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함 문을 닫고 민트색 스크럽을 꺼내 입었다. 뺨을 손등으로 한 번 문지르자 피부가 서늘하게 깨어났다.
간호사실의 전화기가 새벽 끝을 긁듯 한 번 울렸다. 복도 쪽에서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세탁된 린넨 냄새와 알코올 향이 겹쳐 들어왔다. 청소한지 얼마 안되었는지 바닥엔 비누물 냄새가 낮게 깔렸다.
병동 스테이션 앞. 목에 청진기를 건 그가 서 있었다. 이름표가 뒤집혀 있었는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웃으며 바로잡았다.
“밤새 수고 많으셨어요.”
“저 데이 근무라 지금 출근했어요 선생님.”
“아 그러셨구나, 그럼 오늘도 수고 부탁드립니다. ”
늘 같았다. 바쁘면서도 급하지 않은 말투.
처치실에서 거즈를 정리하는 동안 그가 들어와 카트 바퀴를 잠갔다. 그는 누구한테든 반말하지 않았고, 바닥에 떨어진 테이프 조각을 먼저 주웠다.
분주하고 피곤한 그의 뒷모습을 보고 내가 농담처럼 말했다.
“선생님, 오늘은 커피를 PO 말고 IV로 맞으셔야겠는데요.”
그는 웃었다.
“비급여라 처방이 안 납니다.”
둘 다 잠깐,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업무가 밀려 점심시간이 늦어졌다. 식판을 들고 직원식당 끝자리에 앉았을 때, 그는 다른 테이블에서 케첩을 집어 들고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필요하시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첩 뚜껑에 묻은 붉은 점이 단단하게 말라 있었다.
퇴근길,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오후에 고민하다가 보낸 메시지. 아직 지워지지 않은 “1”.
‘선생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그... 오프 때 영화 보러 가실래요?’
밤새 답은 오지 않았다. 내일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을 맞추고 불을 끄면서, 화면을 한 번 더 눌렀다. 말풍선 옆 ‘1’은 그대로였다.
다음날 아침, 회진이 시작되기 전 복도.
목에 청진기를 건 채, 그는 어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가 병실 문을 잡아 주었다. “먼저 들어가세요.”
말투는 여전히 침착했고, 눈웃음도 같았다. 문이 닫히는 속도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휴대폰이 있는 주머니 쪽으로 가려던 손이 짧게 멈췄다.
병실 공기에는 따뜻한 수증기와 소독제 냄새가 섞여 있었다. 혈압계를 들고 침대 난간을 올렸다.
그가 환자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화분 옆 플라스틱 컵에 꽂힌 흰 빨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점심 무렵, 혈압 체크를 돌다 병실 창문에 기대섰다. 병상 머리맡 호출 버튼이 작게 붉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은 내내 진동하지 않았다. 어제 본 케첩 뚜껑의 붉은 점이, 지워지지 않는 숫자처럼 그 위에 겹쳐졌다.
저녁 회진이 끝난 뒤, 빈 병실에 들어가 침대 시트를 한 번 더 당겼다. 화분 옆에 놓인 플라스틱 컵에 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
형광등이 한번 깜박였다. 다시, 아무 일 없는 정적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