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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Oct 20. 2020

걘 아무것도 안 해요.

우리는 돌준맘/대디입니다.

"저 이번 주 금요일에 오후 반차 좀 쓰도록 하겠습니다"

"왜? 뭔 일 있나?"

"토요일이 아이 돌입니다."

"자네가 돌인가? 자네가 왜 반차를 써?"

"걔는 아무것도 안 해요. 제가 다합니다."


 얼마 전에 했던 직속 상사와의 대화다. 아이 돌잔치 준비를 위해 해야 할 것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반차가 필요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본인의 첫 번째 생일에 아이가 하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다. 기껏해야 그날 잘 자고 잘 먹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주는 것 정도?
그에 비해 아내와 내가 할 일은 정말 많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은 보통 두 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돌준맘/대디 : 돌잔치를 준비하는 엄마, 아빠
돌끝맘/대디 : 돌잔치가 끝난 엄마, 아빠

 물론, 요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돌잔치를 하지 않는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우리도 정말 딱 양가 어르신들만 모시고 밥만 먹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첫 생일만큼은 정말 잘해주고 싶은 부모들의 욕심을 막을 수 없는 듯하다.  

 우선 우리는 기본적으로 장소에 대한 고민이 제일 먼저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을 초대할 것도 아니고, 성대하게 할 것도 아니어서 뷔페나 연회장을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할 것인지 식당에서 할 것인지? 식당에서 한다면 우선 공간부터 시작해서 음식의 메뉴, 돌상의 위치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코로나 19의 사태가 오라가락 하다 보니 예약이나 환불에 대한 규정까지 까다롭게 굴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돌상이었다. 이 고민의 경우는 집에서 하던지 식당에서 하던지 상관없이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특히, 셀프 돌상 대여의 경우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핸드폰으로 찾기 시작하면 어느새 점점 더 혼란에 빠지고 정신줄을 놓기 십상이었다. 여기서 가장 큰 고민의 포인트는 막상 빌리려고 보면 별거가 없더라는 것이다. 흰 테이블보 위에 각종 과일이나 떡을 담을 수 있는 그릇들과 꽃병, 조화와 간단한 현수막 등. 백일 때 한 번 해봐서 그런지 더 애매한 것이다. 그래서 크게 욕심부릴 거 아니면 집에 있는 그릇들로 꾸며보자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또 부족한 게 많고, 그래서 부족한 것만 좀 사자고 생각하면 막상 한번 쓰고 나중에는 쓸데가 없어질 것이 뻔해서 아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막상 대여로 맘을 굳히면, 비용이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돌상 대여 :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
                     예쁜 걸 빌리려고 하면 너무 비싸고,
                     적당한 걸 빌리려고 하면 별게 없다.

돌상 구매 : 한번 쓰고 버리게 될 확률이 높고,
                     하나하나 알아보고 사는 것도 일이고,
                     가격은 빌리는 것보다 싼 경우도 있다.

※ 여기에 가장 큰 변수는 보통 돌상을 대여하면 한복이나 돌잡이 용품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돌상이 맘에 드는데, 한복이 맘에 안 드는 경우도 있고, 한복까지는 맘에 드는데 돌잡이 용품이 맘에 안 드는 경우도 있다. 나는 결국 1달을 넘게 뒤져봐도 3가지가 다 맘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유난스럽지는 않은데..) 결국, 다 맘에 드는 걸 하려면 다 따로 빌리는 방법밖에 없는데, 돈은 더 많이 든다.

 그리고 한복. 우리는 결국 돌상을 대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한복도 따로 고르기로 했다. 아니 오히려 맘에 드는 한복을 먼저 발견하는 바람에 돌상을 포기하기로 했다. 한복도 정말 선택의 폭이 천차만별인데, 몇만 원이면 살 수 있는 것들부터 대여하는데만 30만 원이 넘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 눈이 참 간사해서 비싼 걸 한 번 보고 나면 높아진 눈이 낮아지지 않아서, 결국 우리도 꽤 비싼 한복을 대여하기로 했다.

 여기에 따라오는 또 한 가지. 부모의 드레스코드. 우리는 돌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 한복을 빌리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래도 사진도 찍고 하려면 기본적인 드레스코드는 지켜야 할 듯했다. 아이가 입을 한복으로 예쁜 민트색을 고른 우리는 자연스럽게 민트색으로 드레스코드가 정해졌고, 결국 우리는 또 쇼핑에 빠져 각자에게 어울리는 민트색 옷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마땅치가 않으면, 옷장을 뒤져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다가, 또 맘에 안 들면 다시 쇼핑을 하다가를 며칠 동안 반복했다.)

 이렇게까지 하고 나서도 우리에게는 케이크도 예약해야 하고, 돌떡도 맞춰야 하고, 돌상을 안 빌려서 돌잡이 용품도 알아봐야 하고, 심지어 어르신들을 걱정도 해야 했다.

"걔는 아무것도 안 해요"

 이 모든 과정에서 주인공인 아이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해맑게 웃고만 있었다. 이런 것이 아이의 존재감인가? 나는 정말 20대에 처음 연극에 빠져 살았을 때처럼 열심히 알아보고 준비하고 있었다.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은 것이 아닐까? 더 이쁜 것을 해주고, 더 좋은 것을 해주고, 더 근사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 결국 그 마음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나는, 집안 형편에 비해 부족하지 않게 자란 것 같다. 비싼 옷은 아니어도 낡은 옷을 입고 다니지는 않았고, 매번은 아니어도 메이커 운동화도 신고 다녔다. 그리고 유행하는 가방이나 갖고 싶었던 것들은 그래도 어머니께서 대부분 사주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당시의 사진들을 보거나, 그 당시의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어머니는 항상 낡은 옷을 입으셨던 것 같다. 예쁜 신발도 없으셨고, 좋은 가방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화장도 잘 안 하고 다니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때 우리 어머니는 화려한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고, 어머니의 옷을 사드리기 시작하자 어머니가 예쁜 옷 입는 걸 얼마나 좋아하시는 지도 알게 되었고, 알록달록한 옷이나 화려한 꽃무늬나 액세서리도 좋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자식을 빛나게 하시기 위해 자신의 빛을 내어 놓으신 것이다.

 돌잔치는 우리 아이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 아이가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우리는 열심히 알아보고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더 돋보이기 위해 하는 노력은 거의 없다. 아마 1년 차 부모라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아이가 빛나는 것이, 내 마음이 빛나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보다도 아이가 빛나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나를 위해 빛을 양보해주셨던 부모님들께도 다시 빛을 돌려드려야 할 때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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