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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Nov 19. 2020

된장 속 고추씨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수많은 위험들

 우리 아이는 국순이다. 밥을 먹을 때 국을 너무 좋아해서, 우리는 미역국, 북엇국, 된장국 정도를 끊여서 돌려가며 먹이고는 한다. 아이는 잘 안 먹다가도 밥을 국에 담갔다가 주면 잘 먹고, 심지어 요즘에는 국에 손을 담가 건더기를 집어 먹기도 하고, 국물이 조금 남았을 때는 그릇째로 들어서 국밥을 먹듯 들이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아이의 국을 떨어지지 않게 항상 준비해 놓는 편이다. 

 얼마 전에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손주를 길러주시는 아내의 고모님께서 아이들용으로 된장국을 끓여주셨다. 원체 음식 솜씨가 좋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도 감사하게 된장국을 받았고,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아이에게 먹이려고 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 아이에게 아침을 먹이기 위해 우리는 국을 데워서 밥과 함께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는 역시 국을 아주 잘 먹었고, 우리는 참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아이가 먹기는 잘 먹는데, 먹을수록 입 주변이 조금씩 붉게 변하는 것이다. 국을 제외하면 항상 먹이던 음식들이기 때문에 알레르기라고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국에 다른 게 들어갔나?"

"혹시 매운 건 아니지?"

"거기도 아이 먹이려고 끓이신 건데.. 아니겠지.."

혹시 몰라서 살짝 맛을 봤지만, 전혀 맵지도 않았고, 특별히 다른 게 들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우선 심하지는 않으니까. 점심때 한 번 더 먹여보고 그때도 그러면 물어보지 뭐"

 솔직히 우리 아이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 주신 건데, 뭐가 들어갔냐고  쉽게 여쭤보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그냥 별일 아니기를 바랐지만, 아이는 점심때에도 먹으면서 입 주변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고, 아내는 바로 다른 국을 주고, 된장국은 더 먹이지 않았다. 

"뭐지? 왜 그러지?"

 아직 아이가 어려서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더라도 여쭤봐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아내는 조심스럽게 고모님께 여쭤보았고, 그 미스터리의 이유를 찾았다.

"고모가 된장국을 끓일 때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데, 된장을 만드실 때 고추씨를 넣으면 좋다고 해서 잔뜩 넣으셨데, 그래서 우리들 입에는 매운맛이 안 느껴져도 아이들 피부에는 반응을 했나 봐."

 이 미스터리는 고모님의 손자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하는 그 아이는 평소에는 잘 먹는데 그 국은 그냥 계속 안 먹으려고 했다고 하고, 그 된장국을 똑같이 주신 처제에 아이는 말을 잘하기 때문에 한입 먹고는 맵다고 말하고는 안 먹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만 먹성이 좋아서 그런 건지, 입 주변이 붉어지는데도 그렇게 잘 받아먹은 것이다. 

"엄마가 우리 집도 된장 만들 때 고추씨 잔뜩 넣었다고 어떡하냐고 하신다. 하하하"

 나는 된장 속 고추씨 덕에 참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 좀 더 맛있는 것들을 먹이고자  된장을 만드실 때도 평소에 안 넣으시던 고추씨까지 구해서 만드시는 어머님들의 마음과 조카 손녀의 밥까지 챙겨주시는 고모님의 감사한 마음과 아이의 작은 트러블마저도 세심하게 바라보고 고민하는 엄마의 마음과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위험들까지. 
 
 된장 속에 들어있던 고추씨는 우리 가족에게는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조금 더 세심하게 아이들의 음식을 살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살다 보면 된장 속 고추씨처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또 당황하고, 고민하고, 걱정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난스럽게 아이를 챙기고 보살필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보지 못할 아이의 위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유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삶 속에는 분명히 수많은 숨어있는 고추씨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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