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계속 그 사이 수많은 다시
다음 주 해외 출장을 갑니다.
이번 주 내내 어깨가 무거워요.
재정 팍팍하고 근로자 몇 명 안 되는 중소기업에서 특별히 돈 들여 가는 거라 비용 이상을 뽑아와야 한다는 압박. 바이어와 좋은 사업을 엮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사업 기회는 결국 자금이 있어야 만들어지던데, 내가 가서 기금 마련을 할 것도 아니고,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비약까지. 올해 사업계획서에 해당업체를 방문할 필요가 있다고 한 건 저 자신인데. 또, 사장님을 비롯 회사 아무도 저에게 대놓고 기대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데, 혼자 너무 나서서 부담 끌어안는 것도 같습니다.
그 기저에는 과연 계속 회사를 다닐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겠지요. 또 이 회사가 발전해 나갈 상인가 하는 회의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저에겐 옵션이 별로 없어요. 이 회사니까 해외 출장 가서 바이어를 만나는 중차대한 업무를 저에게 맡기는 거겠죠.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몰라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도망가고 싶고, 자신 없어지니, 이 무슨 못난 심보일까요.
제가 없는 동안 집은 더 걱정이에요. 아이들의 전화기 실랑이, 숙제 실랑이와 당분간 작별하는 것은 너무 좋지만 아마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남편 몫이 되겠죠. 아이들끼리 아침밥은 어떻게 차려먹을 것이며, 먹고 나서 뒷정리는 언감생심, 과연 누군가 바닥에 흘린 계란 조각을 닦기는 할까 싶습니다. 아마 그 계란 조각은 누군가의 양말에 붙어 온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안 씻고 침대에 눕는 아이의 이불에 묻을지도 몰라요. 뜨아.
이런저런 근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오이를 볶았습니다.
오이 넣은 김밥 해 먹으려고요. 오이를 씻고 껍질을 적당히 벗겨 김밥용으로 길쭉하게 잘랐습니다. 스텐 프라이팬을 시간을 들여 예열하고 기름을 두른 후 오이를 촤라락 넣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프라이팬이 많이 작더라고요. 빳빳한 오이 양쪽 끝이 프라이팬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쪽저쪽으로 튀어나와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이 나왔습니다.
프라이팬이 오이를 담기에 너무 작구나.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오이를 길쭉하게 잘랐네.
프라이팬은 뭣하러 정성스럽게 예열했나.
프라이팬은 나, 오이는 내가 맡은 업무.
맡은 일은 너무 큰데,
나는 작네. 에효.
한숨 한 번 더.
그런데!
프라이팬에 열이 들어온 상태에서 계속 오이를 이리저리 계속 움직이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전부 프라이팬 속으로 쏙쏙 들어가는 거예요. 열받은 오이가 프라이팬 속에서 말랑말랑해진 것인지, 휘어지더라고요. 이게 뭐라고 피식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식탁에 온 가족 다 같이 앉아 김밥도 야무지게 말아먹었습니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얄팍한지,
마음이 좀 놓이더군요.
그러니까... 킵 고잉.
그냥 계속하면 될지도 모르겠어요.
다음날 아침 라디오에서 운명처럼 들려온 이야기에 마음이 한 발짝 더 움직였습니다. 대충 이런 맥락이었어요 : '용기'와 '계속' 사이 무한히 반복되는 '다시.'
오랜 연휴 끝에 출근길이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라디오 진행자의 코멘트였던 것 같은데 정말 큰 위안이 되더라고요. 정말 저렇게 말했는지, 기억이 혹시 왜곡된 것인지, 자신은 없어요.
제가 일하는 회사와 3년 이상 꾸준히 거래를 이어온 바이어 업체를 드디어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렵니다. 좀 더 확대할 기회가 있으면 좋고, 서로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거라고 좋게 좋게 생각해 봅니다. 저희 물건이 어떤 경로로 쓰이고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지금 당장 보다 앞으로의 기회를 보는 것이라. 좋게 좋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어떤 예상 못한 장애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번 출장 때에는 공항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거든요. 또 어떤 기대하지 못했던 좋은 인연과 행운이 있을 수도 있지요. 그저 킵 고잉. Keep going.
일단 계속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