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2026
그날도 여름과 같았어.
목이 살살 아파오고, 몸이 슬슬 따갑고
으슬으슬.
‘앗… 몸살이 올 것 같은 이 불안함.’
내가 아프면 아가 너를 부탁할 사람이 없고,
집도 올스톱이기에 불안했어.
여름에 처음으로 양양 할머니, 할아버지께
SOS 요청을 한 것처럼
또 그래야 하나 싶었지.
다행히 주말이라
아빠도 있어서 한결 마음은 놓였지만
그래도 불안했어.
급하게 타이레놀 두 알을 입안에 털어 넣고
쉬었지만,
그다음 날도 몸은 좋아지지 않았어.
갑자기 안 먹는 너의 매 끼를 챙겨야 하고
집안일은 산더미고
밤엔 나만 찾는 너.
난 아프고 싶지 않았어.
일요일이 되고,
며칠 동안 감지 못한 머리를 급하게 감고
집 앞 내과에 갔어.
겨울이라 더 사람이 많았고
혹시 몰라 진료 후
독감 검사와 코로나 검사도 함께 했어.
10분을 기다리고
결과는 “음성”.
목은 살짝 부었지만
커다란 증상은 없다고 했고
몸살기로 수액을 맞았어.
수액을 맞는 두 시간 동안에도
넌 나를 많이 찾았지.
그리고 그날 저녁,
너의 식사를 만들었어.
아빠는 많이 걱정했고
휴가가 없기에
양양 할머니, 할아버지께 통화를 하려 했는데
말하기도 전에
이미 할머니는 엄마 상태를 알아채셨어.
그래서 말씀드렸어
혹시 더 안 좋아지면 부탁한다고
월요일이 되고
아빠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남긴 채 출근했고
언제나처럼
너와 나, 둘만 남았어.
그날은 수액 덕분인지,
계속 챙겨 먹은 진통제 덕분인지
조금 괜찮아졌어.
화요일 아침
할머니,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니
이미 출발해서 오고 계셨어.
그리고 꼭 꾀병처럼
많이 나아졌었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고
그 후로는 조금 마음 편하게
누워 있을 수 있었어.
그리고 새해를 하루 앞둔
2025년의 마지막 날.
아빠도 오전 근무 후 퇴근 예정이었고
모처럼 아침잠을 조금 길게 잘 수 있었어.
그런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어.
할머니가 끓여주신 매생이 굴국도
몇 숟가락 뜨지 못했고
“엄마, 엄마” 하며 찾는
너도 안아줄 수 없을 만큼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어.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겠고
다행히 마지막날이라 일찍 온
아빠가 올 때까지 누워 있다가
집 앞 이비인후과를
아빠와 함께 갔어.
병원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알 수 없는
너무 큰 두통이 찾아왔어.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몇 숟가락 먹지 않았던 매생이도
모두 토했어.
진찰을 마친 선생님이
소견서를 써줄 테니
바로 응급실로 가라고 했고
그렇게 응급실로 향했어.
급하게 병원에 엄마 빨리 다녀온다고
너에게 빠빠이도 하고 나왔는데
바로 집에 갈 수는 없었어.
응급실로 가는 동안
두통은 더 심해졌고
이대로 너를 못 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눈물이 흘렀어.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빠의 걱정보다
너를 다시 못 볼까 봐
엄마가 너무, 너무 무서웠어.
그렇게 응급실에 도착해
간호사님의 부축을 받으며
출산 때도 타지 않았던 휠체어를 타고
들어갔어.
수액을 꽂고
엑스레이, CT를
이동 침대에 옮겨 가며 검사했고
요추천자 검사까지 진행했어.
그 순간에도
네가 엄마를 얼마나 찾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어.
그렇게 요추천자 검사 후
6시간 이상 응급실에 묶여 있었고
“나중에 신경 쪽 검사를 꼭 해 보세요.
검사는 다했지만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두통이
있으시건 안되세요 “라는 걱정스러운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오후 3시쯤 도착한 응급실에서
2026년 새해를 맞이하고
나올 수 있었어.
그리고 깨알 같지만 놀랐어.
백만 원은 나올 줄 알았는데
25만 원이 나온 응급실 비용.
두통이 사라지니
대한민국 만세가 나왔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할아버지의 문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드렸지.
우리 없이
“엄마, 엄마”를 찾다가
안방에서 덩그러니 혼자 잠든 너.
그 모습이 너무 짠해서
밤새 옆에서 지켜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렇게 처음으로
응급실에서 새해를 맞이했고
널 다시 보지 못할까 봐
너무 두려웠고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서 다짐했어.
절대 너 곁에
오래오래 살아 있을 거라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잠든 너의 얼굴을 보는데
그제야 숨이 돌아왔다.
작은 가슴이 오르내리는 걸 확인하고
조심히 손을 얹었을 때
그날의 공포는 조금씩 멀어졌다.
아가야,
엄마는 강한 사람이 아니야.
겁도 많고, 아프면 쉽게 무너지고,
미래를 쓸데없이 걱정하는 사람이지.
그래도 하나만은 약속할게.
너를 더 오래 보기 위해
엄마는 나를 더 챙기고,
아프지 않으려고 애쓰고,
무서워도 다시 일어설게.
그날 응급실에서 맞은 새해는
축하도, 설렘도 없었지만
하나의 소원만은 분명했어.
너의 곁에 오래 남는 것.
그거면 충분한 한 해의 시작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