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사다리

묵묵한 발판 위에서

by 담월

내 인생의 사다리


담월



창밖엔 가을이 깊어간다.

단풍잎이 떨어져도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듯 내 인생에도 그런 나무와 같은 사다리 하나가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늘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내가 더 멀리 더 높이 오를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준 존재 바로 남편이다.


남편은 경상도 남자다.

말수는 적고 표현은 서툴다. 화를 내도 금세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그러나 행동은 언제나 내 삶의 발판이 되었다.

무대 위 조명은 내 얼굴을 비췄지만 그 빛을 가능하게 한 것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 준 그의 존재였다.


강의 자료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상 앞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 뒤에서 조용히 앉아 한마디 던진다.

“그거 이렇게 하면 되지 않나?”

길게 설명하지도 공감의 말도 붙이지 않지만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막혀 있던 내 사고를 열고 엉킨 생각을 풀어 주었다.

그의 무뚝뚝함이야말로 나를 받쳐 준 발판이었음을 나는 수필을 배우면서 글제를 받고서야 깨닫는다.


시낭송, 동화구연, 글쓰기와 독서지도 등의 강의로 늘 분주하게 살았다. 낮과 밤 무대와 강의실을 오가며 내 길을 개척했지만 그 길이 가능했던 것은 남편이 빈자리를 조용히 메워 주었기 때문이다.

불평 대신 기다림으로 꾸지람 대신 행동으로 내 곁을 지켰기에 내 세계를 확장할 수 있었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누린 모든 성취와 기쁨이 있다면 혼자의 것이 아니었음을...

나서지 않고 그저 한 자리에 서서 오르내리도록 길을 내어 준 사람.

때로는 삐걱거리고 낡아 보일 때도 있었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은 단단한 기둥이었던 것이다.


가을바람이 창틈으로 스며들던 어느 날 나는 고백한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했을까?

늘 묵묵히 곁을 지켜 준 당신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한다.


위태로운 곳에서 건너게 한 다리였고 세상과 나를 이어 준 숨은 통로였다. 낡아진 나무결에 스민 세월의 흔적이 아직도 내 발끝을 받쳐 주고 있다.

삐걱대던 날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비에 젖은 날에도 제자리를 지켰던 사람 나는 오늘도 그 위에 발을 디딘다.

내 인생의 사다리,

당신이 있어 나는 여전히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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