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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Sep 17. 2020

나의 친철이 만만함이 되지 않기를

솔선수범 프로젝트_친절이 필요해

 나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학창 시절 클럽활동에서 후배들에게도 그랬고, 대학시절 학과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에서도 그랬다. 심지어 창업을 하고 고용주로서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나 지금 관리자로서 직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나는 결코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한때 나는 이런 성격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들은 무서운 선배나 표현이 센 리더의 말을 더 잘 들었고, 상대적으로 내 말은 무시되거나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무서운 선배가 돼보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고, 일부러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들은 나의 본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오히려 나도 상대방들도 불편하게만 만들었다.

 이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쌓여서, 되도록이면 내 조직의 구성원에게는 능력으로 인정받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합리적인 판단능력과 논리가 바탕이 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되도록이면 빈틈이나 실수를 보여주지 않는 방법으로 나의 존재감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적어도 예전처럼 엄하게 대하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에 조직의 관리에 고민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내가 지금도 가장 아쉬운 것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섭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본인에게 강력한 압박을 가하거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에게 잘해주고 친절하거나, 자신을 존중해주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업무적으로 시급성을 요하거나,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명확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소리를 잘 지르고 화를 잘 내고, 남들에게 압박을 잘하는 사람들이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소에 인간적인 배려과 인격을 존중해주던 사람들의 말은 결정적인 순간들에 영향력이 약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가가 낮아지거나 상처를 받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경우를 만만하게 본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만하게 본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거나, 나의 감정을 굳이 가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편해서"라는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하지만 편한 것과 만만한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편하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막대해도 된다는 뜻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부모님이다. 물론, 부모님 중에서도 권위적인 부모님들은 제외되겠지만, 자녀들을 위해 항상 희생하고 배려해주시는 부모님들에게 우리는 그들을 만만하게 생각하거나 막대하는 경우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냄.
 
부모님의 말을 대충 듣고 넘김.

어떤 결정에 있어 허락/동의를 구하지 않음.

그들의 의견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음.

그들의 존재자채를 무시하거나 고려하지 않음.

 이러한 행동들은 삶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그들에 대한 나의 태도이자, 내가 그들을 인지하고 있는 척도다. 만약에 나의 부모가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사람들이었다면, 우리는 저 중에서 단 한 가지의 태도도 보이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무서운 부모라면 그들의 지시가 불합리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무조건 따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태도들이 가장 위험한 것은 내 주변 인간관계들을 점점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항상 존중하고 이해하며, 배려해주신다. 그런데 그런 행동에 나는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고 그 상황에 익숙해져 버리면, 나도 모르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의 그런 태도를 처음에는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런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들 것이고 결국, 내 주위에는 내가 눈치 봐야만 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들이 지속돼서 내 주위에 형성되어 있는 인간관계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눈치를 보고, 관계의 우위가 정해 지도, 철저하게 복종해야 하는 관계로 정리되다 보면 나 역시 내가 맘대로 대할 수 있는 존재들을 찾게 된다. 그 말은 결국 내 주변에서 나에게 을인 존재들을 찾게 된다는 것인데, 나에게 어쩌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발견하게 되면 나 역시 그들의 인격이나 존엄성은 모조리 무시하고 그들에게 나의 욕구만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을의 존재는 내가 어떠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게 되는 상황에서의 상대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갑질 사건들을 듣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 나를 배려해주고, 나를 존중해주는 존재에게 내의 정성과 친절함을 나눠주어야 한다. 나에게 강압적인 사람, 나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그들의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는 내 책임 이상의 무엇인가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무엇인가 더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 대상은 무조건 나에게 더 잘해주는 사람에게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감성과 우리의 관계를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보답은 "고맙습니다"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알아주고 고마워해 주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우리의 삶은 나를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환경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이 정답일 수는 없다. 혹자는 내가 아직 사회생활을 덜해봐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생각은 아직 확고하다. 나는 나에게 화내는 사람에게는 내가 해야 할 것만 해준다. 하지만 나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에게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해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들이 나를 지탱하고, 이끌어준다고 생각한다.

 친절하자.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자. 나를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자.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고마워해 주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전달되는 친절함은 우리 사회를 친절로 넘치게 하는데 아주 효과적인 파급력을 줄 것이다.

PS.

판매자, 서비스 제공자, 서비스직 종사자는 을이 아니다.
당연히 구매자, 서비스 사용자, 고객도 갑은 아니다.
서로의 관계는 갑과 을의 절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를 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무시하고, 막대할 권리 따위는 없다.

 *TIP*

많은 판매자들은 친절한 고객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한다.
즉, 내가 친절한 손님이 되면,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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