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했던 그 아이는 현명했다.

MBTI - I 편

by 다온

한 소심한 소년이 있었다. MBTI를 보자면 아마 ‘I’였을 것이다. 그 아이는 함께 어울리는 여러 친구들 무리에서 유일하게 ‘I’ 성향을 가진 내향적인 녀석이었다. 그 아이는 항상 밖에서 나가 놀고 있는 집돌이였다. 이 말인즉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함에도 친구들이 부르면 거절 한 번 없이 그냥 불려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짓궂은 친구들이 그 녀석을 가만두지 않고 불러댔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집에 틀여 박혀 연락두절되어 잠수를 타버리곤 했고,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불러내기 쉽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마 원치 않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온갖 에너지가 분출되는 대화에 말려들었다간 그 아이는 기가 빨려 소멸되어 버렸을 거다. 그런 그 아이를 소심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그 아이와 둘이 남아 진솔한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었다. 그랬던 중 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향적인 친구보다 외향적인 친구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즉 ‘I’보다 ‘E’에 가까운 친구를 더 가까이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말 수가 많지 않았던 ‘I’인 그 아이는 본인의 그런 성격 때문에 조금 더 활발하고 말 수가 많은 사람이 호감이라 했다. 상대가 계속 말을 이어가려 하다 보니 본인도 이런저런 말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하더라.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당당하게 말을 꺼내는 게 서툴지만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다고 하더라. 말 많은 사람한테는 기 빨린다고만 할 줄 알았는데 의외구만? 내심 그런 생각을 담고 있다는 게 기특하기도 했다.


문득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채널이 생각났다. 내가 글을 쓰는 것처럼 본인의 생각과 가치관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는 유튜버였다. 단순히 본인의 생각을 말하고 찍어 올리는 영상이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할 법한 발상과 본인의 얼굴을 오픈하여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볼 수 있는 플랫폼에 올리는 것에 대해 대단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외향적인 사람이구나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튜버는 외향적인 사람, 즉 ‘E’인 사람 못지않게 내향적인 사람, 즉 ‘I’가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을 요구할 것 같았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혼자 떠들어대면서 영상을 촬영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혼자 영상편집을 해야 하는 실상을 본다면 아마 유튜버는 ‘E’보다 ‘I’가 더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방구석에 틀어박혀 영상편집을 한다는 표현은 해당 유튜버가 본인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MBTI ‘I’인 사람은 단지 소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내향적인 사람일 뿐이다. 관심의 방향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는 것이다. 소심한 것과 내향적인 것은 조금 다르다. 그 아이의 성격은 소심한 것보다는 내향적인 것에 가까웠을 것이다.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에 두려움을 가졌지만,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며 지내는 것보다 스스로의 생각에 대해 더 깊게 고민했을 뿐이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선호하는 것뿐이다. 스스로에게 관심이 많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사실 어릴 적 소심했던 그 소년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어릴 적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꺼내지 못하는 바보였다. 그래도 누군가와 단 둘이 대화할 때는 조곤조곤 내 생각을 말하곤 했었지만, 좀처럼 내 생각을 자유롭게 입밖에 발설하지 못하는 내가 종종 답답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니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한 것보다 혼자서 그 말을 더 곱씹었을 뿐이었던 내가 그저 바보 같지만은 않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혼자 생각하느라 말을 뱉지 못한 나 자신보다 해서는 안될 말을 꺼내 인간관계를 망친 내가 더 미웠다.


그렇다. 내 생각도 쉽게 말할 줄 모르는 그 어린아이가 답답하기도 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말은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말은 꼭 귀에 담지 않아도 되는 말이란 걸 안다. 외향적인 성격도 좋지만, 생각의 방향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나 자신을 향해 한 번 더 돌이켜보자. 어릴 적 답답했었던 그때처럼 조금은 조심스러워도 괜찮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단어를 가끔 한 번 더 곱씹어보자. 조금 더 현명하고 설득력 있는 아름다운 말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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