 그런데 이번에도 스트리트 번호가 올라가지 않고 자꾸 내려간다. 옆 사람에게 물으니 다운타운으로 간다고 했다. 바로 내렸다. 지하철 안내하는 사람에게 매트로 폴리탄에 간다고 하니 한 정거장 더 가서 반대편으로 가라고 한다. 여기는 건너가는 길이 없다고 한다. 










길을 충분히 잃어본다. 이미 마음에 길을 잃어보기 위해 나선 길이라 당황스럽지 않다.  81스트리트 7가에서 내려 5가까지 걸어간다. 저만치 매트로 폴리탄 박물관이 보인다. 문 여는 시간 10시에 도착하려고 나선 길인데 길을 잃고 헤매느라 10시 4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벌써 사람들이 붐빈다. 입구에 들어서서 어제 멤버십 가입했다고 했더니 신분증 확인 후 임시 출입권을 준다. 



입구에서 박물관 지도를 받았지만 펴지 않았다. 다시 길을 잃기 위해 눈에 들어오는 입구로 갔다. 미로처럼 계속 이어지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악기들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가서 피아노를 보고 기타를 보고 가다가 옆을 보니 유럽 그림들 전시하는 문이 있다. 다시 그쪽으로 갔다. 





기대도 못한 그림 앞에 선다. <교회 옆 미술관>에서 세례 요한을 죽음으로 이끌던 살로메 그림이 보인다. 안드레아 솔라리오 <세례요한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살로메> 그림이다. 반가운 마음에 가져간 책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안드레아 솔라리오 <세례요한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살로메>



대 루카스 크라나흐 <살로메>




                                                                  


이어서 길을 가는데 책에는 부다 페스타에 있다던 다른 살로메 그림이 내 앞에 나타났다. 대 루카스 크라나흐 <살로메> 그림이다. 사실 <교회 옆 미술관>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책에서 이 그림을 그린 화가와 그림의 설명이 바뀌는 바람에 폐기될 위기에 처한 책을 스티커 작업을 해서 반값 판매한다는 광고가 페이스 북에 나왔다. 남편의 지인이다. 남편은 그 지인을 돕는 마음으로 30권을 주문했다. 그 덕분에 내게 닿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오류 정정을 위해 엽서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엽서로 만들어 책 속에 끼워둔 두 그림을 메트에서 만났다. 



대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다소 슬프고도 무서운 그림 앞에 선다. 칼을 든 남자에게 곧 죽게 될 소녀는 눈에 두려움보다는 단호함이 있다. 그림 설명을 읽어보니 전설에 의하면 칼을 든 남자는 소녀의 아버지였다.  로마시대 크리스천 신앙을 포기하라는 아버지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해 죽은 소녀를 기념하는 그림이었다. 그림이 너무도 선명하고 크다. 이번 매트 방문 중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작품이다. 소녀의 얼굴에 평안이 가득하다. 두려움이 없다. 
















아무런 계획 없이 다녀도 이런 기쁨을 누린다. 천천히 돌아돌아 다시 기쁜 그림을 만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흐의 작품이 눈앞에 드러난다. 역시 멋지다. 고흐의 초기 작품을 보며 그의 멋진 그림도 과정을 거쳐 아름다워졌음을 실감한다. 























왜 고흐 그림을 좋아하는지 나도 잘 모른다. 제일 먼저 미술에 눈을 떠갈 때 유독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이 좋았다. 가끔 모마 미술관에 가서 그 그림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가 있다. 그가 건네는 위로가 좋았나 보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마음이 닿았나 보다고 생각해 볼 뿐이다. 



나오는 길에 이집트 전시관과 한국 중국 전시관도 잠시 들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미술 작가 박수근 작품도 만난다. 






2층에서 내려다 본 박물관 입구 1층 풍경









예전 같으면 눈에 안 들어왔을 경비원들에게 눈이 간다. 책에서 표현된 것처럼 검은 양복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었다. 여자분들도 제법 눈에 들어온다. 두 분은 작품 앞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늘 열심히 산다. 주먹을 쥐고 길을 잃지 않으려 정신을 잃지 않으려 분주히 산다. 쉴 새 없이 입력하고 쉴 새 없이 생각했다. 이일 저 일 루틴에 따라 해 내느라 때론 버겁다. 때론 잘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작은 원망의 마음도 생기던 요즘이다. 


오늘 하루 일탈을 경험했다. 일부러 길을 잃어보려 나선 길에서 충분히 길을 잃어보았다. 그것도 몇 번을. 무슨 그림을 반드시 보리라는 마음 없이 발길 가는 대로 머무는 그림 앞에 머물렀다. 예상치 못한 그림을 만난 기쁨이 더 컸다. 


세상은 힘을 준다고 잘 살아지는 게 아니었다. 많이 입력한다고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힘을 빼고 헤매려고 작정하자 새로운 편안함이 내면에서 올라온다. 하루 낯선 곳으로 여행만 해도 이리 새힘이 난다. 며칠 연속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 여행을 한다면 나는 얼마나 더 편안해질까. 


삶이 힘에 부칠 땐 무심코 버스를 타고 매트에 다녀와야겠다. 목적 없이 그 아름다운 곳을 마구마구 돌아다니자. 1년 동안은 마음껏... 





가로수조차 예술 같은 메트 앞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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