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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수 Oct 21. 2021

 벙어리장갑

나를 위해 산 인생이었다

 어느 중소도시 외곽의 초등학교 1학년 첫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오늘 갓 입학한 병아리 신입생들이 낯선 환경에 겁먹고 있었지요. 아이들보다 어머니들이 더 설렜습니다. 담임선생님이 학부형들에게 쪽지를 나눠주며 말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바라는 소원을 하나씩 적어주세요.”     

  모두 돌아간 뒤, 선생님은 쪽지를 하나씩 펴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는 달리기를 잘합니다. 멋진 축구선수가 되게 해 주세요.’

  군인, 연예인, 대통령, 선생님, 돈 많이 버는 사람.... 장래 희망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한 학부모의 이상한 쪽지 내용에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신다면 제가 제 아이보다 하루 늦게 죽게 해 주세요. 꼭이요!’     

  이 쪽지를 쓴 홀어머니의 아들은 자폐아였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말을 심하게 더듬어 벙어리라는 놀림을 받았는데, 자식이 그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싶어 어머니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돌발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기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지만, 그래도 중증이 아니기에 위안을 삼았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이제 ‘그러려니’하게 될 무렵, 아이의 취학통지서를 받고 다시 절망했습니다.

  ‘남들에게 놀림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 만약 내가 죽으면, 저 아이는.....’

  특수학교도 생각했지만 이 아이는 장차 당신 없이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습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 다른 아이들보다 쳐지더라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의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던 것입니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혼자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도 더 이상 엄마를 학교에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동안의 모진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하늘에 감사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식.

  어머니는 아들의 입학 선물로 벙어리장갑을 샀습니다. 어머니는 대견한 아들의 손을 잡으러 넓은 운동장을 한 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보더니 반 친구들로부터 먼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벙어리장갑 선물을 건네며 더듬더듬 말했다.

  “.. 축... 하... 한.. 다.”

  그런데 아들은 벙어리장갑을 땅에 내던졌습니다. 어머니는 선물이 아들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 주섬주섬 주우면서 물었습니다.

  “.. 무.. 얼... 갖.. 고.. 싶...”

  “엄마, 가란 말이야! 친구들이 엄마를 벙어리라고 놀리잖아. 나는 그래서 벙어리장갑이 제일 싫다고.”

  아들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운동장 저편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머리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줄도 모르고 한참 동안을 우두커니 그렇게 운동장에 서 있었습니다.      


  아들이 장성하여 예쁜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약간 치매가 온 늙은 어머니는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 내외가 호주로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자식이 해외여행을 시켜준다고 자랑했습니다.

  첫 해외여행지인 호주 공항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기다리라던 아들 내외가 몇 시간이 지나도 대합실에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화장실이 급했지만 말이 통하질 않아 그만 바닥에 실례를 하고 말았지요. 공항 경비원들이 어머니를 연행하고 말았습니다.

  공항 조사관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할머니, 가족들이 버리고 도망간 거예요. 찾아 드릴 테니 이름하고 전화번호, 주소를 알려주세요.”

  공항 조사관이 신원을 확인하려 했으나, 어머니는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내 아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곧 찾으러 온다고.

  하지만 하루 가지 나면서 점차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혹시나 연행될지 몰라서였습니다.      

  한편, 어머니를 호주에 버리고 한국에 돌아온 아들 내외는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자식의 영정 앞에 선 어머니. 아들의 영정 앞에서 어머니는 아들보다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소원을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자식의 죽음을 보게 한 하늘을 원망했지요.


  어머니는 아들 내외의 시신을 화장시키는 화장장에서 무수한 다른 주검들이 드나드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자식 뒷바라지가 아니었다면 나의 말더듬이 한 평생이 더 불행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자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산 인생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하늘에 감사했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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