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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Nov 04. 2020

미션 임파서블_ 어둠 속에서 손톱을 깎아라

초미세 블록버스터

육아를 하다 보면 참 다양한 난관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어
열심히 만들어준 밥을 아이가 먹지 않고 던진 다던가.
화장실이 너무 급한데 아이가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던가.
먼길을 가는데 카시트에 앉으려고 하지 않거나,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왔는데, 안기려고만 해서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도 끌어야 한다거나.

뭐 이런 상황들 말고도 어려운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중에 우리에게 최상위권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것은 바로 손톱을 깎는 것이다. 뭐, 누군가는 그게 뭐가 어렵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꽤 높은 난이도다.

 아이는 손톱이 조금만 길게 자라도 어찌나 날카로워지는지, 금세 얼굴이나 몸에 상처를 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손톱을 깎아줘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고, 너무 작고 겁이 나서 보통 처제에게 많이 부탁했다.

"이모한테 손톱 깎아달라고 하자."

우리가 처갓집에 가거나, 처제네 집에 놀러 갈 때면 손톱 가위를 챙겨가서 부탁하곤 했고 가끔은 의도적으로 손톱을 깎을 때가 되면 처제네를 초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만은 없기 때문에 아내가 아이의 손톱을 깎기 시작했고, (솔직히 나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는 잘 깎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의 손톱을 깎는 것은 정말 손톱을 깎아내는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의 관심을 손톱과 손톱 가위에서 벗어나게 하느냐 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집에 TV가 없는 우리 집은 유일하게 아이의 손톱을 깎을 때만 태블릿을 이용하여 아이에게 뽀로로를 틀어주곤 했다. 뽀로로의 영향력은 정말 엄청나서 처음 보여준 순간부터 아이는 뽀로로에 빠져들었고(나는 기본적으로 뽀로로가 노벨평화상을 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조금 쉽게 손톱을 깎을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딸은 정말 토종 한국인이어서 우리말 버전 뽀로로를 틀어주면 초집중을 하는데, 영어 버전을 틀어주면 급격하게 집중력이 떨어지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뽀로로가 안 먹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뽀로로 경험이 너무 자극적이었는지, 엄마가 손톱을 깎던 발톱을 깎던 꼼짝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게 좀 익숙해지니, 엄마손에 들려있는 노란색 손톱 가위가 더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뭘 틀어줘도 온몸을 비틀며, 손을 움직이고 가위를 잡으려고만 하는데, 아무리 아빠랑 엄마가 함께 잡고 달래 보아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결국 몇 번이나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러고 나면 꼭 어김없이 얼굴에 상처가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 아이와 놀다 보면 아이의 날카로운 손톱에 우리들의 얼굴에도 상처가 생기곤 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이번에 선택한 방법은 바로 야간 작전이었다. 아이를 재우는 것을 성공하고 나온 나에게 아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빠, 휴대폰 플래시를 준비하고 따라 들어오시지요."

 아내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이가 잠들어 있는 깜깜한 방으로 잠입을 시도했고, 그 뒤에 휴대폰 플래시를 실행하고 나오는 곳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내가 따라서 잠입을 했다. 아이의 방문을 닫자 깜깜해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우리는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다행히 아주 푹 잠이 들어 있었고, 엎드려서 자는 아이의 오른손부터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어둠 속에서 수술을 돕는 간호사처럼 아이의 오른손에 정확하게 플래시를 비췄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아이 눈에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쿠션으로 아이의 눈은 가리고 있었다. 아내는 아주 차분하고 냉정하게 손톱을 하나씩 깎아 나가기 시작했고,  중간중간에 아이의 움 찔이 있기는 했지만 당황하기 않고 오른손을 마무리했다. 적당한 시기에 아이는 반대쪽으로 돌아누웠고, 우리는 아주 조심히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나머지 손톤을 깎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부다운 호흡으로 완벽한 작전을 수행해 나가고 있었지만, 발톱으로 옮겨가는 순간,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다. 아이는 소리를 내며 뒤척였고, 우리는 그대로 플래시를 가리고 바닥에 엎드려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렇게 1~2분이 흐른 뒤, 아이의 수면은 다시 안정기를 맞이했고, 우리는 긴장보다 참기 힘들다는 웃음을 참아가며 겨우 미션을 클리어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의 손톱을 다 깎고 나와서 거실에서 한참을 웃었다. 정말 별거 아닌 손톱을 깎는 일로 우리는 또 엄청난 추억을 하나 만든 것이다. 육아는 정말 그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고, 새로운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하나하나 지나오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 주고 있다. 아이는 아마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엄마 아빠가 자기 손톱을 깎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하지만 그 아이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뼘 정도 가까워졌고, 한 뼘 정도 깊어진 것 같다.

 아이는 삶의 모든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나에게 모두 새겨지고 있다. 아이에게는 기억되지 않을 추억일지라도 엄마와 아빠에게는 평생을 두고두고 웃을만한 엄청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 또 어떤 미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톰 크루즈 형님이 60세가 넘어서도 훨훨 날아다니시는 것만큼, 나도 열심히 운동하고 체력을 길러서 그 어떤 미션이 오더라도 모두 클리어 할 수 있게 준비해야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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