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변론 읽기 Day 2, Day 3
소크라테스 <변론>을 대한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질문하고 답변하는 행위에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먼저 제기된 것과 나중에 제기된 것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먼저 오래전 그를 모함한 자들은 현재 법정에 모인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네요. '소크라테스가, 잘난 양반이, 위로는 하늘을 조사하고 아래로는 땅을 연구하며, 사론을 정론으로 만든다고 (telling of one Socrates, a wise man, who speculated about the heaven above, and searched into the earth beneath, and made the worse appear the better cause)' 말이죠. '사론을 정론으로 퍼뜨린다'는 말이 영어로나 한글로나 좀 아리송합니다만, 대충 '안 좋은 언쟁을 좋은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아요. 챗 지피티와 브이클럽 합작 텍스트는 he convinces people that bad arguements are good'이라고 풀어줬네요. 왜 the worse가 안 좋은 언쟁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기 같은 말이라면 차라리 이해할 만하겠어요. 혹시 더 편안한 문장으로 풀어주실 수 있는 분 계실까요?
이런 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청중은 보통 '그런 질문자/연구자들(such enquirers)'이 신을 믿지 않는다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네요. 소크라테스의 설명였어요. 이 말을 듣는 이의 수가 많고, 워낙 어렸을 때부터 돌아다닌 이야기다 보니, 이 혐의를 처음 제기한 사람들은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실체가 없는 뜬소문. 그림자나 메아리 같은 혐의인 셈이죠. 특히나 이런 뜬소문에 답변해 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기에, 그것은 디폴트/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고, 소크라테스는 피력합니다. The cause when heard went by default, for there was none to answer.
이 부분이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잘못된 사실을 전하는 메아리에 누구도 답변하지 않았기에 들리는 대로 디폴트가 되었다. 응답할 이가 없었기에 기정사실화됐다.
누군가 답변하고, 또 누군가가 그에 대해 질문했었다면. 그렇게 질의응답과 건강한 이야기가 오갔다면. 소크라테스의 설법에 대한 바람직한 토론의 장이 열렸을까요. 안 좋은 언쟁의 장이 되었을까요.
사실 메아리나 그림자 같은 모함에는 침묵이나 어둠으로 대응하는 게 현명할 듯합니다. 메아리랑 어떻게 싸웁니까. 에너지 낭비 아닌가요. 그런데 누군가 그 메아리에 답변하지 않고 그 메아리가 자꾸 확대 재생산되며 퍼져간다면, 그 메아리를 기정사실화하는 세대가 생기려나요? 그 세대의 무지는 누구를 탓해야 하나요? 답변, 그리고 그것과 짝을 이루는 질문의 가치에 대해 생각이 길어집니다.
소크라테스도 그런 메아리들에 대해 굳이 응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웃어넘겼겠죠. 그를 풍자한 연극을 보고 웃고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대응할 가치가 없어서 대응하지 않았겠지만. 한편으론 귀찮은 마음도 있지 않았을는지. 만약 저에게 대중이 나쁜 놈이라고 비난한다면 아마 무섭고 두려워서 도망갔겠지만. 나이 70이 넘어서도 법정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변호할 정도 멘털의 남자라면, 그저 그 대응이 귀찮았을 것 같습니다. 그 주변에 그를 아는 사람들도 혹시 그랬을까요. 은근슬쩍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면서? (부모를 전부로 아는 어린아이한테도 진심으로 질문하는 것에는 엄청난 인내심이 요구되더라고요. 그냥 지시하는 게 편하죠.)
벤자민 조웻의 번역문에 자연철학 연구자들을 '질문자들 enquirers'라고 지칭한 점도 눈에 띕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당시 그들은 사회적으로 별로 좋은 시선을 받았던 것 같지 않습니다. 그 역시 '자연철학 연구자들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면서도 자기는 자연철학자가 아니라고 선을 긋거든요. 뭐 분명한 사실이긴 합니다만, 당시의 과학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인문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잖아요. 지금에야 과학자란 이름으로 존경받지만요, 아니, 요즘도 좀 안 좋은 시선이 있던가요? 고대 그리스에서도 질문은 못마땅했고,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금기시 됐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민주주의가 태동했고, 신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섬겼는데도 말이죠.
문득 최근 다음 엄지작가 팟캐스트를 위해 보고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베르테르가 아직 로테를 모르는 시절에 뛰어난 통찰력으로 하는 말입니다. 저는 오해와 게으름이란 말이 질문과 답변이란 단어처럼 콕 박히네요.
나는 이 사소한 일을 통해
오해와 게으름이 간계나 악의보다
이 세상에 더 많은 혼란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P.9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허밍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