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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Sep 14. 2020

너무 예민한 세상

솔선수범 프로젝트_친절이 필요해

 예민하다는 것은 어떠한 자극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나도 많은 자극이 오고 가고 있다. 아주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사회의 문제나 현상들부터 시작해서, 환경적인 문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의 문제, 수많은 이해관계의 충돌과 각각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문제, 심지어 법과 규범, 예의와 매너와 인간의 도리까지 얽혀진 다양한 행동 기준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도 하고, 예민하게도 만든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가장 많이 주목받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가 온라인 문화이다. 기본적으로 개개인이 하는 SNS 활동부터, 주요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동호회나 온라인 사이트들, 그리고 지역 내 기반을 둔 지역주민 카페나 맘 카페 등.. 이러한 온라인 활동들은 개개인의 생각이나 가치를 표현하거나 논의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그래서 그 안에서의 다양한 소통들이 사회의 새로운 기준들이 되기도 하고, 기존의 기준들은 바꿔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들로 통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어떠한 게시물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에 따른 지적사항들도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의 게시물을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는 인플루언서들의 경우 자신의 말과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하고 활동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간혹 너무 과하게 그들의 행동을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인플루언서들이 올리는 게시물들과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받은 자극에 대한 학습효과가 나타난다.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미디어를 노출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 바로 분명한 예인데, 우리 사회도 결국 같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느 동네에나 있던 모든 일에 간섭하고 불만을 많은 사람들의 영향이 그들의 주변 사람에게만 한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 당시에 그들의 성향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차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사람들이 활동하는 영역을 온라인으로 옮겨왔으며, 그들의 행동에 대한 영향이 무한대로 펴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의 활동은 매우 적극적이어서 내가 그들의 활동을 차단하고 싶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자극을 따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극도로 예민한 그들의 반응은 전염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그들의 1차적 반응을 접하게 되는 경우에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그들의 반응이 과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자극을 이미 접한 상태에서는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그들의 반응으로 인해 학습된 행동이 나오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즉, 나는 그들의 반응을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들의 반응을 따라 하고 내 상황에 적용시키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나의 반응과 처리과정을 학습하고 또 다른 행동으로 이어지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어, 모두 양보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선한 인성을 이용하여 아주 악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주의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소수의 예민한 사람들의 반응이 점점 퍼져나가다 보면, 아주 작은 일에도 서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공격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가고, 본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결코 비난받을 만한 행동은 아니다. 다만,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나의 배려와 양보로 팍팍한 세상을 훈훈하게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수많은 연예인들을 만들어 내는 미담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훈훈한 미담들도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미담들은 우리의 새로운 선택의 순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선택권이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 스스로 예민하게 만들어, 나의 권리를 지킬 수도 있고,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물론, 각각의 선택에 의한 결과는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게 판단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결국, 모두가 살아가기 힘든 이 시기에는 서로에서 위로가 될 수 있는 미담을 만들어 나가는 선택이 우리와 사회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친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세상은 결국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예민한 태도는 어딘가를 돌고 돌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되어 가시 돌아올 수도 있고, 반대로 나의 친절과 배려는 그 나름대로 또 돌도 돌아 "가는 말이 고와 오는 말이 고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집안의 분위기는 가족 간의 대화로 형성된다. 서로에게 예쁜 말로 대화를 나누는 가족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지킬 수 있고, 서로를 상처 내는 대화를 나누는 가족은 아무리 부유한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 우리 사회 전체가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우리부터 예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절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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