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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Nov 09. 2020

세상의 모든 부모는 모두 절절한 짝사랑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더 좋아

 짝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어릴 적 뚱뚱했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는지, 짝사랑을 참 많이 했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서클에서, 동아리에서 누군가가 맘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고백할 용기는 없어도, 뒤에서 몰래 지켜보고 잘해주며, 혼자만의 사랑을 키워 나가곤 했던 것 같다.


 짝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하다 보면 짝사랑만큼 자극적이고, 짜릿한 것이 또 없다. 내 마음을 모르는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들키지 않게 조심히 친해지는 과정도 재미있고, 상대방이 어쩌다 나의 존재를 인지하거나 나와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나 혼자만의 온갖 상상을 펼쳐나가는 것도 재미있다.  심지어 상대방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나에게 보내는 표정, 단어, 메시지, 심지어 눈빛에도 모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해 나가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다 보면 그 착각에 늪에 빠져 하루 종일 해죽대고 다니는 날도 있고, 며칠 동안 우울하게 지내는 날들도 있었다.

 나는 요즘 짝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막 돌이 지난 그녀는 내 사랑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쏟아붓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웃음을 한번 볼 수 있을까? 그녀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가끔은 이상하고 우스깡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아직 말도 못 하는 그녀가 손짓만 해도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어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해주곤 하며, 그녀가 혹시 조금이라도 불편한 표정을 하면 나는 조급한 마음에 동동거리며 뛰어다니곤 한다. 외출을 하기 전에는 그녀를 위한 것만 1시간식 챙기고, 나는 대충 씻어도 그녀는 꼼꼼하게 씻겨주고, 유기농 로션도 빠짐없이 발라준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그녀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그녀가 남긴 음식들을 먹어치우기도 하며, 밤새 자면서 땀 흘리는 그녀의 머리에 바람을 불어주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물론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너무 재미있고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의 반응이다. 이제 나의 존재를 인지하고 애착관계가 끈끈해지기 시작한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나에게 뽀뽀를 해주기도 하고, 내 품에 뛰어들어와 내 잠을 깨우기도 한다. 내가 잠시 눈에만 안 보여도 온 집안이 떠나가도록 나를 찾기도 하고, 내가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오면, 양손을 힘차게 흔들며 나를 맞이하기도 한다. 심지어 맛있는 과자나 과일을 주면, 꼭 나에게 먼저 내밀거나 내입에 넣어주기도 하는데, 비록 본인의 입에 넣어다가 입맛에 맞지 않는 걸 다시 내 입에 넣어주는 거라고 하더라도 나의 입은 이미 해벌쭉하고  있다.

 짝사랑이다. 나는 지금 딸아이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의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스럽고, 그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나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아이가 좀 더 자라서 아빠의 사랑을 느끼고 짝사랑이 아닌 것처럼 더 많은 표현을 해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안다. 이 사랑은 결국 짝사랑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우리 할머니가 나에게 주셨던 사랑도 그러했고, 우리 아버지나 나에게 주셨던 사랑도 그러했기에. 심지어 아직도 진행 중인 우리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도 이 아이에게도 그러하시기에.

 세상의 모든 부모는 모두 절절한 짝사랑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그 사랑이 더 재미있고, 그래서 그 사랑이 더 짜릿하고, 어쩌면 그래서 그 사랑이 식기는 커녕 점점 더 커지며 이어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랑이 짝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짝사랑 온 마음을, 자신도 다른 사람을 짝사랑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해도, 결국은 상대방의 짝사랑을 받아 줄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부모의 짝사랑을 알면서도 결국 자식만을 짝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뭐 어떤가. 그저 모두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이 기대 없는 사랑을 언제까지나 끊임없이 하게 될 것이고, 중간중간 우리가 지치지 않게 던져주는 아이들의 리액션으로 우리의 심장을 꾸준히 공격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사랑이 참 재미있고, 행복하다. 비록 짝사랑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내 뒤에서 내 리액션을 기다리고 있을 나를 짝사랑하시는 우리 어머니에게도 귀여운 막내아들로 돌아가서 심장 어택을 한번 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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