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의 전설

공주와 전사

by 이재이

내가 멕시코에서 살았던 푸에블라(Puebla) 주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산이 있다. 이 두 산의 이름은 Popocatepetl (포포카테페틀 - 짧게 '포포 Popo'라고도 부른다)과 Iztaccihuatl (이츠타치우아틀 - 짧게 '이츠타 Izta'라고 부른다)로, 푸에블라 주와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 사이에 있다. 이 중 포포는 아직까지도 분화하는 활화산이고 이츠타는 멀리서 보면 한 여인이 누워 자는 모습처럼 보여 "잠자는 여인 (La Mujer Dormida)"라고도 부른다.

이 두 산에 대해 전해지는 전설이 한 가지가 있다. 물론 지역마다, 그리고 세대마다 각색이 되어 디테일들은 다르지만,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먼 옛날, 멕시코 땅이 여러 부족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던 시절에, 한 부족에 이츠타치우아틀이라는 공주가 있었고, 그 부족의 전사인 포포카테페틀이 있었다. 그 둘은 사랑에 빠졌지만, 전사인 포포카테페틀은 전장에 보내진다. 이츠타치우아틀의 아버지인 부족장은 포포카테페틀에게 전장에서 승리하여 돌아오면 딸 이츠타치우아틀과의 혼인을 허락하겠다는 약속 한다. 포포카테페틀이 전투를 벌이러 나가고 얼마 후, 포포카테페틀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이 전해 들려온다.

이츠타치우아틀은 사랑하는 포포카테페틀의 사망소식을 듣고 좌절하며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츠타치우아틀이 사망하고 며칠 뒤, 포포카테페틀이 적의 목을 들고 승리의 나팔을 불며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이미 떠난 후였고, 그 역시 깊은 좌절에 빠지게 된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편안히 잠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츠타치우아틀을 품에 안고 포포카테페틀은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고는, 그녀를 꽃침대에 눕힌다. 그리고 그는 한 손에 횃불을 들며 영원히 그녀의 곁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숲 속의 신들은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이츠타치우아틀을 영원히 평온하게 잠들 수 있도록 산으로 만들고, 포포카테페틀은 그의 사랑을 지킬 수 있도록 영원히 불타는 화산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부터 이 이야기를 꽤나 좋아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라고 보지만, 나는 감동적이라기보다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포포카테페틀은 영원히 이츠타치우아틀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있지만,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다. 어찌 보면 그는 이미 죽은 그의 사랑을 죽지 못하고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비극이 아름다울 수 없다는 법칙은 없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빠져 죽은 이츠타치우아틀, 그런 그녀의 곁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포포카테페틀. 이 이야기가 그토록 아름다운 까닭은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또 남들과 조금은 다른 그들만의 해피엔딩을 맞이했다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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