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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Oct 14. 2020

다행이지만 조금 섭섭한 girl

어린이집 적응기

 요즘 아이는 나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난다. 직장인의 아침시간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렇게 여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내가 꼭 하던 것이 있다. 그것은 아이와 함께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보기 위해 칫솔을 들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아이의 눈이 빛나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아이가 노는 것을 보며 소파에 앉아 양치질을 시작하자, 아이는 빛의 속도로 나에게 기어와 나의 무릎에 앉았다. 그리고는 내가 들고 있는 칫솔을 잡으려고 하길래 아이와 칫솔을 함께 잡고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는 너무 신나 하며 아빠의 양치질을 도왔고, 그렇게 몇 주 동안 아침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양치질을 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칫솔에 치약을 묻혀 거실로 나오며 아이를 불렀는데, 아이가 나에게 오지 않았다. 아이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고는 자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다시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들어가서 편하게 양치질을 할 수 있었지만, 뭔지 모를 서운함이 생겼다. 아이에게는 더 이상 아빠의 양치질이 신기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이는 지난주부터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곧 아내가 복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회사에서 가까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3주 정도의 적응기간을 가지고 서서히 어린이집의 시간을 늘려가기 위해 지난주부터는 하루에 2시간 정도씩만 아이를 맡기고 있다.

 처음으로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다 보니 아내도 나도 걱정이 많았다. 주변의 많은 선배들이 어린이 집을 처음 갈 때,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울고, 엄마는 아이에게 미안해서 울고, 아침마다 어린이집 앞이 눈물바다가 되곤 한다고 했다. 우린 나름의 각오를 하고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첫날 아이는 생각보다 그곳에서 적응을 잘했고, 엄마를 찾지도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만 신기해서 그러는가 했는데, 한주가 지나고 2주 차가 되었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아이들과 잘 놀고 선생님을 잘 따르며,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엄마가 신발을 벗을 필요도 없이 바로 선생님 품에 안겨, 밝게 엄마에게 빠빠이를 했다고 한다.
 
 우리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잘 적응하는 아이가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적응을 잘하며, 어린이집에서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나는 막상 마음 한쪽으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도 쿨하게 선생님과 친해진 아이에게 말이다.  물론, 집에 오면 여전히 엄마와 아빠의 껌딱지이고, 이렇게 잘 다니다가 어느 순간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막상 너무 잘하고 있는 아이가 내심 서운한 것이다.

 우리 아이는 낯을 잘 가리지는 않아서 누구나 조금만 얼굴이 익숙해지면, 잘 안기기도 하고 잘 웃어주기도 한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부모와의 애착 형성이 잘되면 타인과의 관계를 훨씬 유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가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서 아이가 더 밝고 활발하게 자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고 있다. 지금 나의 이 서운한 마음은 욕심이다. 잘 적응하지 못하고, 울고 떼쓰며 가기 싫다고 했다면 나는 또 그 나름대로 걱정이 한가득이었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다 보니 참 복합적인 감정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볼 때마다 너무 사랑하고 예쁘지만, 그만큼 아이를 케어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겁이 나기도 하고, 하루하루 쑥쑥 커가는 것이 기특하고 뿌듯하면서도, 성장이 너무 빠른 것이 아쉽고 서운한 것처럼 말이다.

 이 철없는 아빠의 서운함도 아이가 아빠의 양치질에 관심을 가졌던 그 기간만큼이나 길게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적응 잘하고 아이들과 잘 노는 아이가 마냥 이쁘고 고마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빠의 오락가락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내가 아이에게 갖는 이 모든 감정의 종류들이 모두 이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아이와 남은 내 삶을 살아가면서 훨씬 더 다양한 감정의 회오리들이 불어올 것이라는 것도 각오하고 있다. 아마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 만큼 더 거센 폭풍일 것이기 때문에. 쿨하게 엄마에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의 모습을 전해 들은 오늘의 서운함은 또 한 번 내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 계기이고, 나 스스로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도 내가 이 아이를 만나서 받게 된 즐거운 선물인 것 같다.  

여하튼 아주 의젓하게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한 우리 아기.

"아빠가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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