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그게 다 내 업보
시시콜콜한 이야기입니다.
아들 뒷담이거든요.
아들의 무엇이 속상하냐?! 이 놈은 도대체 계획이 없어요, 노력도 안 해요, 그냥 편안함과 재미만 쫓아가요. 필요하지 않으면 절대 노력하지 않아요. 딱 필요한 만큼만 하는 게 아주 노력 수전노입니다. 그게 그렇게 아까우냐 얘야. 아끼다 똥 된다.
어디 그뿐인가요. 시간 개념도 없이 핸드폰에 빠져있고. 물건도 잘 잃어버립니다. 바로 옆에 벗어둔 조끼도 못 찾아서 성질을 냅니다. 가방은 왜 항상 등교 직전에 챙기는 걸까요. 마음 생김이 모질지 못해서 뭐 독하게 이뤄내는 것도 별로 없어요. 뭘 하려면 넘어야 하는 산이 너무 많아요. 일단 시작하면 되는데, 시작도 안 하고. 본인의 가치를 매우 깎아내립니다. 내가 이걸 어떻게 해 하면서. 그러면서 누워있어요. 초 6이 신발끈 안 묶고 버텨요. 너 그거 유치원 때 묶었거든.
이제 중학교 들어가니까 일주일에 3~4일 정도 영문법 문제집 한 단원 푸는데, 말 백 마디를 합니다 : 이거 꼭 해야 하는 거야, 틀린 건 내일 보면 안 됨, 어후 숨 막힌다, 살려줘, 나야 모르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등등. 처음엔 오냐오냐 잘한다 잘한다 해주다가도 임계점에 수시로 다다릅니다. 그야말로 머리 뚜껑이 열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줘야 하는 게 부모일텐데 이렇게 머리 뚜껑이 열리면 성장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래 먹고 살겠나 하며. 학원을 보내기엔 여의치 않고, 본인도 집에서 하겠다는데, 왜 이렇게 한 걸음 나가기가 어려운지.
근데 가만 보면.
아들의 단점이 다 제 단점이에요. 모전자전. 엄마뿐인가요 남편인 아이 아빠도 그렇죠 머. 부전자전.
3시에 약속이 있으면 이동시간 체크해서 그전까지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제가 나서서 '나가자' 하기 전까지 시계도 안 보고 취미활동에 몰입해 있기는 남편도 마찬가지. 명절에 챙겨드릴 양가 부모님 봉투며 선물이며 다 제가 챙겨야죠. 누가 챙기나요. 마음 생김이 모질지 못해서 뭐 독하게 이뤄내지 못하는 것도 아들하고 똑같네요. (본인은 한두 번 한 자전거 여행으로 자기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데, 그걸 매 시즌마다 해왔으면 몰라도, 리즈시절 20대 초반에 한두 번 한 걸로 평생 우려먹으면 좀 그렇죠. 남편 보고 있나.)
목표에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 사람의 가치를 못하는 건 아니죠.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이잖아요. 별거 안 해도 그냥 있기만 해도 됩니다. 그래도.. 조금씩 마음이 성장한다고 느껴져야 사는 것이 뿌듯하지 않나요. 몸과 마음의 성장, 좋은 인연, 이런 것들이 삶의 가치 같거든요. 듣기 좋은 이야기로 어물쩡 넘어가지 말고 아들 뒷담으로 돌아갑니다.
노력은 최대한 아끼며 잠도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까지 버티는 모습.
문제집 한 단원 풀면서 오만 변명을 늘어놓고 시간을 끄는 아들의 진상 모습에서, 저를 봅니다.
저도 시작 전부터 겁먹고 '내가 이걸 어떻게 해' 하며 누워있는 경향 있거든요. 밤이 길어지는 겨울에는 더 해요. 업무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못할까 봐 두렵고 버겁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되는데 우선 책임지지 않으려 도망 다닙니다. 그러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경우가 많죠.
스스로 마음 속에서 질리도록 우쭈쭈 오냐오냐 잘한다 잘한다 해줘야 할 때가 분명 있어요. 사실은 꽤 자주 있습니다. 거의 매 휴일 밤마다, 월요일 아침마다, 월말이 다가올 때마다. 저 산을 어떻게 넘지 하는 제 마음을 보듬어 줘야 합니다. 그렇게 겨우 한 걸음 내딛습니다. 해가 뜨기 직전마다 마음을 다잡아야해서 난 뭐 이렇게 곁가지가 많이 필요한가 싶을 때가 있었어요.
이제 보니 정말 다 업보입니다.
아들을 보면 안타까웠거든요. 세상 쉽기만 한 일이 어디 있니, 네 안에 분명 가능성이 있는데, 그걸 믿고 꺼내볼 생각을 못하니, 일단 시작해 봐, 네가 재미있어하는 분야를 찾아서 연구해봐, 이런저런 마음이었는데. 그게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걸 이제야, 아니. 오늘도, 새롭게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