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래도 여기 다시 와야겠다.
이번엔 소설이다_단편
두려웠다. 이대로 별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놀이동산에 왔지만, 무서운 마음에 회전목마만 여섯 번째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루하고 따분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에 취해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신주임이 용하다는 그 점집 이야기를 하던 순간, 문득 나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아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는 하는지.
하지만 나는 궁금하다고 해서 금세 따라가는 성격은 아니다. 원체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모험을 즐기는 성격도 아닌 데다가, 소위 말하는 신점을 보는 곳은 나에게 무언가 막연한 공포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대리님, 진짜 같이 안 가실래요? 저 이거 3개월 전에 예약한 거예요! 심지어 그 점쟁이가 지난주에 기도 갔다 와서 지금 신빨이 제일 세다는데, 안 가면 진짜 후회하신다니까요"
"난 싫어. 무서워"
"아이참. 뭐가 무서워요. 저는 몇 번가 봤는데요. 점집이 딱 들어갈 때는 무서워도 별거 없다니까요? 대리님 진짜 궁금한 거 없어요? 다 맞춘다니까요!"
궁금한 거. 처음에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그거였다. 겨우 내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생겼는데, 도대체 나는 내 미래 중에 구체적으로 뭐가 궁금한 것일까?
우등생은 아니어도 모범생으로 자라온 학창 시절. 명문대는 아니어도 서울 안에 4년제 대학을 나온 나는, 취업도 1년 정도 준비해서 큰 어려움 없이 적당한 중견기업에 들어왔다. 입사 7년 차. 치열하지는 않아도 성실하게 근무하다 보니 대리가 되어 있었다.
"뭐가 궁금해서 왔어?"
점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평범했다. 아파트 상가에 "필"이라는 간판. 처음에는 미장원인줄 알았다. 그 평범한 상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3평 남짓한 대기실이 있었다. 중년의 여성 두 분과 젊은 커플 하나, 유행 지난 양복을 입은 아저씨도 한 명 있었다. 중년의 여성분은 이미 여러 번 온 듯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종이를 내민다. 그곳에는 생년월일시를 적는 칸과 주소를 적는 칸이 있었다. 우리는 빈칸을 채우고 두근거리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리님이 생각하는 그 뭔가 무서운 사당은 저 안쪽에 있어서 잘 안보인데요. 근데 대신 여기는 동자신이라서 과자나 사탕 인형들이 여기저기 많다고 하더라고요"
마치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신주임은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는 우선 남자 친구부터 물어보려고요. 요즘 딱 이상한 느낌이 있거든요. 2년이 넘어가니까 설렘이 없는 건 알겠는데, 그거랑은 또 다른 미묘한 거리감이 있거든요"
"그걸 뭘 여기까지 와서 물어봐? 남자 친구한테 물어보면 돼지"
"아 대리님도 그걸 또 뭐라고 물어봐요? 그냥 혹시 요즘 다른 여자 있나 여기서 물어보면 되죠. 여기 영업팀 김대리님이 알려준데 거든요. 김대리님은 임신한 아기 성별이랑 예정일도 맞췄데요"
"그건 산부인과에서 물어봐야지. 여길 왜와?"
원래 이런 걸 물어보는 건가? 나는 미리 물어볼 것을 생각하고 와야 한다는 신주임 말에 "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죠?" 이거 하나 생각해 왔는데. 왠지 이것도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아닌 듯하다.
이런 대화를 하던 중에 먼저 들어갔던 중년의 여성들이 울면서 나오고 있다. 무슨 일인지 궁금은 하지만 절대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은 더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은 다른 여인의 팔을 잡고 등을 토닥이며 나온다. 무언가 위로의 말을 전하고는 있지만, 당사자는 듣고 있지 않는 느낌이다. 무슨 일일까? 젊은 커플이 그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발랄하고 신나는 표정으로 방에 들어간다. 남아있는 중년의 남자 역시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도 그의 불안함과 초조함은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서류봉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중요한 것을 물어보려는 듯하다.
"나는 정말 궁금한 게 뭘까?"
궁금해하는 것이 궁금한,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멍을 때리고 있을 때, 신주임은 남자 친구와 열심히 카톡을 주고받고 있었다.
" 봐요. 지금도 뭔지 명확하게 말을 안 해요. 2년을 만났는데 내가 모르는 친구가 어딨다고, 모르는 친구랑 오랜만에 우연히 만나서 술 한잔 하러 간데요"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친구니까 신주임이 모를 수 있는 거 아냐?"
" 대리님, 아니라니까요. 제 촉이 틀린 적이 없어요. 제가 이런 쪽으로는 귀신이에요. 귀신. 두고 보세요. 이따가 물어보면 아마 다 제 말이 맞다고 할 거예요. 틀림없어요"
지가 귀신이면 얘는 여기 왜 왔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 그 발랄한 커플이 발랄하지 않게 나오고 있었다. 둘이 아무 말 없이 어색하게 나오는 거 보니 궁합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더 돈독하게 하고자 했던, 누군가의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여자가 더 눈치를 보고 있는 걸로 봐서 예약하고 오자고 한 것이 여자 쪽인 듯 하나 난 뭐 큰 관심은 없다.
"혹시 먼저 들어가실래요? 제가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해서요"
불안해하던 중년의 남성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더 이상 발랄하지 않은 그 커플이 예상보다 빨리 나와서 본인의 시간계획에 무엇인가 차질이 생긴 듯했다. 별 상관이 없는 우리는 오히려 기분 좋게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면이 책장으로 꽉 찬 작은 방이 있었다. 원래는 좀 더 큰방인데 방 가운데를 책장으로 막아 두 개의 방으로 나눈 듯하다. 신주임의 말처럼 책장 뒤편이 그 사당인 것 같았다. 방 가운데 앉은뱅이책상이 있었고, 그 뒤편에 앉아있는 점쟁이는 밖에 걸려있는 간판만큼이나 평범해 보이는 아줌마였다. 내가 그곳에 공간들을 두리번거리는 동안 우리의 적은 종이를 들고 무엇인가 알듯 모르는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 뭐가 궁금해서 왔어?"
신주임은 신난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부터 시작해서 회사 얘기와 가족 이야기, 친한 베프들의 결혼 이야기까지. 점쟁이가 알려줄 것도 없이 본인이 먼저 다 말하는 듯했지만, 중간중간에 자기가 원하는 질문을 놓치지 않고 하고 있었다.
점쟁이는 모두 아는듯한 여유 있는 표정으로 하나씩 답을 해줬다. 남자 친구는 바람이 난 것이 아니라 프러포즈를 준비 중이며, 오늘 만나는 친구가 그쪽일을 하는 사람이라 계획을 짜는 중이라고, 남자 입장을 생각하면 말을 안 해줘야 하는데 본인이 말을 안 해주면 프러포즈받기도 전에 헤어질 것 같아서 그냥 말해준다고 했다. 이렇게 이것저것 신주임이 물어보는 중에도 나는 딱 물어봐야 할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 난 산 사람 점만 봐. 나가"
그 평범해 보이는 아줌마 점쟁이가 아기 목소리로 나에게 처음 한 말이다.
"예?"
" 난 산 사람 점만 본다고"
참지 못한 신주임이 나보다 먼저 물어봤다.
"저기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죽은 사람이라니요?"
" 내가 언제 죽었다 그랬어? 산 사람 점만 본다고 했지.
네가 대답해? 너 살아있어? 살아있는 거 맞아?"
"예? 저 그게 "
다시 아줌마의 목소리로 돌아온 점쟁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살고 싶어 지거나,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생기거나, 미래가 불안하고 걱정돼서 궁금한 게 생기면, 그때 다시 와요. 그때는 신령님이 그냥 봐주신다고 하네요. 아기 신이라 욕심이 많은데. 웬일이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살고는 있지만 살고 싶은 적은 없었고, 나름 잘 살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딱히 삶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감도 느낀 적은 없었다.
"우리는 욕망이랑 불안함으로 점을 봐요, 이루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누리고 싶은 거, 욕망이 뚜렷할수록 미래의 밑그림이 좀 보이고, 겁나고 불안하고 걱정돼야 우리가 풀어줄 것도 보이는데, 그게 없으니 우리가 뭘 봐주려고 해도 볼 수가 없지. 신령님이 꼭 쥐고 온 그 질문,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자기한테 물어보라시네. 그 답을 찾으면 그때 오라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름 내 삶도. 욕심은 없어도 성실했고, 모험은 없어도 무난했다. 그래서 적어도 빼어나진 않아도 흐릿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내 삶의 질문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방을 나오자 소중한 듯 서류봉투를 든 중년의 남성분이 불안함과 설렘이 반씩 섞인 눈빛으로 나를 스쳐 들어갔다.
살아있다.
그때서야 보였다. 저 절박함과 불안함이 나머지 반의 설렘과 기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오늘 내가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살아있었다. 각각의 사연은 몰라도 그들의 간절함과 욕망, 기대는 모두 보였기 때문이다. 날 이곳으로 데려온 신주임마저도. 그들의 비해 나는 어떤가? 이곳에 오는 것마저도 누군가에 손에 이끌려, 여기까지 와서도 질문하나 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 집에 가서 거울을 좀 봐야겠다. 내 삶에, 내 눈에, 내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나 스스로 답을 찾고, 그로 인해 진짜 궁금한 게 생긴다면, 그래서 조금은 더 살고 싶어 졌을 그때,
나는 아무래도 여기 다시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