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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진 Mar 23. 2023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웠던 직장인


  면허를 막 취득한 1년 차 새내기 치과위생사로 살아갔던 2011년도.

나는 당시 서울의 번화가에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 근무를 했다. 나보다 한 달가량 먼저 입사했던 동기 한 명과 위로 줄줄이 선배들이 있는 나는 그 병원에서 제일 막내였다.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국가고시를 준비하며 진료업무를 하는 나에 대한 로망을 품었던 생각과는 달리 나의 업무에는 병원의 바닥 청소부터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하고, 심지어 점심에 다 같이 먹을 밥을 안치고 차려야 했으며, 진료 외 각종 잔 심부름을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료 외 업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간호사처럼 진료업무에 충실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회 초년생에게 병원의 화장실 청소나 점심 준비는 예상하지 못한 당혹스러운 부분이었다.) 병원의 흐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빠르게 배워야 하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이기에 혹독하게 배웠다. 나의 직속 사수는 인간적인 면에서도 항상 비아냥 거리는 태도와 끝없이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화법으로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때 그나마 나를 지탱해 준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가 어느 날인가 이야기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탈 때 한숨이 나오면 그건 퇴사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야". 그 이야기를 듣고서도 바보 같은 1년 차는 내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스스로 자존감을 까먹어 가면서 계속 일을 했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그 직속 사수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퇴근길 집에 도착하기도 전, 지하철에서 내일 출근하는 것이 두려워서 눈물을 흘렸고, 아침에 눈을 뜨면 한숨부터 나오면서 차라리 교통사고가 나서 출근을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면서. 그때는 일을 하는 능력과 개인의 인간적인 자존감을 동일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나는 그렇게 자존감을 깎여가면서 고단한 1년 차의 시기를 보냈다. 2년 차 중반을 향해가는 어느 날 그 병원은 대표원장님께서 부동산 사기를 당하는 비극적인 일로 병원은 폐업을 하게 되었고 의도치 않게 나의 첫 병원 직장 생활은 끝을 맞이했다.


몇 년 뒤 우연히 나의 1년 차 시절 직속 사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 사수가 현재 근무하는 지역에서 '악명이 높은 또라이'라고 유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 악명 높은 또라이 직속 사수가 고작 1년 차를 벗어난 2년 차가 되었을 당시 그 사람의 첫 후임이었던 것이다. 억울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 첫 병원에서의 기억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이후로 두 번의 이직을 할 때까지도 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아 힘들었었다. 그 사람이 내게 남긴 상처로부터 벗어나는데 무려 6년이 걸렸다. 

 

막내에서 13년 차 실장이 된 지금. 나는 후배 선생님들이 조언을 구할 때 항상 이야기해 준다.

업무적 능력과 너의 인간적인 가치를 동일시 여기지 말라고. 업무적 능력 부족으로 혼나더라도 인간 자체의 자존감을 스스로 깎아내리지 말라고. 그러나 일을 잘하기 위해서도 충분히 노력하고 나아져야 한다고 일러준다. 또 사람마다 나와 맞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는데 굳이 외향적인 사람들로 가득 찬 병원에 내향적인 사람이 적응하기 힘들어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 다닐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생각이 맞고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근무하면 행복하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굳이 아파하면서 다닐 이유가 없다고. 다만 나와 맞는 병원을 찾는 데까지는 여러 번의 시도를 해야 할 수 있으니 그것은 본인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고,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과정이라고. 취업이 힘든 시대에도 이직이 쉽고 자유로운 치과위생사란 직업의 극 장점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병원에서만 근무한 치과위생사의 눈으로는 요즘 일반 회사의 취업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뉴스에서는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막상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다. 그래서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서 이직을 하라는 나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직장인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지옥이라면 그곳을 탈출할 것을 강력히 권한다. 매일이 지옥인 날보다는 조금 궁핍하지만 보통인 날들이 훨씬 행복하고, 일단 그 지옥을 벗어나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내일이 무서운 직장인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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