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Nov 23. 2020

같잖은 양, 방대한 설거지

아빠는 같잖은 요리사^^

 우리 어머니는 맏며느리시다. 어릴 적 우리 가족도 다섯 식구나 되는데, 식성도 좋다 보니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손이 크시다. 어릴 적 무슨 음식을 하던 두 끼는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할 만큼 넉넉히 하시곤 했고, 그래서 같이 장을 보러 가면 언제나 양손 가득 들고 올 만큼 사곤 했다. (내 기억에 가장 강력한 경험은 봄에 딸기를 파는 트럭이 왔는데, 엄마가 딸기를 큰 걸로 3박스나 샀다. 우리는 1주일 동안 딸기를 요즘 호텔에서 비싸게 한다는 딸기뷔페 부럽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손이 크다. 어릴 적 내가 요리를 할 기회는 보통 친구들과 놀러 가서였는데, 기본적으로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의 먹성도 워낙 좋다 보니, 부족한 거보다는 남는 게 낫다.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고는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금의 아내는 음식을 먹는 양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처갓댁 분위기가 모두 그래서 처음에 내가 먹는 양을 보고 많이 놀라셨다고 한다. (딸들이 시집가기 전에는 네 식구가 치킨을 한 마리 시키면 몇 조각 남았다고 했다.)그래서 내가 가끔 처갓댁에서 요리를 하거나 놀러 가서 음식을 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양이 많아 놀라시곤 한다.

 문제는 이유식이다. 나는 살면서 이런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계량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레시피를 좀 맞춰보려고 살펴보다가 보면 기본 단위들이 10g이다.

당근 30g, 소고기 50g, 양파 30g...

나는 살면서 이런 단위의 음식을 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정해져서, 어른들의 음식은 주로 내가 하고, 아이의 음식은 거의 아내가 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옆에서 신기한 구경을 하는 정도이긴 하다.

 하지만 이제 아이가 이유식을 끊고 밥을 먹기 시작하니 더 다양한 음식들을 해줄 필요도 생기고 나도 그러고 싶어 졌다. 그래서 주말에는 가끔 내가 아이의 밥을 차려주곤 하는데, 보통 계란 말이나 계란찜, 오믈렛 등. 계란으로 하는 요리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것도 신기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 먹을 수 있게 된 이후로 계란을 하나만 써서 요리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이는 계란 하나로 2번을 먹는다.)

 그래도 이번 주는 아이를 위해 더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찾아서 밥을 해주기로 했다. 토요일에는 새우 한 마리를 꺼내서 새우볶음밥과 계란국을 만들어주고, 일요일에는 치즈를 넣어서 소고기 볶음밥을 해주었다. 특히, 아내가 매번 비슷한 반찬만 주는 것 같다고 마음을 쓰길래 아이에게 카레와 짜장을 만들어 주기로 마음을 했는데, 어른용 카레와 짜장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게, 아이용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들었다.

 우선 아이용으로 만들 재료들을 다듬는데, 모두 다져야 했다.

감자, 당근, 단호박, 양파, 소고기, 닭고기...

아이에게 먹이는 당근은 한번 데치는 것이 좋다고 해서 데치는 작업도 했고, 토마토도 원래 어른들이 먹을 때는 껍질을 굳이 벗기지 않는데, 당근을 데치는 김에 같이 데쳐서 껍질도 벗겼다. 다행히도 비슷한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준비과정을 같이 했지만, 그래도 적은 양들을 또 작게 다지고 있다 보니 웃음이 다 나오기도 했다.

"처음 먹어보는 거라 안 먹을 수도 있으니까. 진짜 조금만 만들어요."

 평소의 내가 요리하는 양을 알다 보니 아내는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서 나는 진짜 이만큼도 요리라는 게 되나 싶을 정도의 양으로 조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거의 한 시간에 걸쳐서 아이의 카레와 짜장을 만들었고, 조리 과정에서 남은 재료들은 어른들용 카레로 활용했다. 아이의 카레와 짜장은 정말 조금 나왔는데, 그래도 아이의 기준으로는 각각 한 2~3번은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설거지였다. 그 같잖은 양을 만들었는데, 다하고 나니 설거지가 정말 방대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조리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양과는 상관이 없으니 당연히 나오지만, 거기에 아이용으로 쓰는 조리도구가 따로 있고, 아이용 식기가 따로 있으니 정말 결과물에 비해 설거지가 너무 많은 것이다.

 (설거지에 대한 미스터리는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이기는 했는데, 저 코딱지 만한 아이에게서 나오는 설거지가 정말 많다. 평소에 내가 설거지는 도맡아서 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하루에 두 번을 해도 항상 설거지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건 정말 미스터리 한 일이다.)

 육아라는 것이 다 그런 것 같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별거 아닌 일들인데, 막상 그 안에서 경험하다 보면 그 별거 아닌 일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과 뒤처리 과정이 너무 많다. 단순히 아이와 잠깐 외출을 하는 것인데도, 엄마들은 챙겨야 할 것이 가방 한가득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육아를 가장 잘 표현한 한마디가 바로 이 말인 것 같다.

"같잖은 양, 방대한 설거지"

그래도 우리는 저 같잖은 양을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행복해할 것이고, 저 방대한 양의 설거지를 기꺼이 하면서 다음에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결과물로 나오는 음식의 양은 같잖아도 그 안에 담겨있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 그로 인해 느껴질 행복은 설거지 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말 방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수고하고 있다. 같잖은 양을 위한 방대한 설거지를 감당하고 있는 모든 부모들.

정말 수고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된장 속 고추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