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Nov 13. 2020

콩나물 식혜라고 들어봤어?

나는 못 먹었지만 그래도

 회사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회사에 출근을 했다. 아침부터 몰려드는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기가 열이 있데. 37.8도가 나오는데, 어린이집 기준이 있어서 우선은 데려가야 한데."

아내는 급하게 오후 반차를 신청하고 아이에게 갔다. 나는 상사에게 말을 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아이는 열만 조금 있을 뿐이지, 아주 멀쩡했고, 갑자기 달려온 엄마 아빠가 반가웠는지 마냥 신나 있었다.

"어제 재울 때 보니까 코가 좀 있는 거 같기는 했는데..."'

"어, 어제 보니까 어린이 집에 다른 애들도 코가 나와 있더라.."

 이미 충분히 예상이 되는 일이었다. 보통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 감기를 달고 산다고 들었고, 한 명만 걸려도 다 옮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지금부터 우리의 미션은 되도록이면 빨리 낫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재미있었던 것은, 나와 아내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집에서 항상 내내 아이를 안고 물고 빨고 하는 우리들이 그 감기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우리도 그날 밤부터 코막힘과 가래의 증상이 있었고, 기침도 있었다. 우리는 바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집안에 온도는 따뜻하게 올리고 우리는 두툼한 잠옷을 입고, 목에 수건도 두르고 양말도 신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안의 습도 관리를 위해 가습기와 젖은 수건을 적극 활용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잔병이 많은 편도 아니고, 감기가 왔다고 심하게 앓거나 오래가는 편도 아니어서 평소에 감기약을 잘 먹지도 않고, 그냥저냥 지나가길 기다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니 문제는 전혀 달랐다. 내가 아픈 것이 육아에 많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아이의 감기를 더 심해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무엇보다 놀라운 것이 아내였다. 우리처럼 아이를 챙기는 것은 당연했고, 시간에 맞춰 약을 챙겨 먹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새로운 것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콩나물 식혜]였다.

"오빠 콩나물 식혜라고 들어본 적 있어?"

"아니"

"나도 이번에 찾은 건데, 목감기나 코감기에 좋다고 하니까 만들어서 아기도 먹이고 우리도 먹자."

"그래 좋지"

 부분의 이런 종류의 음식들이 그러하듯이 콩나물 식혜는 참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많은데, 콩나물, 무, 배, 생각, 대추, 도라지, 조청이 들어간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도라지에 있는 성분 중에 하나가(우리도 정확히는 모른다) 많이 먹으면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서 우리는 뺐다. 그렇게 손질이 된 재료들을 밥솥에 넣고 12시간을 보온 모드로 조리를 해야 하는데, 결국 내일 먹이고 싶으면 오늘 일찍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아내는 아이를 일찍 데려온 금요일 밤에 재료를 사 와서 콩나물 식혜를 만들기 시작했고, 주말에는 내내 아이에게 수시로 먹이기 시작했다. 콩나물 식혜는 수고에 비해서는 양이 많이 나오지는 않아서 우리는 처음에 맛만 보고, 대부분은 아이에게만 먹이게 되었고, 우리는 현실과 타협하여 대추와 생각과 배만 넣어서 차로 끊여 마시게 되었다.

 옛말에 감기는 그냥 두면 보름 가고 약을 지어먹으면 2 주간 다는 말이 있다. 결국 감기는 앓을 만큼 앓아야 낫는다는 말이다.  아이의 감기와 우리의 감기는 모두 거의 다 나았고, 이제 원래 컨디션으로 거의 돌아왔다. 물론 옛말처럼 이미 아플 만큼 아픈 것일지도 모르고, 열심히 잠자리를 챙긴 덕일지도 모르고, 병원에서 준 약의 효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정성이 아이의 감기에 큰 효과를 나타냈다고 믿는다. 아이를 위해 재료를 다듬고 콩나물 식혜를 만드는 정성이 결국 아이를 조금 덜 아프게 하고, 더 일찍 낫게 해 준 것이다.

 우리는 아마 콩나물 식혜를 아무리 넉넉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위해 전혀 먹을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마음이 아이에게 닿아서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기를 바라고 바라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먹을 콩나물 식혜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를 위해 끓여준 이 차에도 큰 사랑을 느끼고 있다. 그게 비록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까 나를 단속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회사에서 먹으라고 아침마다 따뜻하게 데워 챙겨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감기는 우리 가족에게 기침과 콧물을 주고 갔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주고 간 듯하다.


[콩나물 식혜 만드는 법]

재료: 콩나물, 무, 배, 도라지, 대추, 생강, 조청

1. 우선 잘 씻은 재료 전기밥솥에 차곡차곡 넣어준다.
 - 무, 배, 도라지, 대추, 생강은 순서에 상관이 없지만, 콩나물은 맨 위에 덮어준다.
 -재료별 중량은 "적당히"


2. 그렇게 넣은 재료 위에 조청을 3바퀴 정도 둘러준다.
 -단맛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조금 덜 넣으면 된다.
 - 우리도 아이에게 줄 거여서 처음에는 3번 둘렀지만, 그 담부터는 2번만 돌렸다.

3. 전기밥솥의 보온기능으로 12시간을 조리한다.

4. 다 된 식혜는 면포에 넣고 짜서 차갑게 보관했다가 따뜻하게 먹으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부모는 모두 절절한 짝사랑을 하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