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 그리고 용기

MBTI - N 편

by 다온



어릴 적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삶의 여유가 없었던 걸까. 현실적으로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는 말들을 주고받는 관계가 도움이 되는 인간관계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진지하기만 했던 나는 실리적인 생각을 하는 친구가 좋았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뜬구름 잡는 헛소릴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난 그런 장난을 주고받는 게 웃기지도 않고 마음에 들진 않았었다.


처음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뛰어든 어린 나는 나와 다른 캐릭터를 보고 신기해하곤 했다. 물론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는 것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여러 친구무리에 섞여있으면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캐릭터가 있기 마련이다.


원래 친구끼리의 농담은 서로를 깎아내리듯 비하하기도 하지만, 멋진 모습을 보일 때는 서로 띄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가감 없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 여러 캐릭터들을 보고 놀라는 것은 내가 군대에 갔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때까진 몰랐다. 세상에는 신기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아니라 내가 굉장히 닫혀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 나의 가까운 친구들 중 ‘침착맨’을 참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헛소리인 것을 그럴듯하게 재밌게 풀어내는 걸 참 좋아하던 놈들이었다. ‘N’ 성향을 가진 친구들은 좋게 말하면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안 좋게 말하면 헛소리를 많이 한다. 내 친구들은 서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릴 하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무분별한 장난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웃어넘기며 부서지지 않는 멘을 보여주는 친구들이었다.


보통 나같이 지극히 현실적인 MBTI ‘S’ 성향인 사람들은 매 순간 진지한 편이다. 서로 과한 농담을 주고받지 않았고 내 이야기에 대해 방어적인 태세가 강했다. 이따금씩 한심한 소리라 생각되는 말을 뱉어내는 친구에게 따끔한 잔소리를 날릴 뿐이었다.


이 두 성향의 성향은 서로를 노잼이다라니, 미친놈이라니 비꼬기도 한다. 이들은 서로 대화소재가 다르진 않지만 대화패턴이 다르다. 더 깊이 파고드는 대화를 하는 S와 달리 N은 돌고 돌아가는 대화패턴을 가진 것 같다.


내 짧은 생각이지만 이 성향의 차이는 경제적인 여유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이 경제적 여유라는 것은 절대적인 물질의 양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질적 풍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필요한 소비에 비해 물질적 여유가 얼마나 충분한가에 따라 그 차이가 갈리는 것 같다. 상대적인 물질적 여유가 부족할수록 세상에 대한 시야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여유가 많을수록 현실과 맞지 않는 필요 이상의 상상력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사는 게 더 지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팩트에만 기반해 판단한 대답보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센스 있는 리액션을 내뱉을 줄 안다는 것이 마냥 헛소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이 높아 여유 있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난 누군가 나에게 지적을 했을 때 쉽게 당황하곤 했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도마에 올랐을 때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기 마련이다. 나 스스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 현실적인 고민만을 가지고 유효한 조언을 주던 친구들은 오히려 거리가 더 멀어졌다. 내가 원하는 회사의 직장인이 되었고 물질적, 정신적 풍요와 함께 원하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인 걸까?


인간관계에 있어 ‘용기’는 ‘여유’에서 나온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나에게 던져진 작은 말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 말의 진위여부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그런 말들에 상처받기도 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항상 좋은 이야기만 나누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관계도 지속되다 보면 언젠가는 생각의 차이를 마주하고 갈등이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때 상대의 생각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아니 묵묵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가볍게 그러려니 생각하고 상처받지 않을 수는 없을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 조금 더 현실적인 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각을 펼치고 싶다. 가끔은 내게 내 소중한 사람이 태클을 걸어도 나 자신이 다치지 않다는 걸 알고 싶다. 언젠가 나에게 날카로운 말이 꽂혀와도 아무것도 아닌 듯 넓은 생각의 폭으로 덮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심했던 그 아이는 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