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아멘
첫째가 대망의 중1 첫 시험을 봤습니다.
와 진짜 기대 이해로 못 봤습니다. 공부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힘들겠다, 그래 첫 시험이니 어떠냐,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이럴 수가. 국어시험을 정말 많이 틀렸더라고요. 시험 전 문제집 풀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틀렸습니다. C 확정입니다. 그나마 영어는 잘 본 편이지만, 수행평가로 점수를 많이 잃은 상황이라 B. 수학은 수행평가가 잘 되어 있어서 A 입니다. 나머지 과목은 말해 뭐 하나요. 점수들은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를 유영 중입니다.
시험 정오표를 받아 들고 생각 열차가 출발합니다. 이 아이는 문과가 아니구나. 아니 공부가 아닌 건가. 공놀이 잘하는데 지금이라도 운동시켜 볼까. 아차 승부욕이 없네. 그리고 거긴 더 좁은 길. 정말 이 아이들 시대는 잘 노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될까. 잠깐만. 이 와중에 전 과목 백점 맞는 아이들도 있잖아. 그나마 중학교는 절대평가라 A 비중이 전체 학생의 30~40%는 된다던데. 파레토의 법칙을 생각하면 20% 안에는 들어야 비벼볼 수 있을 텐데. 이 아이는 일찌감치 공부 말고 다른 길을 찾아야겠네. 생각 열차는 무한루프의 길을 갑니다.
당장 국어학원과 영어학원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까 좀 지나쳤나 싶어 지더군요. 첫 시험인데 너무 오두방정 떠는 건가 싶었어요. 아이는 평범했고, 평범하고, 평범하게 살 텐데. 부모 혼자 무슨 꿈을 꾼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많이 기대했었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한 집에서 함께 식사하고 건강하게 살 비비며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 비교는 나보다 못한 쪽이랑 하는 거야, 나은 쪽이랑 하면 너무 슬퍼져"라고 말하는 능청스러움도 좋지 아니한가. 이런저런 긍정회로가 방어본능처럼 돌아가더군요.
여우의 신포도급 긍정회로 후 다시 정리해 봤습니다, 제 마음을요.
영어는 그동안 북클럽 위주로만 있었고 이제 한 번쯤 달릴 타이밍인 것 같으니, 미리 얘기해 둔 동네 학원에 다니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 학원은 영어는 중학교 때 토플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주의래요. 그게 우리 아이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중학교 입학 때부터 학원을 여기저기 알아봐서인지, 아이의 거부반응은 많이 줄었습니다. 이왕 가는 것, 최선 같은 대형학원에 갔으면 하는 마음 있지만 선택은 아이의 몫. 이제 시험으로서의 영어도 본격 시작했으면 좋겠구나 아들아.
책 읽기는 동네 영어학원에서도 강력하게 권하는 것이라 하니,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가야지요. 이제 슬슬 독서록도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면 참 좋겠는데. 이 또한 제 마음속 상상일 뿐입니다. 요즘 아이는 제 추천 말고 친구 추천으로 퍼시 잭슨 시리즈를 영어책으로 보면서 오디오북으로도 듣고 있습니다. 그래머 인 유스와 능률 독해도 하루 한 페이지 정도로 천천히 계속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양을 좀 올렸으면 좋겠는데, 이 또한 스스로 마음이 동해야 할 수 있는 것. 어쩔 수가 없습니다.
국어는 학원에서 대기 연락도 잘 안 와요. 학원 수에 비해 수요가 많은가 봅니다. 시험 직후의 급한 마음을 식히고, 천천히 대응하기로 합니다. 아이 말고 저요. 어차피 하루이틀에 가능한 일도 아니고, 그래도 무협소설이나마 책 읽기를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 한자도 익히고 있으니까요. 다만 아이의 논리적인 글쓰기 경험이 너무 적으니 그 부분은 보충해주고 싶습니다. 청소년수련관 프로그램에도 대기를 걸고, 논술학원에도 연락했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동네 한우리 수업은 초등 위주이지 중학생은 열지도 않더라고요.
본인 국어 점수에 놀란 지금, 뭐라도 시작하자 하는 마음에 신문 기사 하나씩 옮겨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신문 뒤지며 제일 짧은 걸로 골라오더군요. 이게 어디인가요. 이제 3 꼭지 썼습니다. 하루는 쓰고, 하루는 요약. 해보니 역시나 문제가 보입니다. 신문 기사를 요약하는 데에도 구어체 또는 카톡체를 씁니다. 어효. 서술형 답안에 이런 말 쓰면 곤란하단다 아들아. 세상에는 문어체라는 것이 있단다. 저도 지금 구어체를 섞어 쓰고 있긴 하네요 하하..
국어나 영어의 소통 능력, 과학과 수학의 탐구 응용 능력, 사회와 한문의 실생활 연결지점. 이런 과목들은 모두 실제 생활에 필요한 것. 실업계를 가더라도 기본이 되는 필살기입니다. 이제 십 대 초반인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익혀두면 참 좋겠습니다. 삶의 질을 위한 음악, 미술, 체육과 인간관계 실습은 말할 것도 없지요.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비용, 시간 면에서도 전 과목 학원에 보낼 수도 없습니다. 학원을 간다 해도 결국은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기도 하고요. 아이 스스로 국어와 영어 1~2달 학습계획을 세워보라고 했습니다. 아직 받아보진 못했어요. 공부하는 법을 알려준다는 2박 3일짜리 캠프는 시험 전부터 등록해 두긴 했는데, 아이에게 과연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평범한 아이입니다. 욕심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머리가 아주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고. 이런 평균의 아이를, 어쩌면 평균 이하의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학교 공부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게 할 수 있을지. 이것은 아이의 인생인데 자꾸만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은 많이 하지만. 행동을 너무 많이 하진 않으려고 조심 중입니다. 아이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표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유영 중인 우주인처럼, 거리를 둡니다. 이것은 그러자고, 다짐하는 글쓰기인 셈입니다.
저는 부모이고,
아이는 부모를 넘어서야 하니까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